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17일
2012년 이순신의 해군기지 '삼도수군 통제영'이 돌아온다.
이순신 역사 지구 조성… 세계문화유산 추진 [2008.7.17]


△3D로 복원한 통제영과 좌수영성 (조선시대 해군 기지)
통제영이란? = 통제영은 '삼도수군통제영'의 줄임말로 조선시대의 해군본부라 할 수 있다. 통제영은 선조 26년인 1593년에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직제가 만들어져 경상·전라·충청 3도 수군을 지휘·총괄했던 곳이다.

조선시대 경상·전라·충청 3도 수군의 본영이 있었던 통영에 '삼도수군통제영'이 2012년께 복원될 것으로 보인다. 통영시는 5일 통제영지 발굴조사 성과보고회를 열어 고증에 근거한 복원사업으로 세계문화유산을 목표로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조선시대 첫 통제영은 초대 통제사였던 이순신 장군이 만든 한산진영이 최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이곳에서 '한산섬 달 밝은 밤에 긴 칼 옆에 차고∼'라는 유명한 시를 지었다.
하지만 통제영지였던 한산진영은 정유재란으로 폐허가 됐고 이후 전란 중 전세에 따라 여러 곳을 전전했다.
그러다 통제영이 통영에 다시 들어선 것은 1605년이다. 선조 37년인 1604년 제6대 통제사였던 이경준이 통제영을 현 통영시로 정하고 터를 닦기 시작해 2년 만에 만들었다. 통영은 우리나라 최초 군사계획도시였던 셈이다.
그 후 통제영은 1895년 고종 32년에 각 도의 병영 및 수영이 폐영될 때까지 292년 동안 존재했으나 일제강점기때 민족정기 말살정책에 따라 세병관만 남겨지고 크고 작은 관아 100여동이 모두 헐렸다. 통제영 터에는 법원·검찰청·학교·세무서 등이 지어졌다.
현재 통영시 문화동·태평동에 걸쳐 있는 통제영지에는 당시 건물로 세병관이 유일하게 남아있고. 그 후 1987년에 복원된 수항루 1동과 두룡포 기사비(경남유형문화재 112호)와 비각이 남아있다.

따라서 최초의 군사계획도시이자 삼도수군통제영의 도시였던 통영의 정체성을 되찾는 사업으로 풀이된다.
삼도수군통제영 발굴과 복원을 위한 작업이 시작된 것은 1996년으로, 통제영지를 사적으로 지정 받기 위해 기본지표조사 등을 벌였고 이를 바탕으로 1998년 사적 제402호로 지정 받았다.
본격적인 발굴·복원사업은 1998년으로 당시 정부가 추진한 남해안관광벨트사업 중 유적복원사업에 통제영지 발굴·복원사업이 포함되면서 본격화됐다. 시는 총사업비 596억원(국비 359억·지방비 237억)으로 오는 2009년까지 12공방·백화당·운주당 등 주요 관아 30여동을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통제영 고증 복원을 위한 발굴작업은 지난 2005년 12월 시작됐다. 경남문화재연구원은 같은해 12월 사전조사를 벌이고 2006년 2월초부터 실질적인 발굴에 들어가 1년 3개월여만인 오는 12일 마무리할 계획이다.
발굴을 담당했던 경남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300여년 전이라는 시간이 짧은 시간이어서 토층 등을 연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발굴현장을 바탕으로 통제영이 폐영되기 전 12공방이 활발했던 19세기 당시 만들어졌던 통제영 고지도와 함안총쇄록 등을 조합한다면 고증 복원이 충분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시는 이미 2007년도 공유재산 관리계획 제1차 변경계획을 지난달 시의회에 제출해 통제영 복원사업과 연관한 통제영 거리 조성사업 부지 확보를 위해 146억여원을 들여 토지 99필지, 건물 7동 등을 사들인다는 계획을 승인 받았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이 충무공을 기리는 통영 한산면의 제승당과 함께 명실공히 이순신 장군의 도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 by | 2008/07/17 00:49 | 조선시대 朝鮮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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