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산 문화 (紅山文化; BC 4500~3000)



6500~5000년전 동양 최대의 옥기 문화

글/사진 출처 : 경향닷컴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이형구 교수 연재물  펌.


홍산 문화


-巫人과 玉 그리고 하늘-

한나라 때 자전인 ‘설문(說文)’이 ‘玉 ’글자를 설명한 내용을 보자.

령(靈)은 밑의 무(巫)가 玉으로(가운데 입 口자 3개) 신과 소통한다(以玉通神)는 뜻이다.


머우융캉(牟永抗)·우루쭤(吳汝祚) 등 중국 학자들은 “무(巫)는 인간과 신의 왕래자”라고 해석했다. 인간의 대표이면서 신의 의지를 체현(體現)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무인인 것이다. 여기서 옥은 무인이 신에게 헌납하는 예물이다.

보통 중국 상고사를 (구·신)석기-청동기-철기 등 3단계로 구분한다. 그런데 여기에 옥(玉)의 시대를 넣어 석기-옥기-청동기-철기 등 4단계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이미 2000년 전부터 나왔다. 후한 때 원강이 지었다는 월절서(越絶書·춘추전국시대 월국의 흥망을 기록한 책)에 따르면…. 풍호자(風胡子)라는 사람이 초나라 왕에게 치국의 도를 이야기 하면서 옥기 시대를 언급했다.

“헌원·신농·혁서의 시대인 돌을 병기로 삼았고(석기), 황제의 시대엔 옥(玉)으로 병기와 신주(神主)를 삼았다. 우임금 때는 청동기를, 그 이후엔 철기를 썼다.”

훙산인들은 ‘옥=인간·자연의 조화’ 관념을 지녔는데, 이 전통은 후대 유학자들의 심금을 사로잡았다.

특히 공자는 ‘군자는 옥으로 덕을 견준다(以玉比德)’(‘예기’ 빙의·聘義편 )고 강조했다. 공자는 재질과 광택, 구조, 소리 등 옥의 자연적인 특성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도덕적 가치에 부여한 것이다.

“옥(玉)이 온유한 것은 인(仁)과 같고, 치밀한 것은 지(知)와 같고, 곧아서 남을 해치지 않은 것은 의(義)이며, 정연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예(禮)를 닮았다. 소리가 청아하고 여운이 끝이지 않는 것은 악(樂)이고, 옥의 티와 좋은 마음을 감출 수 없으니 충(忠)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군자는 온유하고 마치 옥과 같이 생겼으니 그래서 군자가 귀한 것이다.”(예기)




8000년전 홍산문화를 잉태한 발해만의 신석기 문화.


옥귀걸이(결상이식)와 빗살무늬 토기


사해와 흥륭와 문화는 황하 하류 이른 시기의 문화로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다. 황하 하류의 자산·배리강 문화는 지금으로부터 8000~7000년 전의 것으로 조사되었다. 사해·흥륭와지역은 1994년 전국 단위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문화의 영향 관계


 신석기 최대의 돌무지 무덤(적석총)

뉴허량 유적은 랴오닝성 차오양시 젠핑(건평·建平)과 링위안(능원·凌源)의 경계선에 걸쳐 있다. 1940년 역사교사 둥주천(동주신·冬柱臣)이 채색토기를 발견했고, 1979년 역시 이곳 영역내인 싼관뎬쯔(三官甸子)에서 옥기묘를 발굴한 적이 있다. 하지만 본격 발굴된 것은 1983년이었다. 쑨서우다오(손수도·孫守道)와 함께 발굴을 주도한 궈다순(郭大順)의 회고.

“지난 100년 동안 500여곳의 훙산문화 유적을 발견했는데, 무덤이 확인된 예는 거의 없었습니다. 뉴허량 유적이 하나하나 벗겨질 때마다 학계가 경악했어요. 적석총과 제단, 신전은 물론 다량의 옥기가 쏟아진 것이죠. 그리고 한 변이 100m에 달하는 수수께끼의 금자탑(피라미드)까지…. 발굴단은 모두 20여곳의 유적을 확인했고, 16개 지점에 대한 번호를 매겼어요. 확인된 유적의 면적은 무려 50㎢에 달했고….”

1992년에 확인된 동방의 피라미드(제13지점). 아직 정식 발굴이 이뤄지지 않았다.


우하량 제2지점 적석총 유적 전경. 한반도에서 흔히 볼수 있는 청동기시대의 석상식 석관묘가 있으며, 지(之) 자형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되었다.
중국 요녕성과 내몽골, 하북성 경계의 燕山(연산) 남북, 만리장성 일대에 널리 분포된, 국가 체제를 완벽하게 갖춘 이 유적을 ‘홍산문화’라고 부른다.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가 묘장법인데 죽은 사람의 장례의식은 오랜기간 변하지 않는 그 민족 고유의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홍산문명의 가장 큰 특징은 석묘계(石墓系) 돌무덤인데 돌을 쌓아 묘실을 구성하는 적석총(돌무지무덤)과 돌판을 잘라 묘실벽을 짜는 석관묘(돌널무덤)가 대능하 상류지역 요녕성 우하량유적에서 발굴되었습니다.

반면에 중국의 지나족은 땅을 파서 묘실을 만들고 시신과 유물을 안장하는 토광묘가 유행하였고 주(周)나라시대에 들어서 나무로 관을 짜서 묘실을 만드는 목관묘가 유행합니다. 역사에서 홍산문명과 동일한 석묘계의 묘장법을 채용하고 있는 나라가 고조선이며 고조선의 전단계인 홍산문명은 고조선의 선조들이 이룩한 문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돌을 이용해 구조물을 축조하는 방식이 고조선 이후 부여, 고구려 그리고 백제에도 계속해서 계승되는 한민족(韓) 고유의 풍습이기도 합니다.


고인돌 무덤의 형태의 가설


석관묘

뉴허량 제1지점 중심대묘에서 확인된 인골. 양손에 옥 거북이를 쥐고 있는 것을 비롯, 7점의 옥기만 부장돼 있다.
일인독존의 무인(巫人)으로 추정된다.



곰 토템의 중심지.
곰이 조각된 가락지

뉴허랑 유적지의 곰 발 조소상과 곰 턱뼈

 

요즘엔 이 C자형 옥룡의 원형은 돼지 혹은 사슴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구멍 뚫린(鱇形) 옥’은 그 원형이 곰(熊)이라는 설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즉 이 결형 옥이 훙산문화의 전신인 차하이(사해·査海)-싱룽와(흥륭와·興隆窪·BC 6000년전)에서 확인된 옥결을 계승하고 있다

여하튼 중국학계는 뉴허량에서 나온 결형 옥의 원형을 예전에는 돼지로 보았지만, 요즘엔 곰으로 보고 있다. 뉴허량 적석총에서 잇달아 출토된 곰뼈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즉, 뉴허량 2지점 4호총 적석총에서는 완벽한 형태의 곰아래턱 뼈가 나왔다. 이뿐이 아니다. 후술하겠지만 뉴허량 여신묘에서 나온 진흙으로 만든 동물 가운데는 두 개체의 짐승류가 확인됐다. 발굴단은 처음엔 이 동물이 으레 돼지이겠거니 했다. 출토 사실을 보도한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돼지 주둥이는 두 개의 타원형 콧구멍이 있고~ 상하 턱 사이에는 입술 밖으로 긴 이가 노출돼있고, 앞니 역시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봤다면 돼지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두 마리의 동물은 비교적 긴 아래턱과 길면서 구부러진 이빨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곰의 특성에 가까웠다.”(궈다순의 회고)

특히  여신묘의 주실(主室)에서 확인된 동물의 양발은 영락없는 곰의 발이었다. 네 발톱이 이렇게 노출된 동물은 곰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결국 뉴허량 여신묘에서 확인된 두 마리 짐승은 모두 곰이었던 것이다. 뉴허량 적석총에서 확인된 쌍웅수삼공기와 곰뼈, 그리고 바로 곁 여신묘에서 확인된 진흙으로 만든 곰 형상




무덤 위에 대량으로 놓아  장식하는 토기. 
 후대에 등장하는 한국과 일본의 원통형 토기 닮았음.
 
뉴허량 2지점 무덤 주위에는 토기들이 정렬돼 있다.


여신 숭배 大地母神로 유명한 홍산문화.
홍산문화지역에서 출토된 여신상.
우하량 유적지에서 나온 사람 머리 크기의 여신의 머리와 다리.



 선사시대 유물 비교
 

 
출처:

[특별기획]홍산문화 여신상은 고대종교 유적-클릭-

[코리안루트를 찾아서](1)中·한반도·日문명의 젖줄 ‘발해문명’
[코리안루트를 찾아서]신화 잉태한 ‘바이칼’을 가다
[코리안루트를 찾아서](2) 고조선 추정 청쯔산·싼줘뎬 유적
[코리안루트를 찾아서](3) 중국 조상 ‘진뉴산인 기원설’
[코리안루트를 찾아서](4) 동이의 본향, 차하이
[코리안루트를 찾아서](5) 신러유물 권장(權仗)의 비밀
[코리안루트를 찾아서](7)빗살무늬 토기문화
[코리안루트를 찾아서](9)뉴허량의 적석총들
[코리안루트를 찾아서](10)랴오허 동서쪽의 적석총
[코리안루트를 찾아서](12)훙산 곰의 정체
[코리안루트를 찾아서](13)훙산인의 어머니
[코리안루트를 찾아서](14)훙산인의 성지
[코리안루트를 찾아서](15)훙산·량주문화 중원을 향해 달리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통계 위젯 (화이트)

949
365
1429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