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 시대 곡옥 (b.c.1000~bc.3) 古朝鮮

 곡옥 토론하면서 모아논 사진들 대충 늘어놔 봅니다.
고고학 구분으론 청동기 시대이지만 사실 고조선 시대로 봐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고조선 유물이 왜 한반도 중부에서 마구 출현할까요?

그건 고조선 멸망과 매우 관계가 깊습니다.
관심있는 분은 한무제와 고조선의 전쟁. 그리고 신라로 유입된 만리장성 인근의 고조선 유민에 관한
삼국지나 한서 , 후한서 기사들을 조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청동기시대 극초기(3200년전 부근)의 곡옥 형태는 반달이나 삼각형 형상을 하고 있다.
(경주박물관 국은 기념실)



충주 조동리 선사유적의 곡옥과 7호 주거지(bc1200~500) 발굴 자료

3200년전(bc1200)~2500년전 (bc500)  대략 700년간의 생활 흔적이 남은 주거유적으로 초기 반결형 곡옥들이 출토됩니다.
남한강 일대에는 이러한 초기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곡옥 공방 유적이 분포합니다.




대표적인 송국리식 반결형 천하석 곡옥 
송국리문화유형은 80년대까지만 하여도 서기전 6~4세기로 편년되었다. 그러나 최근 요동지방의 순수한 청동기연대가 서기전 15세기경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으로 밝혀지게 됨에 따라 그 조정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에 잠정적으로나마 점차 올려보는 추세에 있다. <박순발>은 방사성 탄소연대의 측정치로 보아 한반도 중부 이남의 청동기시대 전기유적은 대체로 서기전 1,100~800년으로 보았고, 삼각형석도가 출토된 천안 쌍용동유적을 역삼동유형으로 보고 서기전 800년 무렵에 송국리문화 요소가 등장한 것으로 보았다. <이영문>은 삼각형석도와 유구석부의 공반 출토를 송국리문화의 특징적인 석기로 이해하고 이 유물의 공반출토 유적인 천안 쌍용동, 순천 우산리, 보성군 죽산리 등의 문화양상을 검토하였다. 그는 삼각형석도와 유구석부가 출토된 남해한일대의 고인돌들은 수열을 이루면서 군집되어 있으며 일부 기반식고인돌과 위석형석실이 존재하지만 개석식고인돌에 석곽형석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석검이나 비파형동검 등의 부장유물은 석곽형석실에서만 출토되고 있다고 보고, 우산리 내우는 석실배치에서 시기적으로 늦은 석실군에서 삼각형석도와 유구석부가 출현되는데 인접된 유구에서는 퇴화된 석검이 발견되었고, 죽산리는 석곽형석실 사이의 소형 위석형석실에서 삼각형석도와 유구석부편이. 덕치리도 위석형석실에서 유구석부가 출토되고 있는바 이러한 것들은 모두 늦은 단계에 조영된 고인돌에 석검이 부장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하여 전남지방의 경우지만 송국리문화 이전에 고인돌의 조영이 매우 성행하였고, 송국리문화와 결합되면서 서서히 소멸하는 단계를 보이고 있다고 보았다. 그 시기는 서기전 8세기전후로 보았다. 이와 같이 송국리문화유형의 상한연대를 서기전 9~8세기로 올려보는 견해가 많아지고 있다.

말이 좀 어려운데 송국리 유적자체가 탄소측정 년대가 기원전 10세기를 넘고있고
비파형동검의 편년이 최근 기원전 15세기(3500년전)로 가는 추세에 따라 
송국리 유적을 기존의 2500년전에서 3000년전 유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천하석(아마존스톤)이 산출되는 곳은 경주지역입니다.

기원전 4세기  연화리 유적

연화리 유적은 한국,일본을 통털어  삼종신기 (검 곡옥 거울)라 불리는 유물셋트가
 최초로 나오는 유적지입니다.

열도 원숭이들이 곡옥을 자기들꺼라 우겨도 죠몽유적지엔 이런 유물이 절대 나올수 없기 때문에..
왜인과의 토론은 참 힘겹네요..




  
 
기원전 3세기 아산 남성리 유적
조문경이 나오고 있는데 세문경보다 앞선 형식의 초기 거울

마찬가지로 거울,곡옥,칼이 셋트로 출현




경북대 박물관의 청동기시대 곡옥 목걸이 (대구 대봉동 · 상인동 출토)


숭실대 박물관의 청동기시대 아마조나이트 곡옥목걸이(아마조나이트+벽옥)
한국의 청동기시대 목걸이중에서 가장 많은 관옥이 붙어있는 목걸이입니다.
고조선의 왕들이나 마한의 신지들은 이런 목걸이를 착용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숭실대에 전시된 곡옥과 비슷한 유물이 있는데 ..
영덕오포동 청동기 시대 유적의 곡옥과 벽옥 목걸이

 

경상도 울산광역시 북구 창평동 출토 청동기시대 곡옥




전주 서부신시가지 마전Ⅲ-1구역(1지점) 주거지 출토

대전 괴정동 출토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초기 곡옥 유물중의 하나로 귀걸이 형식의 특이한 유물.





전라남도 지역의 곡옥 자료는 책을 참고로 추적.
내우 고인돌 [昇州牛山里遺蹟]

이 중 우산리 내우 고인돌군 58기가 1986년 주암댐 수몰지구 발굴조사의 일환으로 전남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이 고인돌군은 산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완만한 경사면 끝부분에 위치한다. 고인돌의 상석들은 대체로 구릉의 반대방향인 남북으로 여러 열을 이루며 배치되었고, 돌방의 방향도 이와 같다.

내우고인돌의 돌방은 크게 석곽형·돌둘림형〔圍石形〕·토광형으로 나뉜다. 이 중 할석이나 자연석을 쌓거나 세워서 벽석을 구축한 석곽형의 돌방이 확인된 52기 중 45기에 이른다. 돌둘림형과 토광형은 각각 5기와 2기에 지나지 않는다. 출토유물로는 간돌검 17점, 돌화살촉 24점, 삼각형돌칼 1점, 돌끌 1점, 홈자귀 1점, 환상석부편 1점, 비파형동검 2점, 곡옥 3점(8호 고인돌에서 2점, 6호 고인돌에서 1점), 대롱구슬 1점, 소옥 6점, 토제구슬 1점, 민무늬토기편·붉은간토기편·채문토기편 등이 있다.

내우 8호 고인돌은 고임돌이 없는 개석식(無支石式) 고인돌인데, 무덤칸은 길이, 너비, 깊이가 1.47×0.5~0.56×0.55m이다. 동검은 반파품(半破品)을 재가공한 것으로 북쪽 바닥석 서벽하에 봉부(鋒部)를 북쪽에 두고 놓여 있었다. 동검이 놓인 반대편인 남쪽에서는 굽은옥 2점과 구슬 6점이 발견되어 머리쪽에 옥을, 피장자(被葬者) 왼발치에 비파형동검을 부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수 평여동 다군 2호 고인돌

  전남 여수 평여동 고인돌에서 2점의 곡옥과 함께 소옥 235점과 관옥 35점이 무더기로 발견되어 목걸이와 옷에 장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한에 대한 기록 중 ‘마한인은 금 은보다 옥을 더 귀히 여기고, 이를 귀나 목에 걸거나 옷에 장식하기도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어 이미 고인돌사회에서도 옥을 장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안 월암리 고인돌
무안(務安) 월암리(月巖里) 1호 고인돌은 1985년 무안지역에 대한 지표조사 당시 확인된 것으로 4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었는데, 고인돌이 위치하고 있는 밭이 아파트 건축부지로 예정되어 1991년 4월 29일부터 5월 13일 까지 15일간 실시되었다.
  월암리 고인돌군은 남-북에 가까운 1열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은 상석의 방향과 일치하고 있으며 산흐름과도 일치하고 있다.
  총 4기를 발굴조사 하였으나 3, 4호 고인돌의 경우 파괴되어 정확한 하부구조를 파악할 수 없었다. 1호 고인돌의 경우 판석을 세워 석관을 만든 형식인데 후대에 토광묘가 석실을 파괴하고 추가로 축조되어 있어 특이하다. 2호의 경우 석실을 따로 만들지 않고 광을 판 후 바로 판석을 덮고 상석을 얹은 형식이다. 1호 고인돌의 경우 석실의 크기로 보아 신전장이 가능했으리라 생각되며 2호 고인돌의 경우 2차장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출토유물 석촉, 숫돌, 천하석제 곡옥, 쇠낫, 쇠 도끼, 철편, 석부, 기타 구슬류 등이 있다. 특히 천하석제 곡옥은 고인돌에서는 출토 예가 드문 것으로 영산강 유역에서 처음으로 출토되었다. 이번에 출토된 곡옥은 부여 송곡리 출토품과 비교될 수 있다.
  끝으로 고인돌의 축조년대는 곡옥의 연대를 고려해 기원전 3세기 말 2세기초로 추정한다




영암 망산리 고인돌 (靈巖望山里支石墓)
망산 마을 바로 앞 구릉에 총 6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었다. 이 곳 고인돌은 1994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 되어 하부구조 4기가 확인되었으며 석촉, 곡옥, 관옥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관옥은 영산강 유역의 고인돌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전남 함평 초포리

발굴된 부장품은 무덤구덩이의 내부바닥 출토품, 깬돌과 무덤구덩이 벽 사이의 틈에서 출토된 것, 내부 퇴적토에서 출토된 것이 있다. 첫 번째 경우로는 천하석제 식옥(天河石製飾玉) 1쌍과 검파두식(劍把頭飾)이 부착된 동검(銅劍) 2자루, 동경(銅鏡) 3점이 있다. 이 중 식옥은 귀고리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 머리를 남쪽으로 두었으며, 동남벽석에 붙어서 일렬로 발견된 동검과 동경은 피장자(被葬者)의 우측 허리와 발쪽에 놓여진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깬돌과 무덤구덩이 사이의 틈에서는 병부동령(柄部銅鈴)과 쌍두령(雙頭鈴)이 출토되었으며, 그 출토위치가 피장자의 머리부분 좌우이기 때문에 팔꿈치를 구부린 채 양손을 올리면 손으로 쥘 수 있는 위치이다. 내부 퇴적토에서는 세형동검(細形銅劍) 1점만 발견되었는데, 봉부(鋒部)가 위쪽으로 경사진 채 바닥보다 높은 위치에서 출토되었기 때문에 널 바깥의 부장품(副葬品)으로 추정된다. 이외에 발견신고품으로, 깬돌과 무덤구덩이 사이와 위에 덮었던 나무뚜껑과 봉토사이에 매납(埋納)되었다고 생각되는 청동기가 있는데, 부장유물은 총 26점으로 천하석제 식옥 2점과 숫돌 2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청동제품이며, 검파두식(劍把頭飾) 1점은 철광석제(鐵鑛石製)이다. 그 중 주민들에 의해 신고된 것이 16점, 수습발굴조사시 출토된 것이 10점이다. 여러 유물의 형식으로 볼때 기원전 2세기 유적으로 추정한다.






경상남도(慶尙南道) 산청군(山淸郡)

 



경상남도(慶尙南道) 진주시(晋州市)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에 위치한 대규모 유적이다. 광대한 창유구(畠遺構)나 풍부한 식물유존체(植物遺存體)의 출토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옥작 유구가 다수 발견되고 있는 점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그 중에서도 연마제로 여겨지는 황색사(黄色砂)가 주거 중앙의 토갱(土坑)내에서 검출되고 있는(그림 2-9) 것은 매우 드문 예이며, 주거내에서서 옥작이 활발히 행해졌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밖에도 근지석(筋砥石: 같은 그림 1·2)이나 천하석 원석(같은 그림 3), 천하석제 곡옥(같은 그림 4 왼쪽), 천하석제 소옥(같은 그림 4 오른쪽·5), 수정제 천공구(穿孔具: 같은 그림 6), 벽옥제 관옥(같은 그림 7·8) 등이 검출되고 있고 더욱이 주거지의 구석에서 패각(貝殻)이 다량으로 검출되는 예(같은 그림 10)도 있어 그것을 가공하고 장식품을 만들어 내었던 듯하다.

그림 2 옥작 관련 자료 1·2:S=1/8, 3~8:S=1/2
(1 : 옥방 1지구 출토 근지석 2 : 옥방 5지구 출토 근지석 6 : 어은 2지구 출토 천공구 10 : 옥방 5지구 주거지내 패각 집적 검출 상황 4 : 옥방 2지구 출토 천하석제 옥류 5 : 옥방 8지구 출토 천하석제 소옥 3 : 옥방 5지구 출토 천하석 원석 7 : 옥방 1지구 출토 벽옥제 관옥 8 : 옥방 2호 지석묘 출토 벽옥제 관옥 9 : 어은 2지구 15호 주거지(밝은 부분이 연마제) 각 보고서의 그림·사진을 전재)


  
  






공립(公立) / 경기도(경기도)


충청남도 태안군




전라남도-순천시  승주읍 서평리 지석묘.
지역에 따라서 초기 곡옥 디자인을 고수하는 형태도 발견됨.





장흥 외검·하방촌 수몰지구 고인돌



경기도 부천 오정구 고강본동 산 91-1번지 선사시대 유적지

제1층-청동기시대 문화층(민무늬 토기 문화층) 13호 주거지의 내부 조사작업 중 주거지 퇴적층 안에서 곡옥이 출토
http://www.bucheontimes.com/news/print.php?idxno=2623



경주박물관 국은실의 청동기시대 곡옥
곡옥이 반달 형태에서 꼬리가 생기는 과도기적 형태가 관찰되는 유명한 유물입니다.


준비중


준비중.





경북 안동시 사신동 (경북대 박물관)

드물게 활석을 이용한 원시 곡옥 목걸이입니다. 신석기 시대의 유행한 이빨 목걸이 형태로  재료만 바뀌어었을뿐
디자인의 형태는 같습니다.





청도 진라리 2호 고인돌


북한의 유물

대평리 유적
1∼3. 제5호 고인돌 출토 2. 제4호 돌상자무덤 출토 3. 제9호 돌상자무덤 출토 4. 제1호 돌상자무덤

북한에서도 청동기시대 곡옥이 발견되는 점을 주목.
곡옥을 사용하던 집단이  한반도 중부를 거쳐 열도까지 가는지 단서를 제공합니다.







곡옥과 같이 나오는 동검 문화에 관해서..

세형동검은 날이 약간 투박하게 이루어져 내려오다가 손잡이부분에 이르러 미세하게 들어간 모양을 하고 있다. 세형동검의 출현은 비파형보다 훨씬 후기인 서기전 4세기말과 3세기초(초기철기시대), 연(燕)나라가 조선을 침공하였을 때 조선의 청동기 문화권이 대동강 또는 청천강 이남으로 밀려난 것과 거의 궤적을 같이하고 있다.

세형동검은 거의 청천강 이남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한반도의 독특한 청동기문화 특성을 보여준다. 이 한국식 동검문화는 서기전 3세기경에 먼저 대동강과 금강 유역으로 이동하였고, 그후 위만조선의 등장과 한사군의 설치 등 정치변화에 따라 대동강, 영산강, 낙동강 유역으로 번져갔다. 다시 말해 세형동검은 서기전 4세기 이후 한반도 남부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즉 비파형동검은 남만주와 한반도 서북지역에서 많이 발견되나 세형동검은 한반도 내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고조선 초기의 중심지와 후기의 중심지가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신석기 시대 장신구는 여기로
http://enjoyjap.egloos.com/24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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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피사루0 | 2008/04/15 02:36 | enjoy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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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國 win곡옥에 관한 통설 : CLICK청동기 곡옥의 형태: http://enjoyjap.egloos.com/241598열도에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곡옥의 기원 형태.amazon stone 반결형(半鱇形)곡옥이 열도의 선사시대 유물에서는 발전되는 과정이 없다 ... more

Commented by 원유동 at 2008/07/07 23:27
동에 관한 귀한 자료와 사진 감사합니다.
Commented at 2009/03/04 09:42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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