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사노오의 고향 우수주(牛首州)


대국주신의 본가를 찾아야 왜국의 비밀이 열리는 법.
모르면 백제삼서에 첫발도 담그기 힘들다.


삼국사기 지리지 원문

우수주(牛首州)
首자는 頭자를 쓰기도 한다. 수차약(首次若)이라고도 하고, 오근내(烏根乃)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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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약 이라 쓰고 소시모리로 읽는 스사노오의 고향이다.
首次까진 이해가 되도 모리를 음차하는데 若자를 쓰는지 고민하게 만드는것이 삼국사기 지리지의 매력이고 고대 고구려의 난해함이다. 
고구려엔 신라와는 다른 표기 규칙이 있다는 것은 확실히다.
다들 일본서기에서 우두(牛頭) 글자를 피해서 어떤식으로 써왔는지 많이 봐왔을터.
오근내(烏根乃). 烏도 御자를 피할때 쓰는 글자중 하나다. 
烏는 천독국 부상나무(무궁화,槿)의 삼족오이며 천손들이 정좌하며 세상을 다스리는 곳에 사는 새다.
根乃 .. 根자는 신대기 코드에 중요한 글자중 하나다. 일본서기의 근국(根國)과 관련된 중요한 글자다.
우수주에서 스사노오가 고쥬모우(오십맹)신을 모시고 일본으로 향하는 그림이 그려지는지?
왜 일본의 신대기 서열에 신라계 신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지 알아야한다.

일본서기 스사노오편
「부모 2 신(神)이 소잔오존에게 "너는 심히 무도하다 천하를 다스릴 임금이 될 수 없다. 마땅히 근국으로 가라" 하고 축출하였다. 故其父母二神勅素戔嗚尊 汝甚無道 不可以君臨宇宙 固當遠適之於根國矣 遂逐之」 日本書紀 神代 上 第5段

「이때 소잔오존이 "나는 명을 받고 근국(根國)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런고로 잠시 고천원(타카노 마가하라, 高天原)에 가서 누님을 뵙고 난 뒤에 영원히 떠나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니 "좋다"라고 허락하였다. 곧 하늘로 올라갔다. 이때 이장약존(伊弉諾尊)은 신(神)으로서의 일을 모두 마치고 저 세상 나라로 가려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궁(幽宮)을 담로주(淡路洲)에 만들고 조용히 은거하고 있었다. 또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한다. 이장약존(伊弉諾尊)은 일을 마쳤다. 덕이 또한 크다. 그래서 하늘로 올라가서 보고하였다. 그리고서 해의 소궁(小宮)에 머물어 살았다. 처음에 소잔오존이 하늘로 올라갈 때 큰 바다가 요동하고 산악이 명동하였다. 이는 곧 성격이 용맹스러운 탓이었다. 천조대신(天照大臣)은 전부터 그 신(神)의 난폭한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오르는 상황을 보기에 이르러서는 크게 놀라 "나의 아우가 오는 것은 결코 좋은 뜻이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생각컨데 나라를 빼앗을 뜻이 있어서 일 것이다. 대저 부모가 이미 여러 아이에게 맡겨 각각 그 경계를 지으셨다. 어째서 자기가 맡은 나라를 버리고, 감히 이곳을 엿보는가"하고 머리를 틀어 상투머리를 하고, 옷을 잡아매어 바지 모양으로 하고, 많은 긴 玉의 구슬을 꿴 것을 머리 및 팔뚝에 감고, 또 등에 천개의 화살, 오백개의 화살을 꽂은 전통을 걸머지고 , 팔에는 위엄있게 활팔찌를 매고, 활의 끝을 세우고 칼자루를 잡고, 허벅지가 땅속으로 들어갈 정도로 힘차게 밟고, 흙을 눈처럼 차 헤치고, 신성한 음성을 돋우고 신성한 꾸짖음을 발하여 책망하듯 물었다. 소잔오존은 대답하여 "나는 본시 사심이 없습니다. 다만 부모의 엄한 말씀이 있어 멀리 근국으로 가려고 합니다. 누님을 뵙지 않을 수 없어서 왔습니다. 그르므로 구름 안개를 헤치고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누님이 도리어 화를 낼 줄은 몰랐습니다"라고 하였다. 於是 素戔嗚尊請曰 吾今奉教 將就根國 故欲暫向高天原 與姉相見而 後永退矣 勅許之 乃昇詣之於天也 是後 伊奘諾尊 神功既畢 靈運當遷 是以 構幽宮於淡路之洲 寂然長隠者矣 亦曰 伊奘諾尊 功既至矣 徳亦大矣 於是 登天報命 仍留宅於日之少宮矣 少宮 此云倭柯美野  始素戔嗚尊 昇天之時 溟渤以之鼓盪 山岳爲之鳴呴 此則神性雄健使之然也 天照大神 素知其神暴惡 至聞來詣之状 乃勃然而驚曰 吾弟之來 豈以善意乎 謂當有奪國之志歟 夫父母既任諸子 各有其境 如何棄置當就之國 而敢窺兪此處乎 乃結髮爲髻 縛裳爲袴 便以八坂瓊之五百箇御統 御統 此云美須磨屢 纏其髻鬘及腕 又背負千箭之靭千箭 此云知能梨 與五百箭之靭 臂著稜威之高鞆 稜威 此云伊都 振起弓彇 急握劔柄 蹈堅庭而陷股 若沫雪以蹴散 蹴散 此云倶穢簸邏邏箇須 奮稜威之雄誥 雄誥 此云烏多稽眉 發稜威之嘖讓 嘖讓 此云擧廬毘 而徑詰問焉 素戔嗚尊對曰 吾元無黑心 但父母已有嚴勅 將永就乎根國 如不與姉相見 吾何能敢去 是以 跋渉雲霧 遠自來參 不意 阿姉翻起嚴顏」日本書紀 神代 上 第6段

「여러 신들이 소잔오존을 책하여 "그대의 소행은 심히 무뢰하다. 고로 천상에는 살지 못한다. 또 위원중국(아시하라 나카스쿠니,葦原中國)에 있어서도 안된다. 속히 저근국(底根國)으로 가라" 하고 다같이 소잔오존을 쫓아 보냈다. 旣而諸神嘖 素戔嗚尊曰 汝所行甚無賴 故不可住於天上 亦不可居於葦原中國 宜急適於底根之國 乃共逐降去」日本書紀 神代 上 第7段 

 

 

「일신(日神)은 소잔오존이 처음부터 깨긋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6남자를 일신(日神)의 아이로 삼아 천원(天原)을 다스리게 하였다. 그리고 일신(日神)이 낳은 3 여신(女神)으로는 위원중국(葦原中國)의 우좌도(宇佐島)에 살게 하였다. 지금은 해북도중(海北道中)에 있다. 故日神方知素戔嗚尊 元有赤心 便取其六男 以爲日神之子 使治天原 即以日神所生三女神者 使降居于葦原中國之宇佐嶋矣 今在海北道中 號曰道主貴 此筑紫水沼君等祭神是也.」 神代 上 第6段 1書3 

「이때 소잔오존은 아들 고쥬모우 카미(오십맹신, 五十猛神)를 데리고 신라국에 내려서 소시모리(曾尸茂梨)라는 곳에 있었다. 그리고 "이 땅은 내가 살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며 진흙으로 배를 만들어 타고 동쪽으로 가 출운(雲國)의 파천(簸川) 상류에 있는 조상봉(鳥上峯)으로 갔다. 是時 素戔嗚尊 帥其子五十猛神 降到於新羅國曾尸茂梨之處 乃興言曰 此地吾不欲居 遂以埴土作舟 乘之東渡 到出雲國簸川上所在 鳥上之峯」日本書紀 神代 上 第8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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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열도의 개척(인용글-편집)

4세기 일본열도의 구주지역에는 가야가 개척한 신라(新羅)라는 나라를 배경으로 천일창의 황우설화가 있는데 이 천일창이란 인물과 설화에 대한 글을 소개합니다

 

<고사기>

[옛날 신라국주의 아들이 있었다. 이름은 천지일모라고 하였고 바다를 건너왔다. 건너온 이유는 신라국에 연못이 하나 있는데 연못의 이름은 아구누마(阿具奴摩)라 하였다. 이 연못에서 천부(賤婦)가 낮잠을 자는데 무지개 같은 빛이 그 여자의 음상(陰上)에 비치는 것을 또 다른 천부(賤夫)가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여인의 행동을 주시했다. 그런데 그 여인은 낮잠을 자고 임신을 하여 적옥(赤玉)을 낳았다. 이를 지켜보던 천부가 그 옥을 달라고 졸라서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

 

이 사람이 산곡에 밭을 일구었기 때문에 밭가는 사람들의 음식을 소 한 마리에 지워 산곡 안으로 들어가고 있을 때 국주의 아들 천지일모와 마주쳤다. 이에 그 사람에게 묻기를 "왜 음식을 소에 지워 산으로 들어가느냐. 네가 필시 이 소를 잡아먹으려 하는 것 같다"하고서 그 사람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

 

그러자 "소를 잡아먹으려 한 것이 아니고 밭일하는 사람의 음식을 가져가고 있었습니다" 하였다. 그래도 용서해주지 않으니 천부가 허리에 차고 있던 옥을 바치자 놓아주고 그 옥을 가져와서 침상에 놓았더니 아름다운 처녀로 변하였다.

 

그리하여 혼인을 하고서 적처(嫡妻)로 삼았다. 그 아내가 언제나 맛있는 음식을 마련하여 남편에게 대접했다. 그러자 그 국주의 아들이 교만한 마음이 생겨 아내를 꾸짖었더니 그녀가 "항상 내가 당신의 아내 노릇만 할 사람이 아니다. 내 조국으로 가겠다"하고서는 곧 몰래 작은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난파에 머물러 살았다. 이에 천지일모가 그의 아내가 도망간 것을 알고 쫓아가서 난파에 이르렀을 때 도신(渡神)이 막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다지마국(多遲摩國)에 머물렀다]

 

기록에서 같이 천지일모(天之日矛)는 천일창(天日槍)이고 신라국주(新羅國主)의 아들이며 바다를 건너온 목적이 아구누마(阿久奴摩)지역에 사는 천부(賤夫)에게서 옥(玉)을 탈취하기 위한 것으로 천부(賤夫)가 옥을 허리에 차고 밭을 일구었는데 이 천부는 원주민세력이고 옥은 지배권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신라국에 있는 연못 이름이 아구누마라고 신라국이 있는 곳을 알려주고 있는데 지금의 구주지역인 사쓰마반도에 아구근시(阿久根市)가 있고 남으로 내려와 야간반도(野間半島)도 있다.

 

신라국이 있는 아구누마는 지금의 아구근시(阿久根市)를 중심으로 한 아구(阿久)지역과 야간지(野間池)가 있는 야간반도를 칭하는 지명으로 사쓰마반도에 해당한다.

 

결국 천일창이 도착하여 천부에게서 산전(山田-야마다)을 일구는 소를 잡아 옥(玉)을 빼앗은 것이고 천부가 산곡간(山谷間)에 밭을 일구었다 해서 산전(山田)으로 표현한 것이고 지금도 야간반도지역에는 내산전(內山田), 내산전하(內山田下), 중산전(中山田), 하산전(下山田)등 산전계지명이 있다.

 

이렇게 볼 때 천일창이 천부로부터 옥을 빼앗은 것은 원주민세력을 정복하고 왕권을 탈취한 것이고 또 옥이 처녀로 변해서 그에게 대접하는 것은 원주민세력을 지배했다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 천부가 옥을 지니고 소(牛)를 몰고 다녔는데 이 '소'에 대해서 <일본서기>에는 웅습(熊襲-구마소)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습국(襲國)이며 습국(襲國)의 열도음은 '소노구니'이고 '소의 나라'로 읽는다.

 

이 웅습국이 있던 위치가 바로 천부가 살던 아구누마와 같은 구주이므로 천부의 소(牛)는 습국(襲國)인 '소의 나라'을 상징한 것으로 웅습국이 천일창에게 왕위를 빼앗긴 사건을 우(牛)와 옥(玉)을 탈취 당하였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구주에 있던 아구누마지역을 점령한 천일창을 신라국의 아들이라 하였고 그 신라국 또한 아구누마에 있었다고 하였으므로 가야는 새로 개척한 영토를 신라(新羅)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므로 한반도의 서라벌에 있던 신라만을 생각하는 고정관념은 버려야 한다.

 

신라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가야의 옛 명칭인 아시라(阿尸良)를 말하는 것이고 <일본서기>의 신라는 가야의 소국이름이므로 대화(大和)왕조가 가야왕조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천일창이 구주에 신라를 개척했는데 아내가 도망하는 기록이 있는데 천일창과 응신이 동일인이므로 응신으로 응신계의 왕권이 끝나고 진언계로 왕권이 이양된 것을 [내가 당신의 처노릇만 할 여자가 아니다]하고 자기 조국으로 도망하였다고 표현한 것이다.

 

곧 천일창으로부터 왕권이 이탈함을 표현한 말로 아내를 찾으려고 했으나 도신(渡神)이 길을 막아 다지마국에 머물렀는데 도신이란 천일창의 이복동생인 진언(珍彦)의 별칭이다.

 

이렇게 천일창의 왕권은 자신에게서 끝나고 진언에게로 왕권이 이양됨을 나타낸 것이다.

*다지마국- 천일창이 개척한 소국

 

천부(賤夫)는 천일창 이전에 있던 원주민세력이고 그들이 개척한 땅을 천부(賤婦)로 표현한 것이며 천일창이 정복한 것을 감옥에 넣은 것으로 표현한 것이고 천부를 원주세력이라 표현했지만 사실은 그들도 천일창 이전에 구주로 먼저 진출했던 한(韓)민족이다.

 

AD.1세기경에 가야의 김수로왕의 선견왕자와 묘견공주가 무리 3천을 이끌고 개척했던 야마다(邪馬臺)라는 나라가 구주 팔대시(八代市)를 중심으로 있었고 그 후 다시 한반도에서 건너간 연오랑과 세오녀에 의해 계승되어 3세기 중반 화하족사서에 기록되어있는 야마다(邪馬臺)가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참고- 영산강의 가야

http://blog.naver.com/casahoo/20001676542

 

아내가 대화왕조의 왕권을 비유한다는 것은 왕권의 상징인 옥이 적옥(赤玉)이고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비유하는 여인이 적처(嫡妻)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부가 낮잠을 자는데 무지개 같은 빛이 여자의 음상(陰上)에 비치고 임신을 했다]라는 것은 일광감정(日光感精)이라고 하는데 <동국여지승람>에 [가야신 정견모주(正見母主)가 천신인 이비가(夷毗訶)에 감하여 대가야왕인 뇌질주일(惱窒朱日)과 금관국왕 뇌질청예(惱窒靑裔)를 낳았다]라고 한 것과 동일한 기록으로 가야의 일광감정 사상을 활용한 것으로 천일창이 가야왕 아라사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천일창의 천(天)은 백제(百濟)고 일(日)은 왕(王)이고 창(槍)은 무기의 일종인 창(槍)으로 풀이하면 '백제왕이 내린 창'이라는 뜻이고 칠지도를 의미한다.

 

칠지도는 일본열도통치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초고왕이 일본열도의 후왕에게 내린 것인데 일본열도의 열도가야(왜)왕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이름을 가진 인물이 열도를 최초로 통일한 대화왕조의 초대왕 응신이란 것을 가르쳐주는 이름이다.

참고- 일본열도의 가야 

http://blog.naver.com/casahoo/20001690585

 

<고사기>

[처음 응신천황이 태자가 되자 월국에 가서 각녹(角鹿)의 사반대신을 배알하였다. 그때 대신과 태자가 이름을 바꾸었다. 그래서 대신을 거래사별신이라 부르고 태자를 예전별존이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대신의 본명을 예전별신 태자의 원명을 거래사별존이라 하기도 한다]

 

여기서 예전(譽田)은 응신의 시호 예전천황에 쓰인 이름이고 또 월국은 지금 와까사(若狹)지역으로서 교가시(敦賀市-쓰누가시)가 있는데 각녹(角鹿-쓰누가)으로 표기하며 이곳에 거래사별신(去來紗別神)을 모신 기비신궁이 있다.

 

그런데 응신이 거래사별신과 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에 응신이 예전별존 또는 거래사별신이 되므로 결국 응신이 거래사(去來紗)란 이름으로 불려진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 교가시(敦賀市)에 있는 기비신궁의 주제신인 응신이 거래사별신이다.

 

<풍토기>'월전국기비신궁'

[기비신궁(氣比神宮)은 우사(宇佐)와 동체이다.팔회(八幡)은 응신천황이 진좌하였다]

 

이 팔회(八幡- 야하다)라는 이름이 붙은 신사가 일본열도에 수천이 있는데 모두 응신을 주제신으로 하는 신사이고 그 중에 하나가 일본열도 구주 우좌시(宇佐市)에 있는 팔회우좌신사(八幡宇佐神社)로서 거래사신(去來紗神)을 주제신으로 하는 기비신궁과 같은 것이다.

 

결국 우좌신사와 기비신궁의 주제신이 이름은 달라도 동일한 인물로서 거래사별신이 응신이고 응신이 거래사별신이란 것이다.

 

<고대일조관계사입문>

[지금 복정현(福井縣)의 교가(敦賀)에 있는 기비신궁의 주제신은 이사사별신(伊奢沙別命)이다. 이 이사사별명에 관해 인목방웅씨(印牧邦雄氏)의 복정현(福井縣)역사에 천일창을 이사사별명으로 하여 숭배하고 있다고 분명히 쓰고 있다]

 

또 천일창을 거래사별신(이사사별신)이라 하여 기비신궁의 주제신으로서 배치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응신천황, 거래사별신, 그리고 천일창이 이름만 달리 표기되었을 뿐 동일인물을 말하는 것이고 신무천황이 가야왕의 아들인 것 같이 응신천황도 가야의 왕이다.

 

<일본서기>'수인기’

[신라왕자 천일창이 내귀하여 가지고 온 물건은 우태옥(羽太玉), 족고옥(足高玉), 제녹녹(濟鹿鹿)의 적석옥(赤石玉), 출석(出石)의 소도(小刀), 출석(出石)의 창(槍)과 일경(日鏡), 웅(熊)의 신리(神籬)등 모두 일곱 가지였다. 그것을 다지마국에 두고 항상 신물로 여겼다]

 

이 기록에 나오는 신보가 7종인데 병고현(兵庫縣) 출석(出石-이즈시)신사에 이사사(膽狹淺)의 대도(大刀)가 추가되어서 8종의 신보가 보관되어 있고 이사사가 바로 <일본서기>'응신기'에 나오는 응신의 별칭 이사사별신(去來紗別神)과 같은 이름으로 응신과 연결된다.

 

천일창이 신라(가야)에서 가져온 팔물(八物)의 신보 중에는 이사사란 대도가 포함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 이사사가 기비신궁의 제신인 거래사별신을 말하는 것으로 응신천황과 동일인물이란 증거이므로 천일창이 응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서기>에 나오는 천일창이 한반도에서 바다 건너 일본열도의 땅에 와서 응신천황이 된 것이고 즉위연대는 390년이고 <삼국사기>와 비교하면 근초고왕, 근구수왕, 침류왕, 진사왕 6년에 해당하며 아신왕이 즉위하기 2년전이 됩니다.

 

결국은 <고사기>'응신기'에 나오는 신라왕자 천일창이 초대왜왕 응신과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고 천일창이 개척한 구주 신라가 한반도의 가야(加倻)가 세운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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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가야의 출운

Thursday, 06. 16. 2011

가야의 일본개척(인용글-편집)  

가야의 아라사가 일본열도의 출운지역을 개척한 사건이 <일본서기>'신대기'에 소잔명존으로 나오는데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소잔명존설화

소잔명존이 하늘에서 내려와 출운국에 도착했다. 이때 강에서 우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 노부부가 소녀(童女)옆에서 울고 있었다. 소잔명존이 "그대들은 누구이고 왜 우는가"하자. 노부부가 "나는 국신인데 이름은 각마유이고 아내이름은 수마유이고 딸 이름은 기도전희이며 우는 이유는 딸이 여덟이나 있었는데 팔기대사에게 잡아 먹혔고 지금은 이 아이 차례로 피할 길이 없어 웁니다"했다.

 

소잔명존이 "만약 구해주면 이 아이를 내게 주겠는가"라고 하자. 노부부는 "그렇게 하겠다"했다. 소잔명존이 기도전희를 탕진조즐로 만들어 머리에 꽂았다. 그리고 각마유와 수마유에게 팔온주를 빚게 하고 방을 만들고 술통에 술을 붓고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에 대사가 나타났는데 머리와 꼬리가 여덟이었고 눈은 붉은장(赤酸醬)같았고 등에 송백이 나고 언덕과 골짜기에 뻗쳤다. 대사가 술을 마시고 취해서 잤다. 이때 소잔명존이 십악검을 뽑아 대사를 잘랐다. 꼬리에 이르러 칼날이 조금 상했고 꼬리를 열어보니 칼이 한 자루 있었다. 이것이 초치검이다 (원이름은 천총운검이였는데 대사가 사는 곳에는 구름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무황자 때에 이름을 바꿔 초치검이라 했다).

 

소잔명존이 "이것은 신검이다. 내가 어찌 사사로이 하겠는가"라고 하며 천신에게 헌상한다. 그 후 혼인할 곳을 찾아서 출운의 청지(淸地)에 이르렀다. 그래서 "내 마음이 청청(淸淸)하도다"라고 하였다.(지금 이곳을 청이라 한다). 그리고 궁을 지었다.(다른 얘기로는 무소잔명존(武素잔鳴尊)이 노래를 했는데 "팔운이 피어오르는, 출운의 팔중원이여, 처를 지키는 팔중원을 만들자, 그런 팔중원을..."라는 가사이다)

 

출운의 청지에서 합하여 아들 대기귀신을 낳았다. 그리고 "내 아이의 궁의 우두머리는 각마유와 수마유다"라고 했다. 그래서 두 신에게 이름을 도전궁주신이라 했다. 그리고 나서 소잔명존은 드디어 근국으로 갔다.

 

 

가야의 아라사가 일본열도의 도근현(島根縣-시네마현) 출운(出雲)지역을 개척한 내용을 <일본서기>에는 괴물을 처치하는 소잔명존의 설화로 나온다.

 

<일본서기>에서 소잔은 하늘(天)에서 내려왔고 활동한 곳은 일본열도의 도근(島根)의 출운이며 괴물의 형상은 등에 소나무가 날 정도이고 여덟 언덕 여덟 골짜기 사이에서 나왔다고 하는 거대한 뱀(八岐大蛇-팔기대사)이고 소잔이 뱀을 술에 취하게 한 후 칼로 벤다.

*등에 소나무가 나고 언덕, 골짜기- 산을 암시

 

그리고 소잔은 노부부의 딸 기도전희를 얻어서 청지(淸地)라는 새로운 땅에서 아들을 낳고 근국(根國)으로 간다.

 

이 설화는 <기·기>를 분식하는 과정에서 만든 것이고 소잔명존(素盞鳴尊)은 신천지개척에 나선 인물로 설화에서 여성은 영토를 비유하고 여자를 받았다는 것은 영토에 대한 통치권을 비유하므로 곧 왕이 된 것이다.

 

소잔명존은 가야왕 아라사이고 <삼국사기>'백제본기'에 나오는 백제의 좌평 진정(眞淨)이고 <고사기>'신대기'에 나오는 대용무지신(大穴牟遲神)이며 <기·기>에서는 반정(磐井)등의 별칭을 가지고 활약하는데 출운에 온 것은 신천지개척때문이다.

*340년~350년으로 백제의 초고왕시대

 

출운은 일본열도에서 질 좋은 사철광산지역으로 제철지역으로 지금의 시마네현 출운이고 가야왕 아라사가 이곳의 철을 바탕으로 병장기를 생산해서 일본열도에 고대국가를 건설한 것이며 하늘(天)이란 백제 또는 한반도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각마유와 수마유는 출운지역의 원주민이지만 열도원주민이라고는 볼 수 없는데 이유는 일본열도의 도근현과 구주는 한반도에서도 가장 가까운 곳으로 한반도에서 선진기술을 가지고 건너간 한반도출신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 다리(脚), 순(手)를 이름에 쓰고 있는 피지배층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기도전희(奇稻田姬)는 아주 비옥한 전답(田畓)을 상징하는 것으로 새로 개척한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비유한 것이다.

 

탕진조즐은 빗(櫛)을 표현한 것으로 탕이란 제철용탕을 말하므로 제철용구의 일종이고 팔온주는 여덟번 숙성한 술이라고 하는데 불순물을 걸러내기 위해 여러 단계의 야철공정을 거친다는 뜻으로 풀이되며 술통이 곧 제철도가니이다.

 

팔기대사(八岐大蛇)는 출운의 노천사철광산에서 흘러내리는 산화철물을 말하는 것이고 이 철물이 매년 우기가 되면 농토를 황폐화시켰기 때문에 딸을 낳자마자 대사에게 잡아 먹혔다고 표현한 것이다.

 

대사의 배(腹)가 언제나 피물이라는 것은 비하의 철을 함유한 붉은 물이 흐르는 모양이고 [등에 소나무가 나고 여덟 언덕 여덟 골짜기]란 산(山)이고 대사는 노천철광산을 말한다.

 

<고사기>에 [대사의 꼬리에서 초지검이 발견되었다]는 비하(肥河)의 상류일대가 사철산지고 비하(肥河)유역에서 검(劍)이 단조된 것과 연관이 있다.

 

<일본서기>'신대기'에 보면 초치검은 미장국의 오탕시촌에 있고 열전(熱田)의 축부(祝部)가 관장하는 신인데 뱀을 벤 칼은 '아라사이'라고 하며 '아라가야의 쇠(金)'라는 뜻이고 석상에 있다고 한다.

 

석상은 초고왕을 모신 나라현 천리시의 석상신궁(石上神宮)을 말하므로 가야왕 소잔명존이 만든 칼이 백제왕실의 신보가 된 것이다.

*가야와 백제는 칼을 신보로 하는 전통이 있음

 

천총운검을 천신에게 준다는 것은 백제에 헌상한다는 것으로 천신은 백제왕실에서 파견한 경진주신(經津主神-근구수왕)이고 항복하고 나라를 바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것이 지금도 일본열도 왕실에 전승되고 있는 삼종신기(三種神器)의 하나인데 천총운검의 '구름운(雲)'은 사실은 구름이 아니고 제철단지에서 나오는 연기로 볼 수 있으며 출운의 운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소잔명존이 갖고 있던 십악검(十握劒)으로 뱀의 꼬리를 자르다가 뱀의 꼬리에서 칼 한 자루가 나왔다는 것은 출운에서 만든 칼이 더 좋은 칼이라는 뜻으로 한반도의 가야지역도 기원전부터 유명한 철산지였지만 그곳에서 만든 한서(韓鋤-가라사히)보다 출운의 철이 좋다는 의미다.

 

청지(淸地)는 소잔명존의 땅이라는 뜻인데 청(淸)이 소잔의 별칭으로 쓰이기 때문이며 소잔의 백제식이름은 진정(眞淨)으로 청(淸)과 정(淨)은 비슷한 말이고 반정(磐井)의 '우물정(井)'도 같은 말이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진정이란 이름에서 정(淨)도 <기·기>에 나오는 청(淸), 정(井)과 발음과 의미가 비슷한 말로 소잔이 가야왕 아라사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내 마음이 청청(淸淸)하도다]라고 한 것이다.

 

<고사기>

[소잔명존이 도전궁주 책협지팔개이의 딸 도전원(稻田媛)을 보고 침소를 세워 낳은 아들을 청(淸)의 탕산주(湯山主) 협루언팔도소(狹漏彦八島篠)라 불렀다]

 

이 기록에서 소잔이 청(淸)이라고 알려주는데 소잔이 청(淸)이며 도전원은 기도전희를 말하는데 사실은 땅을 차지한 것을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소잔명존(아라사)이 출운을 개척하고 이어서 구주까지 개척하여 아들을 왕으로 봉하고 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직전에 백제가 본격적으로 가야를 정복하고 일본열도에 무내숙니를 후왕(侯王)으로 임명하여 보낸다.

참고- 가야의 멸망

http://blog.naver.com/casahoo/20001690757

 

[팔운(八雲)이 피어 오르는 출운]이라는 표현은 역동적으로 돌아가는 출운의 제철단지이고 출운의 팔중원(八重垣)이란 출운을 확보하여 열도개척의 전진기지로 삼자고 다짐하는 말이다.

 

[처를 가두는 팔중원(八重垣)]이란 말은 지킨다, 보호한다는 의미로서 처는 결혼을 한 사람이므로 열도통치권를 말하는데 백제로부터 독립된 열도가야왕국을 꿈꾸는 노래인 것이다.

 

그래서 출운을 개발하고 지키자는 의지를 표현한 노래로 백제로부터 벗어나서 독립왕국을 건설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뜻도 들어있다.

참고- 일본열도의 가야 

http://blog.naver.com/casahoo/20001690585

 

소잔명존이 대기귀신(大己貴神)을 낳고 있는데 대기(大己)는 발음이 '오호아나'로 '대아나(大阿那)' 또는 '대안(大安)'의 다른 표기이고 '대가야'를 말한다.

*대기귀신- 대가야의 귀한 신

 

<고사기>에서는 대혈모지신(大穴牟遲神)으로 나오는데 대기(大己)와 대혈(大穴)이 발음이 같고 무지(貴)와 무지(牟遲)가 같다. 사실은 모두 소잔명존 본인이다.

 

출운을 개척한 후에 다시 근국(根國)으로 갔다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근국은 구주의 서남부에 있는 아구근(阿久根-아구네)을 말하고 연대를 보면 4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 일어난 일들을 설화화한 것이다.

 

<일본서기>'신대기'

[소잔명존의 소행이 무상하였다. 그래서 여러신이 천좌치호를 과하고 쫓아내었다. 이때 소잔명존은 아들 오십맹신을 데리고 신라국으로 내려가 소시모리(曾尸茂梨)라는 곳에 있었다. 그런데 말을 하기를 "이 땅은 내가 살고 싶지 않다"라고 하고는 진흙으로 배를 만들어 타고 동쪽으로 가서 출운의 파천 상류에 있는 조상봉(鳥上峰)으로 갔다]

 

<일본서기>'신대기'의 기록처럼 소잔명존이 백제의 신들로부터 박해 받고 일본열도로 건너와서 먼저 구주로 갔다가 출운으로 다시 건너간 것이다.

 

소시모리는 신라국과 웅습국의 사이를 말하는 것으로 두 나라를 동시에 지칭하는 구주남부의 지명으로 판단되는데 신라국이란 구주 서남부에 아구근(阿久根-아구네)와 야간(野間-누마)반도를 연결하는 지역에 가야가 개척한 '신라'라는 나라가 있었다.

 

여기 나오는 신라도 가야의 고칭 아시라(阿尸良)를 지칭하는 것으로 아라사의 중자 천일창이 개척한 나라이므로 '서라벌신라'로 생각하면 안된다.

*서라벌신라- 제철과는 관계가 없는 나라였음

 

그리고 그 동쪽에 웅습국(熊襲國)이 있었는데 이 웅습국이 바로 한(韓)민족어로 '큰소의 나라'라는 뜻을 가지는 가야가 개척한 소국이다.

 

웅습국(熊襲國-구마소노구니)에서 '구마(熊)'는 '쿰(굼)'이고 받침 없이 명사형어미를 붙여 '쿠마(구마)'가 된 것이고 소노(襲)는 소(牛)를 열도어로 이두표기한 말이다.

 

소시모리는 살 곳이 아니라고 출운으로 건너간 것은 출운의 사철광산을 개발하여 철을 만들어 일본열도경략의 기지로 삼겠다는 것인데 시마네(島根)의 출운이란 지명에 "열도(島)개척의 근본(根)"이란 뜻이 있다.

 

조상봉에서 조상(鳥上-도리가미)이란 말은 조신(鳥神-도리가미)이라는 뜻으로서 <기·기>에서 무내숙니를 새(鳥)로 비유하므로 무내를 가리키는 말이고 무내는 출운국조(出雲國造)이기도 하고 출운대신(出雲大神)이기도 한다.

 

<일본서기>의 소잔명존설화는 일본열도를 처음으로 개척한 시발점이 되는 사건으로서 동북아 제일가는 제철왕국이었던 가야(加倻)다운 일이기도 하고 고대에 있어 전략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출운을 '열도(島)개척의 근본(根)'이라는 도근(島根)이라고 한 것이다.

coo2.net

[본문스크랩] 구지가

Thursday, 06. 16. 2011

구지가의 비밀(인용자료-편집)  

(韓)민족의 고대국가 가야의 건국신화에서 '구지가'의 내용 중에서 거북에 관한 재미있는 해석을 한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삼국유사>'가락국기'

龜何龜何首其現也若不現也燔灼而喫也 唯紫繩自天垂而着地尋繩之下乃見紅幅裏金合子開而視之有黃金卵六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만약 내밀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 춤을 추니  자주색 줄이  하늘에서 땅으로 드리워져 닿아 있었다. 줄 아래를 찾아서 보니 홍폭에 쌓인 금상자가 있었다. 열어서 보니 황금알이 여섯개 있었다]

 

거북이 나타난 지역의 산을 구지봉이라 하고 자색은 왕권을 상징하며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고대 천신사상에서 생겨난 왕권신성설로 하나의 왕조를 이룬 시조는 천신의 아들이라는 관념에서 나온 것이 가야의 건국신화이다.

 

여기서 <삼국사기>'가락국기'의 신화를  해석해보면 거북(龜)은 가야의 선단(船團)을 상징하는 것으로 가야는 원래 해양세력으로 대선단으로 이동해온 것을 거북이 상륙한 것으로 표현하고 그 대선단을 이끌고 온 수장을 토착민들이 환영하는 형식으로 신화를 구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 대륙의 가야  

http://blog.naver.com/casahoo/20001665463

자주색줄(紫繩)이나 붉은 보자기(紅幅)는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일본서기>'신대기'에도 以眞床追衾 覆於皇孫이 있는데 이것은 황조신이 천손에게 진상추금이라는 보(幅)를 덮어주는 내용으로 동아시아에서는 왕의 즉위식 붉은천 같은 것을 사용하는 전통이 있다.

 

금합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처럼 되어 있으나 이것은 신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고 사실은 가야가 바다길로 이주해온 것으로 <일본서기>'신대기'의 천손도 한반도 남단에서 일본열도의 구주에 대선단으로 이동한 것을 하늘에서 구주의 고천수봉에 내리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삼국유사>에서 가야의 수로왕 건국신화에 나오는 '구지가(龜旨歌)'는 정복자의 노래이다.

 

<삼국유사>'가락국기'

龜乎龜乎出水路 掠人婦女罪何極汝若房逆不出獻入網捕掠燔之喫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남의 부녀를 빼앗아 간 죄 그 얼마나 크냐 네가 만약 거역하고 내놓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이 설화에도 역시 해가(海歌)가 등장하는데 수로부인은 가야의 남해안 해상무역로를 의인화한 것이다.

 

이 해가는 구지가와 흡사한데 가야와 관련된 노래이기 때문에 가야연맹체를 용 또는 거북으로 비유한 것이다.

 

<삼국유사>'가락국기'

[도둑이 수로왕의 사당에 금과 옥이 많다고 듣고  ...(중략)...  들어가다 길이 30여 척이나 되는 대사(大蛇)가 있어 눈빛이 번개 같은데 사당에서 나와 사람을 물어 죽였다. 가까스로 살아난 자들도 모두 도망하여 흩어졌다. 고로 능원(陵園)에는 반드시 신물(神物)이 있어 지킨다는 것을 알았다]

 

이 기록도 <일본서기>'웅략기'에 나오는 소자부과나가 잡아온 대물주신의 모습인 대사(大蛇)와 흡사하며 <일본서기>'인덕기'에 전도(田道)의 묘에서 나온 큰뱀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수로부인설화에서 강능태수 순정공은 가야왕이고 성덕왕은 내해왕이며 노인은 석우로이며 강능의 옛지명 아슬라는 <삼국사기>'지리지' 함안군조에 아라가야의 옛지명인 아시라(阿尸良)와 같다.

 

가야연맹체 중에는 보라국(保羅國)이 있는데 보라는 옛 글에서는 (ㅂ+아래아+ㄹ,라)이고 발음은 발라가 되는데 영산강유역에 있었던 발라국(發羅國)을 가리킨다.

참고- 영산강의 가야

http://blog.naver.com/casahoo/20001676542

 

그리고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은 <일본서기>의 무열천황이 동성왕이란 것을 알았고 <일본서기>'무열기'에 나오는 이모(暑預)를 가지고 열도어로 음이 같은 마(薯)로 바꾸어 마동(薯童)이라는 가야왕족 수직돌림자 '마다'계열 별칭을 지어서 <삼국유사>에 서동설화를 실었다.

 

<삼국유사>'백제전'

第三十武王名璋 母寡居築室於京師南池邊池龍交通而生

[제30대 무왕의 이름은 장이다. 어머니가 과부로 살았는데 경의 남쪽에 집을 짓고 살다가 못의 용과 통하여 낳았는데]

 

무왕은 동성왕이고 경(京)은 백제를 가리키고  남쪽의 집은 일본열도를 비유한 것이며 [못(池)의 용(龍)과 통하여]라는 것이 일본열도의 가야왕족 출신이란 뜻이다.

 

이렇게 가야를 130년이나 늦은 일연도 알고 있었는데 <삼국사기> 편저자들이 몰랐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며 알면서도 '가야사'를 모두 삭제했다.

 

<춤추는 신녀>라는 글에 보면 일본열도의 구주에 '영부사'라는 신사가 있는데 거기에는 태상비법진택영부라는 부적이 있고 태극기 아래 한복 입은 신선이 있는데 김수로왕이라 하며 크기가 등신(等身)인 목조 인물좌상도 있다.

 

그런데 이 '영부사'의 이름 시라기(白木)는 신라(新羅)를 한자만 바꾼 것이며 가야의 옛 명칭이다.

 

묘견은 수로왕의 딸 묘견공주이고 남자형제 선견왕자와 함께 일본열도의 구주로 이동하여 고대국가 야마다(邪馬臺)를 세운 인물로 이 '영부사'는 묘견과 선견이 수로왕을 제신으로 모신 신사입니다.

 

'영부사'의 신선도 인물을 보면 분명히 가야인의 특징인 편두를 하고 있고 옷이 한복이며 인물상의 좌대에는 거북이 새겨져 있고 길다란 활모양의 뱀상이 있는데 수호신 같은 것이다.

 

이것은 수로왕비(허황옥)의 오빠 장유화상이 서역불교 선사였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는데 서역불교에서는 부처의 수호신이 '무칠린다'라는 코브라로 표현됩니다.

 

뱀을 '집지킴이'라고 하는 속설도 가야에서 나온 것이고 또 강남백제(양자강지역)와 관련하면 원래는 이곳도 가야의 영역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그곳 묘족의 토템이 뱀이라는 것도 연관성이 있다.

 

<비후국지(肥後國志)>의 신궁사에

[묘견은 대일여래(大日如來)다. 묘견은 칠체(七體)로 나타나므로 칠체묘견(七體妙見)이라 부른다. 또한 여러가지 변신이 있으니 하늘에서는 북두칠성, 한토(漢土)에서는 진무상제(眞武上帝), 일본에서는 시라기야마가미(白木山神)로 나타난다. 메부까(目深), 데나가(手長), 아시바야(足早)로 모습을 나타내며 명주(明洲)의 나루에서 구사(龜蛇)를 타고 비후국(肥後國) 팔대군(八代郡) 죽원(竹原)의 나루에 닿았다]

 

이 기록은 칠성신앙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며 <삼국유사>'가락국기'에도 가야의 칠성신앙의 흔적이 보이고 후에 신선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시라기(白木)는 가야의 옛 명칭이고 <일본서기>'신대기'에도 소호리야마(添山)라고 천손이 내린 산의 이름이 나오는데 신라산(新羅山)이라는 뜻입니다.

 

또 묘견공주가 구사(龜蛇)를 타고 팔대(八代)에 상륙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영부사'의 수로왕상에 있는 거북과 뱀의 상징과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가라빠 3천의 무리가 팔대(八代)지역에 상륙했다는 설화에서 무리 3천이면 고조선건국신화에 나오는 규모와 같고 고대국가를 건설할 만한 무리입니다.

 

가라빠를 가빠(河童)라고 하는데 한자를 보더라도 물에 능한 사람으로 가빠는 가라빠의 준말이고 음을 줄인 후에 한자를 붙인 것이고 가야(加倻)에서 나온 음이고 명주도 대륙의 지명처럼 보이는데 한반도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정하기 위해서 붙인 명칭이라 할 수 있다.

 

가빠는 상상의 동물로 사람처럼 생기고 크기는 어린아이 같으며 머리가 오목한 접시처럼 생겼다고 하는데 가빠의 머리부분의 묘사가 가야의 편두를 연상시키고 일본 구주의 '영부사'에 있는 수로왕상도 편두(偏頭)의 모습이다.

 

이와 같이 가야를 해신(海神)을 상징하는 뱀(蛇)으로 그들의 대형선단을 거북(龜)으로 비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지>'위지' 변진조에 변진은 철을 생산하여 동북아에 수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가야(加倻)는 제철대국이었는데 가야라는 나라가 대형선단을 거느리고 대륙의 발해만과 동지나해 그리고 일본열도를 넘나들며 고대 동아시아의 바다를 주름잡던 해양강국이었다.

일본고대사서의 가야(인용글-편집)

(韓)민족의 고대국가 가야를 일본열도의 사서에는 해신(海神)으로 묘사하고 용(龍)과 뱀(蛇) 그리고 거북(龜)으로 상징된다는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가야를 <일본서기>에서는 용(龍), 뱀(蛇), 거북(龜)으로 상징하고 가야왕의 이름에 '용'자가 들어간다.

 

<일본서기>에 안귀공의 선조가 대륙의 위나라 조비로 되어 있으나 거짓기록이고 안귀공이란 이름에서 안(安)이 아나(阿那)이고 귀(貴)는 가야왕족의 돌림자 '마다'계열의 별칭이다.

 

<일본서기>에 화란강명, 언화화출견존, 풍옥희, 염토노옹이라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염토노옹은 아라사이며 화란강명은 신무의 형 도반명이고 언화화출견존은 신무이고 풍옥희는 아라사의 장녀이고 염토는 소금땅으로 일본열도이다.

 

<일본서기>

[풍옥희가 큰 거북을 부린다]

 

이 기록에 풍옥(豊玉)이 들어 있는데 가야가 개척한 풍국의 왕이란 뜻이다.

*풍국(豊國)- 지금의 후꾸오까 

 

<고사기>'신무기'

[거북의 등을 타고 낚시를 하면서 옷깃을 바람에 펄럭이며 오는 사람이 있었다]

 

이 기록도 진언이 가야왕족임을 알려주는 것이고 또 <일본서기>'신무기'에서 응신의 동생 진언이 작은 배를 타고 등장하는 기록이 있다.

 

<일본서기>'숭신기'

[왜적적희명은 대물주신의 처가 되었다. 그런데 그 신은 낮에는 볼 수 없고 밤에만 왔다. 왜적적희명이 남편에게 "당신은 낮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아침에 볼 수 있게 해주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대신이 "맞는 말이오. 내가 내일 그대의 빈 그릇에 들어가 있을 터이니 내 모습을 보고 놀라지 마시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왜적적희명은 날이 밝기를 기다려 빈 그릇을 보니 작은 뱀이 있었는데 길이와 크기가 옷 매듭 같았다]

 

이 기록은 대물주신의 모습이 뱀이란 뜻으로 일본열도의 나라에 있는 삼륜산의 신인데 <일본서기>'숭신기'에는 대물주신의 아들 대전근자(大田根子)가 대물주신을 제사 지낸다고 되어있다.

*대물주신- 대삼륜신이고 가야왕 아라사

 

<일본서기>'신대기'에 팔기대사설화가 있는데 이것은 소잔명존이 4세기중반 출운(出雲)에 일본열도에서 제일가는 제철단지를 건설한 것을 대사설화로 꾸민 것으로 소잔명존이 가야왕 아라사이며 응신천황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소잔명존의 다른 이름은 대물주신 또는 국작대기귀명이라 하며 위원추남, 팔천과신, 대국옥신, 현국옥신이라고 했는데 모두 소잔명존의 다른 이름이다.

 

대물주신의 뜻은 몸에서 만물이 나온 보식신과 의미가 통하는 이름이고 국작대기귀명이라는 이름은 일본열도를 개척했다는 뜻이고 위원추남은 일본열도의 가야가 백제에게 대항해서 붙인 별칭이고 팔천과신은 <고사기>에 등장하는 팔천모신과 같은 이름이고 아라사가 월국을 개척한 것을 말한다.

 

대국옥신을 현국옥(顯國玉)이라 했는데 옥(玉)은 왕(王)이고 현국(顯國)은 열도어로 아라구니(阿羅國)이고 아라국이므로 대국옥신은 아라가야의 왕이라는 뜻이 된다.

 

<일본서기>'수인기'

[천황이 잠을 자다가 깨어나 황후에게 묻기를 "짐이 꿈을 꾸니 비단색 뱀이 내 목을 감고 큰 비가 사호에서 쏟아지기 시작하여 얼굴을 적셨소. 이 무슨 징조요"라고 했다]

 

수인천황은 귀수왕이고 큰비란 384년에 있었던 근강대첩으로 가야가 귀수왕을 공격한 것을 비유한 것으로 수인의 얼굴을 적셨다는 것이 해상공격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호(狹穗)는 가야계지명 사후라, 사후를 가리키는데 최초의 어원은 <일본서기>'신공기'에도 나오는 사히시라기(沙比新羅)인데 금신라(金新羅- 사히시라기)이므로 금관가야이다.

 

[비단색 뱀]은 가야를 비유한 것으로 이 기록은 수인천황이 근강전투에서 전사한 것이고 그 상대가 가야라는 것이다.

참고- 가야의 영토분쟁

http://blog.naver.com/casahoo/20001681859

 

<일본서기>'경행기'

[무존이 근강의 오십즙산에 황신이 있다는 말을 듣고 칼을 풀어 궁책원의 집에 두고 맨손으로 갔다. 담취산에 이르렀을 때 산신이 대사로 화하여 길을 막았다.

 

이에 무존은 주신이 대사로 화한 것을 모르고 "이 대사는 필시 황신의 사자일 것이다. 주신을 죽일 수 있으면 그 사자까지 죽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고는 뱀을 넘어 계속 나아갔다. 그때 산신이 구름을 일으키고 우박을 뿌리게 했다]

 

이 기록은 귀수왕이 근강전투에서 가야군과 만나는 내용으로 무존이 귀수왕이고 오십즙산(五十葺山)은 아라신(阿羅神)이고 가야군대를 대사(大蛇)로 비유한 것이다.

 

이 근강전투가 나오는 <일본서기>'신무기'에는 진언(津彦)을 노인으로 보내자 적이 길을 비켜주었다고 나오는데 진언과 대사가 대응되는 단어로 우박(氷)을 뿌렸다는 것은 겨울이고 더구나 오십즙산은 지형의 일기변화가 심한 곳으로 날씨가 안 좋았던 것이다.

 

<일본서기>'인덕기'

[하이가 반하였다. 전도를 보내 치게했다. 그러나 하이에 패하여 이사수문에서 죽었다. 이때 종자가 있어 전도가 차고 있던 옥팔찌를 가져다 그 처에게 주었더니 옥팔찌를 끌어안은 채 죽었다. 사람들이 듣고 눈물을 흘렸다.

 

그 후로 하이가 백성을 습격하고 약탈했다. 그리고 전도의 묘를 팠더니 대사가 있어 눈을 부릅뜨고 묘에서 나와 물었다. 하이는 모두 뱀독에 많이 죽었다. 다만 한 두 사람만 겨우 면했을 뿐이다]

 

하이(蝦夷)는 일본열도민이라 하는데 여기서는 가야(진언계)를 가리키는 것이고 전도(田道)는 응신천황의 별칭인데 여기서는 응신천황의 후손을 가리킨다.

 

이것은 응신천황이 죽은 후에 가야의 진언계가 응신의 후손들을 제압하고 열도가야(왜)왕이 된 것을 말하는 것이고 [하이가 많이 죽었다]는 것은 5세기 후반에 진언계가 몰락한 상황을 말하는 것이고 가야의 응신을 대사(大蛇)로 비유한 것이다.

 

전도(田道)의 처가 옥팔찌를 안고 죽어버리는데 옥을 가진 처라는 것은 왕권을 말하는 것으로 죽는다는 것은 왕권을 상실한다는 의미로 <일본서기>'인덕기'에 진언의 별칭인 토도치랑자가 응신의 아들 대산수황자(大山守皇子)를 익사시키고 시신을 건졌다는 이야기와 같은 것이다.

 

<일본서기>'수인기'

[그래서 근강국 골짜기의 도인들은 천일창을 따라온 사람들이다. 천일창은 다지마국의 출도사람 대규의 딸 마다조를 취하여 단마제조(但馬諸助)를 낳고 제조는 일유저(日楢杵)를 낳고 일유저는 청언(淸彦)을 낳고 청언은 전도문수(田道間守)를 낳았다]

 

이것은 천일창의 가계기록인데 사실이 아니다.

 

다지마(但馬)는 <고사기>의 천지일모설화에서 도신(渡神)이 길을 막아 천지일모가 머물렀던 나라이름이고 청언(淸彦)은 <일본서기>'신대기'에 나오는 소잔명존의 별칭인 청(淸)에 존칭으로 언(彦)자를 붙인 것이다.

 

근강국의 도인(陶人)이란 말이 나오는데 일본열도의 모정현 도읍(陶邑)에 사는 사람들이고 <성씨록>에 [모정현 도읍을 거쳐 대화국 진수어제산을 둘러보니 모시실이 잇는데 단 세가닥이 얽혀있었다]라는 글이 있는데 대화왕조에서 응신천황을 거쳐 진언계 왕이 셋 배출되었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참고- 일본열도의 가야

http://blog.naver.com/casahoo/20001690585

 

그래서 성이 대삼영(大三領)이고 대삼륜과 같은 성씨이며 도(陶)는 응신과 관련된 말로 응신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 말은 응신의 별칭에 쓰이는 도(道)와 음이 같다.

 

<일본서기>'인덕기'

[길비중국의 천도하(川島河)에 대규가 있어 사람을 괴롭혔다. 행인이 지나가면 많이 죽었다. 이에 립신(笠臣)의 조 현수(縣守)가 물길이 갈라지는 못에 가서 세개의 박(瓠)을 물에 던지며 말하기를 "너는 자주 독을 토해 행인을 괴롭히므로 대규를 죽이겠다.

 

네가 이 박들을 가라앉히면 피할 수 있을 것이나 가라앉히지 못하면 베겠다"고 했다. 이때 대규가 사슴으로 변하여 박을 끌어들이려 했으나 가라앉히지 못했다. 검을 들고 물에 들어가 대규를 베었다.

 

다시 대규의 무리를 찾았더니 많은 대규의 무리들이 못의 깊은 구멍 속에 가득하였다. 모두 베었다. 그 때문에 강물이 피로 변하였다. 그 물을 현수연(縣守淵)이라 한다...(중략)...천하가 대평하고 20여년을 무사하였다]

*규(蟲)- 뿔 없는 용이고 이무기

 

길비중국이라고 했지만 <일본서기>'응신기'에 백제+열도가야(왜)통합왕국을 길비국의 천도현(川島縣)으로 표현하였는데 한자로 같은 음의 천도현(天島縣)으로 천(天- 백제)과 도(島- 일본열도의 가야)는 백제+열도가야(왜)통합왕국을 비유한 것으로 단순히 일본열도지명이 아니다.

 

천도하(川島河)라는 곳은 한반도(天)와 일본열도(島)의 갈림길인 지금의 한반도남부로 가야본토를 가리키는 것으로 응신천황이 파견한 진언이 본토에 있던 가야왕족들을 전반적으로 제압했다는 뜻이고 가야왕족들을 대규(이무기)로 표현한 것이다.

 

(瓠)이라는 것은 서라벌신라를 상징할 수도 있는데 가야본국이 서라벌신라를 제압하면 그냥 두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내가 다스리겠다는 진언의 다짐이고 립(笠)은 가야의 성씨로 립신(笠臣), 립조신(笠朝臣)이고 가야가 개척한 일본열도의 구주 남부에 지금도 가사사(笠沙)라는 지명이 있다.

 

<일본서기>'웅략기'

[천황이 소자부과나에게 "짐은 삼제악의 신의 모습을 보고자 한다. 그대는 힘이 보통을 넘으므로 가서 잡아오너라"라고 하자 과나가 답하기를 "가서 잡아보겠습니다"라고 했다. 곧 삼제악에 올라 대사를 잡아 천황에게 보였다. 천황은 재계를 하지 않았다.

 

그 우레(雷) 같은 독사(훼)는 눈빛이 혁혁(爀爀)하였다. 천황은 두려워하며 눈이 부셔 보지 못하고 내전으로 들어갔고 산에 풀어주도록 했다. 그래서 이름을 고쳐 뇌(雷)라 했다]

 

웅략은 응신을 다시 기록한 동일인물이고 소자부(少子部)는 <고사기>'신무기'에 신무(응신)의 아들 신팔이정이명의 후손으로 되어 있는데 반면에 자부(子部)는 응신의 형 예진의 별칭 화명명의 후손으로 되어있고 장자집안 성씨와 중자집안 성씨를 분명히 소(少)자로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대사(大蛇)가 대물주신이라는 것인데 <일본서기>'숭신기'에도 작은뱀(小蛇)으로 나온다.

 

<일본서기>'제명기'

[공중에 용을 탄 사람이 있는데 모습이 흡사 당인 같았다. 파란기름을 바른 갓을 쓰고 갈성령으로부터 달려서 담구산에 숨었다. 정오가 되자 주길의 송령산 꼭대기에서 서쪽으로 달려갔다]

 

<일본서기>'제명기'

[천황이 조창궁에서 사망하였다. 8월에 황태자는 천황의 상을 옮겨 반뢰궁으로 돌아왔다. 이날 저녁 조창산에 귀신이 있어 큰 갓을 쓰고 장례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 기록은 제명천황(황극)이 가야왕족이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넣어 놓은 것으로 용을 탄 사람의 모습이 흡사 당인(唐人)같았다는 말에서 당인은 대륙의 당나라가 아니고 가라히또(唐人)이고 가야인(加羅人)이다.

 

제명이 죽었을 때 조창궁에서 죽었다고 했는데 응신의 웅략궁이고 조창산도 마찬가지며 상의를 내려다보고 있는 갓을 쓴 귀신이 제명의 혼령인 것이다.

 

이렇게 가야왕족들이 해신으로 용(龍)과 뱀(蛇) 또는 거북(龜)으로 상징되고 있는데 백제계를 이렇게 비유한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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