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13일
호류사 (法隆寺)
백제사람 목만치의 후예인 소아(蘇我)가에 의해 불교가 융성해졌고 그는 일본 왕실의 실세가 되었습니다. 그의 조카딸이 스이코 여왕이고 외손자가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호류지(법륭사)를 지은 쇼토쿠(성덕태자)입니다.

호류사(법륭사 法隆寺)
일본인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라는 자랑하는 문화재다
창건 기록은 일본사서에는 없고 불상의 광배 뒤쪽에 명문으로 607년 지어졌다고 유추한다
공식적인 호류사 기록은 텐지천왕 9년 (670년) 화재로 전부사라져버렸다며 나온다.
夏四月癸卯朔壬申 夜半之後 災法隆寺 一屋無餘
발굴결과 원래의 호류사 자리에서 100미터 쯤 옴겨 재건되기 시작해 711년 전후로 완공되었다.
고구려 담징이 610년 왜국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그렸다는 금당 벽화도 이때 전부 사라졌다.
최근 호류사의 100미터 떨어진 원래의 호류사 자리에서 벽화조각들이 발굴되었다 한다.
지금 남은 벽화는 691년 전후로 그려졌으며 모사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또 1949년 전기 화재로 대부분 불타고 말았다.
지금 호류사에 있는 벽화는 일본 화가들에 의해서 화재 전의 사진을 참고로 재현된 것이다.
사용된 표준자는 고려척(고구려 자)이며 1탑 1금당으로 백제형식이라고는 하지만 배치법이 약간 다르다.
가장 오래된 건축형식을 보이는 곳은 중문으로 고구려에서 유행하던 배흘림 기둥을 볼수 있다.
지붕은 열도에 비가 많은 만큼 널직하고 길게 개발된 독특한 처마와
백제 소탑 유물에서도 나오는 하앙 형태로 호류사 특유의 하앙과 운형공포는 연구가치가 크다.
누가 세웠나?
대략 일본서기에선 쇼토쿠타이시(성덕태자)가 섭정을 펼치던 시대인데 가상인물 논란이 있다.
창건 기록은 없고 재건기록만 존재한다.
호류사에 관해서 뒷이야기
볼만한것으로 도래인사마달등(司馬達等)의 후손 사마지리(司馬止利 :토리불사)가 만들었다는 명문이 찍힌 석가삼존상(金銅釋迦三尊像)이 있다. 사마지리가 손수 제작했다는 기록은 석가삼존상의 광배명에 써있고, ‘성덕태자전력’에도 나와 있다.
또한 몽전에 백제 성덕태자와 백제 성왕의 전설이 전해지는 구세관음상이 있다. 이것에 관해서
호류사에 전해지는 성예초(聖譽抄·1394∼1427)문서에는 [백제 위덕왕이 서거하신 부왕 성왕을 추모하여 백제왕실에서 만들어 보내준 것이 구세관음상이다. 쇼토쿠태자는 백제 성왕의 화신이다] 라고 쓰여있다.
일본 행복 회로에 의해 현지에서 구세관음상은 쇼토쿠태자 실물 크기의 비불(秘佛)이라고만 설명된다.
마지막으로 대보장전(大寶藏殿)에 구다라간논(백제 관음상)이 있다. 역시 일본에서는 백제와의 모든 연관성을 부정한다.
짜식들. 백제와 관련되어서 쪽팔린가? ㅋㅋ
일본애들은 자존심이 쎄서 한국에서 뭔가 배워왔다 모방했다 이런거는 모두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호류사의 유명한 보물들

토리불사가 만든 삼존상


백제 성왕의 모습을 조각한 구세관음상

호류사의 전승기록 성예초(聖譽抄)에 나오는 백제 성왕 구세관음상 일화

동양 최고의 비너스 호류사 쿠다라간논 (백제관음 百濟觀音)
역시 일본인의 행복회로에 의해 이것은 일본산 녹나무로 만든 데쑤! 백제와 관련이 없는 데쑤!라고 최근 떠든다.
원래는 허공장보살이라고 불리다가 17세기 에도시대부터 백제관음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최근 밝혀진바에 의하면 호류지 고문서 ‘제당불체수량기 금당지내(諸堂佛體數量記 金堂之內)’에
“허공장보살은 백제국으로부터 도래하였다(虛空藏菩薩百濟國ヨリ渡來)”라고 쓰여 있다.
백제관음의 유래가 적힌 諸堂佛體數量記 金堂之內 문서
“허공장보살은 백제국으로부터 도래하였다(虛空藏菩薩百濟國ヨリ渡來)”

비단벌레로 만든 옥충주자 (玉蟲廚子). 호류사 건축기법과 비단벌레 기법으로 유명한 보물
비단벌레 장식유물은 신라고분에서 특히 많은데 온전한 유물이 호류사에 보관되고 있습니다.
건물을 조각해 놨기 때문에 아스카시대의 백제 건축자료를 담고 있습니다.
観音菩薩立像 (관음보살 입상) 56. 7cm
法隆寺 阿弥陀三尊像 銅造 34cm 伝橘夫人念持仏 蓮池 厨子は阿弥陀浄土の荘厳
이외에도 많은 일본 불상들이 있다.
호류사 內 건물의 시대별 보수 / 재건 연대
670 法隆寺(若草伽藍)焼失
奈良時代 711 西院完成
739 行信 夢殿造立
平安時代 925 講堂 焼失
989 上ノ御堂 崩壊
1121 聖霊院 新造
鎌倉時代 1284 聖霊院 改築
1318 上ノ御堂 再建
室町時代 1438 南大門 再建
江戸時代 1605 慶長大修理(豊臣秀頼)
1696 元禄大修理(徳川綱吉・桂昌院)
近代・昭和・平成 1934 昭和大修理 始まる
1941 大宝蔵殿 完成
1949 金堂壁画 焼失
1968 金堂壁画 再現
1985 昭和大修理 完成
1993 ユネスコ世界文化遺産 登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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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류사(법륭사 法隆寺)
내력 소개
670년(천지 9년) 화재로 전소했다고 기록.(일본 서기)
690~710년경까지 몇몇 중요 건물 재건(오층목탑,금당,중문..)
738년(나라시대의 연호 10년)경, 유키노부 승도(승관의 둘째 계급)에 의해 우에노미야왕원(현재 동쪽 가람)이 건립된다.
925년(연장 3년)에는 사쪽 가람의 대강당, 종루가 소실한다.
990년(쇼랴쿠 원년) 현재의 가람의 모습이 갖추어진다.
1435년(에이쿄 7년) 남쪽 대문이 소실한다
1884년(메이지 17년) 페노로사와 오카쿠라덴신에 의해 구세관세음 보살 입상 발견.
1934년(쇼와 9년) 「쇼와의 대수리」가 개시.
1939년(쇼와 14년) 「와카쿠사 가람」발굴.
1949년(쇼와 24년) 금당 담징 벽화를 전기 화재로 소실.
1985년(쇼와 60년) 쇼와의 대수리 완성.
1993년(헤세이 5년) 12월 9일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
670년(천지 9년) 화재로 전소했다고 기록.(일본 서기)
690~710년경까지 몇몇 중요 건물 재건(오층목탑,금당,중문..)
738년(나라시대의 연호 10년)경, 유키노부 승도(승관의 둘째 계급)에 의해 우에노미야왕원(현재 동쪽 가람)이 건립된다.
925년(연장 3년)에는 사쪽 가람의 대강당, 종루가 소실한다.
990년(쇼랴쿠 원년) 현재의 가람의 모습이 갖추어진다.
1435년(에이쿄 7년) 남쪽 대문이 소실한다
1884년(메이지 17년) 페노로사와 오카쿠라덴신에 의해 구세관세음 보살 입상 발견.
1934년(쇼와 9년) 「쇼와의 대수리」가 개시.
1939년(쇼와 14년) 「와카쿠사 가람」발굴.
1949년(쇼와 24년) 금당 담징 벽화를 전기 화재로 소실.
1985년(쇼와 60년) 쇼와의 대수리 완성.
1993년(헤세이 5년) 12월 9일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
일본인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라는 자랑하는 문화재다
창건 기록은 일본사서에는 없고 불상의 광배 뒤쪽에 명문으로 607년 지어졌다고 유추한다
공식적인 호류사 기록은 텐지천왕 9년 (670년) 화재로 전부사라져버렸다며 나온다.
夏四月癸卯朔壬申 夜半之後 災法隆寺 一屋無餘
발굴결과 원래의 호류사 자리에서 100미터 쯤 옴겨 재건되기 시작해 711년 전후로 완공되었다.
고구려 담징이 610년 왜국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그렸다는 금당 벽화도 이때 전부 사라졌다.
최근 호류사의 100미터 떨어진 원래의 호류사 자리에서 벽화조각들이 발굴되었다 한다.
지금 남은 벽화는 691년 전후로 그려졌으며 모사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또 1949년 전기 화재로 대부분 불타고 말았다.

사용된 표준자는 고려척(고구려 자)이며 1탑 1금당으로 백제형식이라고는 하지만 배치법이 약간 다르다.
가장 오래된 건축형식을 보이는 곳은 중문으로 고구려에서 유행하던 배흘림 기둥을 볼수 있다.
지붕은 열도에 비가 많은 만큼 널직하고 길게 개발된 독특한 처마와

누가 세웠나?
대략 일본서기에선 쇼토쿠타이시(성덕태자)가 섭정을 펼치던 시대인데 가상인물 논란이 있다.
창건 기록은 없고 재건기록만 존재한다.
호류사에 관해서 뒷이야기
볼만한것으로 도래인사마달등(司馬達等)의 후손 사마지리(司馬止利 :토리불사)가 만들었다는 명문이 찍힌 석가삼존상(金銅釋迦三尊像)이 있다. 사마지리가 손수 제작했다는 기록은 석가삼존상의 광배명에 써있고, ‘성덕태자전력’에도 나와 있다.
또한 몽전에 백제 성덕태자와 백제 성왕의 전설이 전해지는 구세관음상이 있다. 이것에 관해서
호류사에 전해지는 성예초(聖譽抄·1394∼1427)문서에는 [백제 위덕왕이 서거하신 부왕 성왕을 추모하여 백제왕실에서 만들어 보내준 것이 구세관음상이다. 쇼토쿠태자는 백제 성왕의 화신이다] 라고 쓰여있다.
일본 행복 회로에 의해 현지에서 구세관음상은 쇼토쿠태자 실물 크기의 비불(秘佛)이라고만 설명된다.
마지막으로 대보장전(大寶藏殿)에 구다라간논(백제 관음상)이 있다. 역시 일본에서는 백제와의 모든 연관성을 부정한다.
짜식들. 백제와 관련되어서 쪽팔린가? ㅋㅋ
호류사의 유명한 보물들



백제 성왕의 모습을 조각한 구세관음상


역시 일본인의 행복회로에 의해 이것은 일본산 녹나무로 만든 데쑤! 백제와 관련이 없는 데쑤!라고 최근 떠든다.
원래는 허공장보살이라고 불리다가 17세기 에도시대부터 백제관음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최근 밝혀진바에 의하면 호류지 고문서 ‘제당불체수량기 금당지내(諸堂佛體數量記 金堂之內)’에
“허공장보살은 백제국으로부터 도래하였다(虛空藏菩薩百濟國ヨリ渡來)”라고 쓰여 있다.

“허공장보살은 백제국으로부터 도래하였다(虛空藏菩薩百濟國ヨリ渡來)”

비단벌레로 만든 옥충주자 (玉蟲廚子). 호류사 건축기법과 비단벌레 기법으로 유명한 보물
비단벌레 장식유물은 신라고분에서 특히 많은데 온전한 유물이 호류사에 보관되고 있습니다.
건물을 조각해 놨기 때문에 아스카시대의 백제 건축자료를 담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일본 불상들이 있다.
호류사 內 건물의 시대별 보수 / 재건 연대
670 法隆寺(若草伽藍)焼失
奈良時代 711 西院完成
739 行信 夢殿造立
平安時代 925 講堂 焼失
989 上ノ御堂 崩壊
1121 聖霊院 新造
鎌倉時代 1284 聖霊院 改築
1318 上ノ御堂 再建
室町時代 1438 南大門 再建
江戸時代 1605 慶長大修理(豊臣秀頼)
1696 元禄大修理(徳川綱吉・桂昌院)
近代・昭和・平成 1934 昭和大修理 始まる
1941 大宝蔵殿 完成
1949 金堂壁画 焼失
1968 金堂壁画 再現
1985 昭和大修理 完成
1993 ユネスコ世界文化遺産 登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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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2/13 00:00 | japan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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