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일본 여행기 및 에도시대 평균키

 

왜의 소동(小童)이 밥과 국 세 상을 내왔다. 모두 옷칠한 작은 그릇에 담아 뚜껑을 덮었다.나뭇조각을 겹쳐 접어서 마치 부채를 펼친 것 같은 데다가 생선회와 고래비계 등을 담았다.방어와 자포(煮泡)등 반찬이 거의 십여가지나 되었지만 시고 싱거워서 모두 먹을만 하지 못하였다.계속해서 건과를 내왔는데 역시 먹을 수가 없었다. 

이키섬에 머물렀다.날이 개고 좋았다가 반나절만에 다시 흐려졌다.
..이 섬의 지공은 빠진 적은 없으나
그 조잡하고 더럽고 자질구레한 음식들은 먹을 수가 없었으며, 대통과 찬합의 비리고 누린내 나는 것은 웃을 수조차 없었다. 

비전주의 일기도를 출발해서 축전주의 남도(藍島)에 정박했다....숙공(익힌음식)을 내왔다. 이른바 연근국이라는 것과 익힌 전복인데 모두 먹을 수가 없었다. 

에도에 머물렀다...음식은 진무(振舞) 때와 다름이 없었으나 가히 젓가락을 댈 수가 없었다. 

의복은 비단을 쓰기는 하지만 아래에는 바지가 없고, 또 겹으로 입거나 솜을 두툼하게 넣지 않는다.음식은 아침저녁 밥을 반드시 다 먹는 것은 아니다.음식에는 작은 그릇을 쓰는데 술잔만 하다.반찬도 많이 차리지 않는다.생선은 비리고 싱겁다.장 역시 짜지 않다.먹는 것은 쌀 몇 약(1홉의 1/10)에 지나지 않는다.입고 먹는 비용은 그다지 많이 들지 않는다.방에는 구들이 없고 재목은 이루 다 쓸 수 없는 정도이다. 사치스러운 것은 오직 방과 집뿐이다. 저들이 우리의 의관을 보고 흠모하는 마음을 가져서 빌려다 보고 제도를 상고하는 자도 있다.우리나라 사람은 풍토가 맞지 않아서 저들의 익힌 음식을 먹지 못하는데, 저들은 우리 종들이 이바지한 형편없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맛있다고 한다. 음식이 좋지 못한 것을 저들이 일찍이 알지 못했을 리가 없다.
 

-일관기(日觀記, 1763년)-




 

 

(일본)백성들이 고생스럽고 인색한 것은 아마 천하에서 최고일 것으로 비록 우리 배를 끄는 격졸(格卒)로 말한다 하더라도 매일매일 익힌 고구마 뿌리를 두 번 먹고 그 뒤에 밥을 먹는 사람은 오분의 일에 불과하다.또한 수저질 몇번에 나무 그릇 바닥에 닿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비록 같이 앉아서 먹는 사람이 (밥이)없다고 해도 양식 한 톨도 나누어 주지 않는다.
(우리)여섯 배에 타고 있는 왜의 사공들은 예에 따라 우리가 음식을 먹이는데, 모두 큰 통을 가지고 와서 반드시 음식을 많이 달라고 한다.(우리)격군들이 그들의 음식을 탐하는 것을 비웃으며 질책을 하여도 또한 부끄러움을 알 지 못하였다. 백성들은 날로 번창하는데(숫자는 많아지는데)살아가는 형편이 이와 같이 심하게 고통스러우니, 만일 그들의 배를 만드는 능력이 우리의 열배가 된다면 우리 앞날에 닥칠 근심이 또한 적지 않으리라 저어된다.

마을은 가히 백 호쯤 되는데 모두 초가집이었고 사는 것이 궁핍했으며 모두 남루했고 빗질도 안 했으며 씻지도 않았다. 여자들은 나오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으니 의복이 깨끗하지 않아 다른 사람을 만날까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널로 덮은 3층짜리 집들이 있었는데 모두 신사(神舍)와 승사(僧舍)라고 한다.

고공사 아래에 머물렀을 때 작은 배에 나무 손잡이가 있는 둥근 어망을 실은 어부가 그 아내와 더불어 배를 저어 오징어를 잡고 있었다.

어부는 한 자쯤 되는 베로 음부를 가리었고 그의 아내도 한 자쯤 되는 베로 치마폭을 만들어 앞뒤를 가리었으니, 남녀가 온몸을 벌겋게 내놓고 있었다.


-승사록(乘사錄, 18세기)-

 

위의 마지막 그림이 섬나라의 시대에 따른 평균신장의 통계치 입니다. 섬나라 극우나 혹은 섬나라인들은 에도시대가 사회전반적으로 매우 윤택하고 발전한 시대처럼 과장되게 묘사하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 앞선 고분시대나 야요이 시대보다 더욱 낮은 최저점의 단신시대입니다. 백성들의 하루 하루 먹고 사는 것 조차 힘든 시기임을 알수 있는 부분입니다.

 

에도시대에 관해서 엄청나게 부유했던 것처럼 자료를 인용하지만...실제 조선통신사들이 본 모습은 저런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일부만 인용하고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것이 섬나라쪽과 친일학자들이죠

 

섬나라인들의 평균신장을 보면 가장 큰 것이 고분시대, 그 다음이 야요이시대입니다. 가장 작은 것은 에도시대죠. 에도시대의 경우 일본백성들은 최소한의 생명유지선까지만 생활하는 상황으로 매우 어려웠습니다. 위의 기록은 당시 일본의 모습을 잘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도시대의 게이샤문화도 관해서도 섬나라의 왜곡이 있습니다. 섬나라에서 게이샤문화와 같은 것은 상류층에 한정된 문화입니다. 반면 조선시대의 기생들이 있는 기방에 가는 것은 평민들입니다. 양반들은 기생을 직접 불러서 자기 집의 후원이나 교외에서 놀았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문화는 양반에 국한'이라는 식으로 양반이 기방에서 기생들과 노는 모습이 일반적입니다. 실제 그러한 것은 섬나라의 문화입니다. 양반들이 기방에서 기생들과 노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거의 없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창녀들은 몸파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특기가 체위입니다. 반면 조선시대의 기생들은 문학작품을 외우는 것이 특징이며, 제주나 함경도(혹은 평안도 둘중 하나) 기생들은 특기가 '말타기'입니다. 이러한 것이 가능한 이유는 양반들이 교외로 기생을 불러서 놀았기 때문이죠


 


덧글

  • 난쟁이 해적 2012/04/11 15:09 # 삭제 답글

    http://www.kjclub.com/kr/exchange/theme/read.php?uid=43107&fid=43107&thread=1000000&idx=1&page=1&tname=exc_board_65&number=386&f=k_subject&word=%ED%82%A4

    http://www.kjclub.com/kr/exchange/theme/read.php?tname=exc_board_65&uid=36576&fid=36576&thread=1000000&idx=1&page=1&number=19&f=k_subject&word=%EC%8B%A0%EC%9E%A5


    조선시대 평균키가 에도시대의 왜인보다 6cm 큰 것으로 분석



    서울대의대 해부학교실 황영일·신동훈 교수팀은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 조선시대 남성 67명과 여성 49명 등 116명 유골에서 채취한 대퇴골을 이용해 평균키를 분석한 결과 1월 31일 이같이 밝혔다.

    연구팀에 따르면 조선시대 평균키는 남성이 161.1cm, 여성은 148.9cm로 나타났다. 이같은 조선시대 평균키는 지난 2010년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이 조사한 한국인 평균키인 남성 174cm, 여성 160.5cm에 비해 각각 12.9cm, 11.6cm 작은 것이다.


    연구팀은 조선시대 한국인 평균키는 15세기부터 19세기말까지 큰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중세시대 신장에 별 차이가 없다가 19세기초 산업화와 함께 일시적으로 평균키가 급신장한 서구 국가와 대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인 평균키는 15세기 이후 정체됐다가 20세기 초부터 급성장했다.

    조선시대 남성 평균키는 동시대 다른 서구국가에 비해 크게 작았으나 일본에 비하면 약 6cm이상 컸다. 연구팀이 제시한 에도시대부터 메이지 시대까지 일본인 남성 평균키는 154.7cm정도였다. 이는 당시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을 왜(倭)'라고 부른 근거가 된다.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201310821004100

  • 난쟁이 왜구들~ 2016/07/27 12:53 # 삭제 답글

    <일본 고교생, 부모 보다 다리 짧아졌다!>

    일본 고등학생들의 앉은 키는 남녀 모두 커졌지만 신장 자체는 그대로여서
    부모 세대에 비해 <고교생의 다리가 더 짧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올해 4-6월 전국 유치원부터 고교까지 9천100개교를 대상으로 실시해 16일 발표한 학교보건통계조사에 따르면 고교생의 경우 <신장에서 차지하는 다리 길이의 비율이 부모세대 보다 낮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고3학생의 평균 키는 남자 170.8㎝, 여자 157.9㎝로 <10년전부터 제자리 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세대를 지날 수록 키는 자라는데 다리는 점점 짧아지는 신기한 왜구들의 진화론..ww



    한국은?


    한국인 체형 서구화, 평균 7등신 넘어

    우리나라 사람들의 키는 커지는 반면 얼굴은 작아지는 등 한국인의 체형이 점차 서구형으로 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따라 얼굴에 대한 키의 비율을 나타내는 '등,신지수'도 남성의 경우 6.8등,신에서 7.4등,신으로 바뀌었고 여성은 6.7등,신에서 7.2등,신으로 변했다.


    [출처]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점|작성자 윈터스

    http://blog.naver.com/monkey_hunt/150039621870
  • 난쟁이 왜구들~ 2016/07/27 13:02 # 삭제

    일본 고교생, 부모 보다 다리 짧아졌다

    일본 고등학생들의 앉은 키는 남녀 모두 커졌지만 신장 자체는 그대로여서 부모 세대에 비해 고교생의 다리가 더 짧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7100002/2004/12/007100002200412170933239.html
  • 호빗 쪽바리들! 2017/05/01 22:34 # 삭제 답글

    일본인 성장 멈췄다?…1994년 남 170.9cm·여 158.1cm서 '스톱'

    일본인의 평균 신장은 더 이상 커지지 않는다?

    NHK에 따르면 청소년 발육상태 조사가 처음 실시된 1948년 17세 일본 청소년의 평균 키는 남자 160.6㎝, 여자 152.1㎝였다. 일본인의 평균 신장은 이후 계속 커져 1994년에는 남자 170.9㎝, 여자 158.1㎝에 달했다. 약 50년간 남자는 10㎝ 이상, 여자는 6㎝나 커졌다.

    '피크'를 지났다는 설이 제기되는 근거는 이때 이후로 평균 신장이 1994년 기록을 넘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3월에 발표된 2016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남자의 평균 키는 170.7㎝, 여자는 157.8㎝였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남녀 모두 피크 때보다 2㎜~3㎜ 작은 해가 많아졌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9167520


    쪽바리 = 호빗!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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