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옥 공방에서 나와야할 유물이란? 勾玉工房

한국의 양면 뚫기


사진은 함안 도항리 출토의 크리스탈 재질의 다면체 구슬
구멍을 뚫기 위해서 양쪽에서 뚫기 방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한국 곡옥 유물의 99%가 이방법을 사용했다고 경남대 이상길 교수가 말했다.

구슬 장신구중에서 가장 먼저 출현한것은 대롱옥으로 주로 신석기 유적에서 그 제작흔적을 볼수있다.
신석기시대의 춘천 교동의 동굴유적에서는 백마노로 만든 길이 11㎝나 되는 큰 대롱옥도 나왔다. 그것은 구멍을 뚫다가 그만둔 미완성품이고 구멍을 뚫는 송곳도 함께 나와 그러한 대롱옥이 현지에서 만들어졌음을 말해주고 있다. 



죠몽의 관추기법

관추기법이란 구멍낼 부분에 금강사(가늘고 강한 모래)를 놓고 물을 적셔가며 비비같은 것으로 대나무를 고속으로 회전시켜 구멍을 뚫는 방법이다.


일본인들이 재현하는 죠몽곡옥 관추기법 (たまつくり, 管錐)

대나무로 비취를 뚫는 방법은 대부분 재현하지 못하고 있고 요즘의 합금 공구를 이용해 관추기법을 흉내낸다.
관추기법의 한계는 대나무를 사용하는 이상 직경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현대적인 관추용 드릴 공구를 사용해도 사진처럼 직경이 크다.


죠몬 아이누족들은 관추기법 (대나무와 금강사로 뚫기) 흔적의 비취가 발견되는데 정밀한 구멍을 뚫는 방법은 아니며 큰 직경을 뚫을때 사용된다. 이처럼 제작기법이 큰 차이가 있다.
계속 검색해봤지만 열도의 죠몬시대에는 구슬은 있어도 관옥 유물은 찾지 못했다..  대부분 야요이 시대의 것만으로 한국식 양쪽뚫기가 열도에서도 유행하게 된다.



곡옥 공방 유적

한국 청동기 시대에는 대평리를 비롯한 남강유역의 여러 유적이 옥 제작과 유적, 산청 묵곡리유적 ,경호강변의 묵곡리, 귀곡동 대촌유적 등 남강유역의 전 지역에서 옥 생산 관련 자료들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유적지에서는 석영과 같이 단단할 재질의 추가 종종 발굴되고 있고, 진주 대평유적에서는 연마제로 판단되는 고운 모래들이 주거지에서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옥 유물 중 99%는 양쪽으로 구멍을 뚫었다'고 이상길 경남대 교수가 말할 정도로 양쪽 뚫기가 대세였다는 점이 독특하다. 도항리 수정옥 외에 다른 곡옥,관옥들의 단면도 대체로 원통형보다는 장구형이 압도적으로 많다.


경남 진주 남강유역 청동기시대 옥방 5지구 -2


그중에 진주시 대평리 옥방 유적에 청동기시대의 가공 도구를 살펴본다.



실제로 6번 유물이 구멍을 뚫던 도구이며 이것이 있어야 곡옥이든 관옥이든 만들수 있었다.
1번은 갈판으로 모양을 다듬던 돌판이다.


한국식 활비비는 조선시대까지 이런형태를 사용했는데



청동기시대 유물중에 같은 형식의 활비비돌이 발견되었다.

함경북도 무산읍 범의구석유적 (청동기시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송곳의 역활을 하는 심이 필요한데
국보 제231호로 지정된 활석제(滑石製) 청동기 거푸집[鎔范] 일괄 14점 가운데 1쌍 2점이 있다.
거푸집 안에 청동 바늘의 주형이 보인다.





그러나 청동 송곳 실제 유물은 아직 발견된바가 없어서 랴오닝의 청동기 자료를 빌린다.
 스얼타이잉쯔 돌덧널무덤은 비파형동검이 나오는 기원전 8세기 유적지로 청동 송곳의 선후 관계를 잘 말해준다.


 결론 : 열도의 기원전 유적지엔 구멍을 뚫을 전문적인 도구가 없다 .

왜인들이 후대 야요이시대의 곡옥을 은근슬쩍 죠몽곡옥으로 둔갑시키는 이유가 이것이다.


덧글

  • ㅎㅎ 2011/07/05 02:15 # 삭제 답글

    유즈킨지 먼지하는놈은 왜 반박덧글 안다는거지
  • ㅎㅎ 2011/07/05 02:18 # 삭제 답글

    논파당한건가..하기야 일본이 한국보다 우월했던건 에도시대부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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