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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조상은 부여(扶余)’ 증명…풍납토성서 귀고리 출토

은제 장식편·갑골 등 기원전·후 유물확인

[경향신문] 2008년 06월 18일(수) 오후 06:09

한성백제 도성인 풍납토성에서 백제의 조상으로 알려진 부여계 은제 귀고리 장식(오른쪽 위 사진)과 갑골(甲骨·중심 연대는 기원 전후·아래 사진)이 출토됐다. 또한 기원전후 중국 등 주변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나타내주는 중국제 포수(鋪首·청동그릇 따위에 붙인 장식)도 확인됐다



풍납토성에 대한 10개년 학술조사를 벌이고 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옛 미래마을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부여(BC 4세기~AD 494년) 영역에서 출토된 바 있는 황금 귀고리 장식과 똑같은 잎사귀 모양의 은제 귀고리 장식편과 동이계의 전형적인 갑골을 확인했다고 18일 밝혔다.

이형구 선문대 교수는 “확인된 은제 귀고리 장식은 중국 지린성(吉林省) 류수셴(柳樹縣) 라오허선(老河深)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귀고리 장식과 흡사하다”고 밝혔다. 나뭇잎 모양의 은제 귀고리 장식품은 길이 5.4㎝, 폭 1.2~1.5㎝ 정도였다.

또한 갑골은 동이계의 전형적인 유물이다. 1962년 BC 3500~BC 3000년 유적인 중국 동북부 발해연안인 푸허거우먼(富河溝門) 유적에서 처음 출토됐다. 이후 상(商)나라에서 갑골문자를 만들어내는 등 찬란한 갑골문화를 창조했고 그 전통이 부여~한반도로 이어졌다.

부여계의 은제귀고리 장식편과 갑골의 확인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조에 나온 백제의 출자(出自) 기사와 관련해 비상한 관심을 끈다.

즉 “(백제의) 세계(世系)는 고구려와 한가지이며, 부여에서 나온 까닭에 성씨를 부여씨라 했다(其世系與高句麗同出扶餘 故以扶餘爲氏)”는 기록(삼국사기)이다.

이 교수는 “한성백제 도성인 풍납토성에서 기원 전 후의 것으로 보이는 부여의 귀고리 장식과 갑골이 확인된 것은 삼국사기에 나온 백제의 출자를 증명해준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고 말했다.

최몽룡 서울대 교수는 “귀고리 장식은 BC 1세기~AD 1세기 사이에 제작된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또한 동한시대(AD 1세기)로 편년할 수 있는 중국제 포수(무늬는 괴수면 혹은 짐승면)도 확인됐다. 최 교수는 “부여계 귀고리 장식과 갑골, 그리고 한나라 시대에 유행한 중국제 포수 등을 미루어 보면 이미 이때부터 한성백제 수도인 풍납토성에서 활발한 국제교역이 벌어졌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by 카피사루0 | 2008/06/18 20:25 | korea | 트랙백 | 덧글(0)

부여족(夫余族) 의 윷놀이



 

삼국시대 이전부터 전해오는 한국 고유의 민속놀이로 대개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날까지 즐긴다. 부여족(夫餘族) 시대에 5가지 가축을 5부락에 나누어주어 그 가축들을 경쟁적으로 번식시킬 목적에서 비롯된 놀이라고 하며, 그에 연유하여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에 비유한다.

 

고조선의 정치제도였던 5가(五加: 馬加, 牛加, 羊加, 狗加, 猪加)를 보면 양이 포함되어 있는데 한자에 수놈의 양 결이라고 하고, 큰 양을 갈(羯)이라고 하니 여기에서 걸이 나온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하면 돼지, 개, 양, 소, 말이 대략 크기 순이고 한걸음의 크기순이기도 하니 끗수와도 연관이 지어진다. 부여의 관직 이름도 부여의 가축이름에서 나왔는데 부여의 여섯 가축에는 양과 낙타도 포함되어 있다.

말길

윷판에서 말이 갈 수 있는 길은 모두 네 가지(단, "뒷도"를 인정하는 경우 '도' 로 한 칸 나간 뒤, 뒷도로 단숨에 날밭으로 이동하는 최단거리 경로가 존재하게 된다)가 있다. 나온 윷과 그리고 말을 쓰기에 따라서 빨리 말이 날 수 있는 길이 있는가 하면, 거북이 걸음으로 윷판을 한바퀴 돌아야 하는 길이 있다. 아래의 첫 번째 그림은 가장 빠른 말길을 나타내고 있으며,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그림은 거리상 서로 같은 말길, 그리고 네 번째 그림은 가장 느린 말길을 나타내고 있다.

또, 말길은 계절에 비춰 첫 번째가 "동지", 두·세 번째를 "춘분/추분", 마지막 네 번째를 "하지"에 대한 표현으로 말하기도 한다.


 


 선사시대 암각화 윷판 (3000年前)

 


선사시대 암각화 윷판 (3000年前)



고대 암각화 및 전례되는 문헌에 등장하는 윷판은 예외 없이 모두 원형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하늘은 둥글다(天圓地方)는 고대의 관념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정사각형의 모양은 후대로 전해 내려오는 가운데 변형된 것으로 생각된다)
윷판의 정중앙은 대개 북극성으로 말하여지며, 나머지 28개의 자리는 동양의 주요한 별인 28수 또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북두칠성(사계에 따른 칠성의 위치 변화)으로 말하여 진다. (북극성을 중식으로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가 서로 대칭되어 있는데, 일부 암각화에서는 카시오페아와 대칭되는 북두칠성의 자리에 윷판이 그려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3]) 정사각형의 윷판으로 설명한다면 가로 세로 다섯개의 눈금의 정사각형과 그 안에 교차하는 두 대각선의 모양이며, 출발점은 정사각형의 한 꼭지점이다.
말은 나무를 깎아 만든 둥근 혹은 각진 토막이나 또는 작은 돌 따위를 사용하며, 놀이편에 각각 넉동(4개)씩 주어진 뒤, 윷셈에 따라 이동하게 된다.
고구려 고분에 그려진 高句麗 윷판

백제 미륵사지 주춧돌에서 발견된 百済 윷판


조선시대 땅에 대충 그리고 노는 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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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을 이어온 부여족(夫餘族) 의 윷놀이
 
각 점들의 부르는 법
 


흥미로운글 :  멕시코 인디언들도 윷놀이를??

by 카피사루0 | 2008/05/09 21:52 | korea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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