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명장면. 열도를 정벌하는 신라 토끼

이나바의 하얀 토끼(因幡の白兎)

 

1. 이 설화가 재미있는 점은..토끼가 바다를 건너다 악어에게 당해 껍질이 홀라당 벗겨졌지만 대국주신을 만나 구원받았다는 이야기다.알고보면 조선통신사들이 일본가서 자랑하던 신라의 오사카 정벌 백마총 스토리다.삼국유사의 연오랑 세오녀 설화로 일본서기,고사기,풍토기와 내용이 연결되고 기록도 풍성하다.친일모드때는 왜인과 농담거리가 된다.반일모드때는 공격용 떡밥도 된다.   2. 등장인물대국주신(일본무존),토끼(천일창),악어(임라,하타씨). 우선 천일창 설화를 요약하면 이렇다.신라의 토끼 왕자가 마누라를 구박하자 마누라는 나니와(오사카)로 도망을 가버렸다.토끼 왕자는 아내를 되찾아올 것을 결심한다.  아내를 찾는다는 것은 나니와를 점령하러 떠난다는 비유다.이참에 열도를 신국의 법도로 교화시키기 위해 곰의 신단과 삼종신기 등 8종의 보물을 챙겼다.토끼 왕자는 악어 나루(와니진)을 통해 열도 관문 후쿠오카 해안의 하카타로 향했다.토끼 왕자의 대선단의 위용이 얼마나 장엄했으면 마치 수백마리 악어가 때지어 이동하는 듯 보였다. 하카타에 있던 이도국을 순식간에 접수하고 바로 내해로 향할 준비를 하였다.본국에서는 그 공을 기려 토끼 아리시토 왕이라는 뜻의 '우사기 아리시토 간키(于斯岐阿利叱智干岐)'라는 관직을 주었다.외국군이 침공해오자 열도는 난리가 났다. 

이제부턴 소나갈질지,천일창 설화로 붙이며 이나바 토끼 설화를 이어나간다.내해로 들어가려니 대국주신의 군대가 나타나 열도의 입구인 야마토를 틀어막는다.
토끼 왕자는 우회해 이즈모, 고시국(越國) 등 서부해안을 점령해 나간다. 이때부터 토끼같은 조우관을 벗고 뿔 투구를 쓰고 전쟁에 임했다.고시국을 토벌하고 본국에서 얻은 관직명이 '츠누가 아리시토 간키(都怒我阿羅斯等)'다. 뿔난 아리시토 왕이라는 뜻이다. 왜인들은 피를 뒤집어쓴 토끼왕자에 기겁해 액유각인(이마에 뿔난 사람)이라 불렀다.
말그대로 귀신(오니)의 군대다.토끼 왕자의 군대는 번쩍이는 황금빛 창을 높이세우고 하리마로 진군한다.전쟁터는 하리마국 일대. 대국주신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운명의 한판 승부를 벌일 차례다.대국주신은 아와지섬(담로도)를 줄테니 전쟁을 그만두자고 제안한다. 그 대답으로 토끼왕자는 나니와의 100리 코앞 명석포(明石浦)까지 진군해 곧 나니와를 수중에 넣으려 했다.이에 대국주신은 항복의 뜻으로 백마를 베어 하늘에 맹세하고 토끼왕자와 화평을 맺는다.토끼 왕자는 신라에서 챙겨온 곰의 신단과 7보를 미와산(삼륜산)에 안치하고 신사를 세워 단군에 제사지냈다.신사가 최초로 지어지고 곰의 신리가 열도로 옮겨지니 열도에는 신도 전통이 부활하고 반대로 신라는 퇴색했다.사람들은 토끼왕자의 업적을 기려 아메노히보코(천지일모,천일창)라 신으로 추앙했다.이로서 토끼왕자는 모든 대업을 이루니 대국주신의 제안을 받아들여 타지마국의 왕이 되어 열도에 귀화한다.토끼왕자가 타지마국에 눌러살면서 아내를 얻어 후에 그 5대손 신공황후가 태어난다.신공은 대국주신을 굴복시킨 가문의 딸 답게 스스로 삼한의 주인임을 자각하고 있었다.무슨 이유인지 그녀는 신라의 핏줄이면서 신라를 정벌할 계획을 추진하게 된다.
내해를 장악한 대국주신의 영역 (진무천황 동정 루트)

대국주신은 신라 소시모리 출신의 이즈모왕 스사노오(우두천왕)의 5대손이다.교토에서는 우두천왕을 모시는 기온 마쯔리가 성대하게 열린다.그러나 우두천왕을 모시는 것은 백제계 신사다. 뭐냐 우두천왕? 부여의 신인가 -_-?조금씩 그의 정체가 드러난다.일본서기 소나갈질지 편에선 토끼의 고향이 대가라(오호카라), 상가라(우카야)라 했다.토끼에게 돌아가거던 국호를 숭신의 이름을 붙여 미마나(임나)로 바꾸라 했다.대국주신 그러니까 숭신의 이름은 '미마키 이리히코 이니에노 스메라노 미코토'미(御)는 우두천왕, 우즈마사 후손들의 예법이다. 따라서 미 = 우두(우즈)로 교체가능하다.눈치 빠른 사람은 대국주신의 별칭 중에 우즈시구니(宇都志國)라는 호칭이 머리속에 팍 떠오를 것이다.우즈마사(太秦)는 우즈모리마사(禹豆母利麻佐)의 약자다. 하타씨도 우즈모리 즉 우두머리라 불린다. 조상은 백제 1차 멸망기 도래한 궁월군(유즈키)다. 그는 위례성이 함락되자 열도로 120현민을 이끌고 도해했다.궁월군의 다른 이름이 융통왕. 우두의 발음과 상통한다. 우두천왕의 삼한 주인의식, 임라 집착으로 볼때 진왕의 자손같다.그럼 천손의 고향 근국은 월지국(목지국)이며 진왕 즉 용왕이 사는곳이다.바다의 용들이 사는 곳이니 하타(바다)씨의 고향이다? 말된다.그럼 월지국이 어딨나 소머리니까 백제 우수주(牛首州)가 분명하다.위치는 불명이다. 지금 사학계 해석으로는 우두천왕 고향을 찾기는 불가능일본서기가 줄기차게 스사노오가 백제가 아니라 신라에서 왔다고 하는 이유가 있다.석탈해가 왜국 동북 오천리에서 왔다는 것도 다 이유가 있음이다.이런 스토리가 삼국사기에 없는 것은 해와 달을 잃었기 때문..아주 함축적이고 천재적인 비유다.대국주신은 바다 악어들을 수중에 넣어 나니와로 들어오는 모든 세력을 막고 싶어했다.바다악어는 신공때도 나오지만 대마도 와니진을 통제하는 세력이다.악어는 해상세력이며 바다(하타, 와타) 씨족이니 대국주신과 한가족이다. 일단 토끼를 열도까지 데려간 세력도 바다 악어다.악어를 통제하는 왕은 대국주신보다 상위에 따로 있기 때문이다.악어왕은 훗날 열도에 천자문을 가르쳐주고 왜왕을 교육하는 와니키시로 대표된다.악어 세력은 삼국사기에 나오지도 않는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칠지도 에피소드도 그렇다.  바다악어들이 왜왕의 소식을 듣자 곡나철산(谷那鐵山)에서 철을 캐와 신단수 형상의 칠지도를 만들었다.참새 왕자 손에 쥐어 열도로 보냈을때 대국주신 일족과 상봉하는 장면을 보자.선대왕들이 그렇게 만나고 싶어했던 사람들이 이제서야 왔다고 통곡을 하며 기뻐한다.거의 이산가족 상봉 분위기다.

이나바노 시라 우사기 (이나바의 하얀 토끼)

대국주신은 많은 형제신이 있다. 그러나 모두가 나라를 대국주신에게 맡겼다. 이유는 이나바의 팔상공주와 혼인하려고 이나바로 갈 때 대혈모지신에게는 짐을 지우고 데리고 갔다. 그런데 기다갑에서 벌거숭이 토끼가 엎드려 있었다. 신들이 토끼에게 '몸을 낫게 하려면 바닷물을 뒤집어쓰고 바람을 쐬면서 산봉우리에 올라가 엎드려 있거라' 라고 가르쳐 주었다.토끼는 신들이 가르쳐준 대로 엎드려 있었다. 그러자 바닷물이 마르면서 온몸의 피부는 바람에 완전히 찢겨지고 말았다. 그래서 울면서 엎드려 있을 때 나중에 온 대혈모지신이 토끼를 보고 '너는 울면서 있느냐' 하니 토끼가 '어기도에서 이곳으로 오기 위해서 악어를 속여서 어느쪽이 동족이 많은지 헤아려 보고 싶다. 그러니 너의 종족을 모아서 이 섬에서 기다갑까지 한 줄로 엎드려 있거라. 그러면 내가 밟고 달리면서 헤아리고 건너기로 하자. 그리고 내 동족과 어느쪽이 많은지 알아보기로 하자고 했다. 그러자 속은 악어가 엎드려 있을 때 그 위를 밟고 건너서 땅위에 내리면서 너는 내게 속은 것이라고 말을 하자 맨 끝에 있던 악어가 나를 붙잡아 모두 벗기고 말다. 그래서 울고 있는데 앞서간 신들이 바닷물을 뒤집어쓰고 바람을 맞으며 있으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래서 가르쳐준 대로 하니 내 몸은 상처투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라고 했다.이에 대혈모지신은 토끼에게 '지금 이 강어귀에 가서 물로 몸을 씻은 다음 곧바로 강어귀의 포황 꽃가루를 바닥에 뿌리고 뒹굴면 너의 몸은 원래 피부처럼 낫게 될 것이다' 라고 했으며 가르쳐준 대로 하니 토끼의 몸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것이 바로 이나바의 흰토끼다.지금도 사람들은 이 토끼를 토신(兎神)이라 한다. 그리하여 이 토끼는 대혈모지신에게 말하기를 "그 신들은 분명히 팔상비매와 혼인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녀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시라우사기 전설의 루트 (백토신사)

나라 삼륜산에 있는 대국주신의 대신신사천일창의 곰 신단(쿠마노 히모로기)을 모셨다는 그곳이다.
백제국왕 우두천왕  (백제왕 신사)
닌토쿠(인덕)가 와니키시(왕인,악어왕)에 고마움을 표시하며 백제에서 모셔온 대산적신을 모시는 미시마(삼도)신사.

효고현(옛 고시노쿠니 : 越國) 쓰루가 역앞에 서있는 신라의 토끼왕자 동상 (일본명 : 아메노히보코 , 한국명 : 연오랑 , 아라사등 )

<古史記>에 이나바 설화의 기본적인 스트리 뼈대인 천지일모 신화가 기록되어 있다.

[옛날 신라국주의 아들이 있었다. 이름은 천지일모(아메노 히보코)라고 하였고 바다를 건너왔다. 건너온 이유는 신라국에 연못이 하나 있는데 연못의 이름은 아구누마(阿具奴摩)라 하였다. 이 연못에서 천부(賤婦)가 낮잠을 자는데 무지개 같은 빛이 그 여자의 음상(陰上)에 비치는 것을 또 다른 천부(賤夫)가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여인의 행동을 주시했다. 그런데 그 여인은 낮잠을 자고 임신을 하여 적옥(赤玉)을 낳았다. 이를 지켜보던 천부가 그 옥을 달라고 졸라서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

 

이 사람이 산곡에 밭을 일구었기 때문에 밭가는 사람들의 음식을 소 한 마리에 지워 산곡 안으로 들어가고 있을 때 국주의 아들 천지일모와 마주쳤다. 이에 그 사람에게 묻기를 "왜 음식을 소에 지워 산으로 들어가느냐. 네가 필시 이 소를 잡아먹으려 하는 것 같다"하고서 그 사람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

 

그러자 "소를 잡아먹으려 한 것이 아니고 밭일하는 사람의 음식을 가져가고 있었습니다" 하였다. 그래도 용서해주지 않으니 천부가 허리에 차고 있던 옥을 바치자 놓아주고 그 옥을 가져와서 침상에 놓았더니 아름다운 처녀로 변하였다.

 

그리하여 혼인을 하고서 적처(嫡妻)로 삼았다. 그 아내가 언제나 맛있는 음식을 마련하여 남편에게 대접했다. 그러자 그 국주의 아들이 교만한 마음이 생겨 아내를 꾸짖었더니 그녀가 "항상 내가 당신의 아내 노릇만 할 사람이 아니다. 내 조국으로 가겠다"하고서는 곧 몰래 작은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난파에 머물러 살았다. 이에 천지일모가 그의 아내가 도망간 것을 알고 쫓아가서 난파(나니와)에 이르렀을 때 도신(渡神=대국주신)이 막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다지마국(多遲摩國)에 머물렀다]

<日本書記>'수인기'에는 신라에서 천일창이 가져온 단군을 제사지내는 고대의 무구가 기록되어 있다.

신라왕자 천일창이 내귀하였다. 가지고 온 물건은 우태옥(=엽세주) 1개, 족고옥 1개, 제녹녹의 적석옥(赤石玉) 1개, 출석의 소도 1구, 출석의 창 1지, 일경 1면, 쿠마노 히모로기(熊神籬) 1구 등 모두 일곱 가지였다. 그것을 다지마[但馬]국에 간수해두고 항상 신물로 여겼다

<古史記>에 천일창이 응신으로 창씨개명(이름을 서로 바꿨다고)했다고 나온다. [처음 응신천황이 태자가 되자 월국(고시노쿠니)에 가서 각녹(角鹿)의 사반대신을 배알하였다. 그때 대신과 태자가 이름을 바꾸었다. 그래서 대신을 거래사별신이라 부르고 태자를 예전별존(譽田別尊)이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대신의 본명을 예전별신 태자의 원명을 거래사별존(去來紗別尊)이라 하기도 한다]

<風土記>'월전국 기비신궁'에 응신과 천일창이 동일인물이라 다시 나온다.

[기비신궁(氣比神宮)은 우사(宇佐)와 동체이다.팔회(八幡,야하타)은 응신천황(오우진)이 진좌하였다]

 

<日本書記>'신대기'에는 천일창과 똑같은 행적을 보이는 스사노오 설화가 나온다.

[소잔명존(스사노오)의 소행이 괴씸하였다. 그래서 여러신이 천좌치호를 과하고 쫓아내었다. 이때 소잔명존(스사노오)은 아들 五十猛(한국음:오십맹/일본음:고쥬모우(고주몽)/훈독:이소타케)신을 데리고 신라국으로 내려가 소시모리(曾尸茂梨)라는 곳에 있었다. 그런데 말을 하기를 "이 땅은 내가 살고 싶지 않다"라고 하고는 진흙으로 배를 만들어 타고 동쪽으로 가서 출운의 파천 상류에 있는 조상봉(鳥上峰)으로 갔다]

<신찬성씨록>에 나오는 도반명의 조상 계보에 초기 신라사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시라기[新良貴] 성씨의 원조는 신무의 부왕인 언파불합존이고 그 아들 도반명의 후손이다. 도반명은 시라기.노.구니[新良國/新羅國] 출신이며 신라국주도 했고 신라국왕의 조로부터 나왔다」.  

<하리마 風土記>에는 내해를 방어하는 대국주신과 나니와로 진격하는 천일창의 전쟁이 비교적 자세히 나오니 참고할것. <삼국유사>에는 이 장대한 스토리가 연오랑 세오녀로 3줄 요약되어 있다.


덧글

  • 제홍씨책사풍후 2012/09/10 17:51 # 답글

    음.. 토끼 VS 대국주신이 아니라 토끼 = 대국주신 같습니다.
  • 제홍씨책사풍후 2012/09/10 17:51 # 답글

    허황옥 = 아라사등의 적옥赤玉 = 수로부인(수로의 부인이 와전된) 이군요.
  • 제홍씨책사풍후 2012/09/10 17:56 # 답글

    아라사등은 아내를 따라 일본으로 갔으니까 아내(=허황옥=적옥=수로부인)가 토끼일거 같습니다.
  • 신라의 일본 능욕~ 2014/12/13 20:11 # 삭제 답글

    신라에게 능욕당한 왜국..


    562년 7월 임나가 멸망한 직후에 왜군이 신라에 싸움을 걸었다가 대패한 기록이 있다.

    뭔가 전개가 기승전병(...)스러운데다, 어째서 이런 기록이 남아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추태를 보이기도 한다.

    전투 내용을 요약하자면 왜는 신라가 임나를 친 것을 복수하기 위해 신라로 출정을 가는데, 임나에 가서 코모츠메베노오비토 토미(薦集部首登弭 こもつめべノおびと とみ)라는 장수가 처갓집에서 자다가 군사계획이 든 서류를 길에서 잃어버린다.(...)
    그걸 얻은 신라가 거병했으나 패망하고(???) 승리한 왜군은 백제로 돌아온다.

    한편 카와베노오미 니에(河邊臣瓊缶 かはべノおみ にへ)는 홀로 나아가서 연승하고, 신라군이 백기를 들고 항복한다. 그런데 군사에 밝지 않은(??) 카와베노 니에가 자기도 백기를 들고 혼자 앞으로 나왔다가(...) 신라군의 반격에 도망했으나 결국 잡혔다(...)
    이정도 되면 개그가 아닌가 싶다.

    이에 카와베노 니에와 그 가족들을 잡은 신라 장군은 카와베노니에의 아내인 우마시히메(甘美媛 うましひめ)를 보고 "니 목숨이 소중하냐 아내가 소중하냐"라고 이야기 했고, 카와베노 니에는 목숨이 소중하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신라 장군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우마시히메를 '강 간' 한다.
    뒤에는 둘 다 풀어준 모양이지만 우마시히메가 엄청나게 비난하고 끝내 따르지 않았다고..

    또 이 신라장군은 츠키노키시 이키나(調吉士伊企儺 つきノきし いきな)라는 왜군 장수를 보더니 이키나의 바지를 벗긴 후 엉덩이를 왜국 방향으로 돌리게 한 다음 이키나에게 "왜국(일본) 대장은 이 엉덩이를 먹어라"라고 외치라고 시킨다.(...) (아무래도 일본 섬을 바라보고 하라고 했으니 일본왕을 조롱한 것이었겠지만, 일본서기에서 대장이라고 바꾼 것 같다.)
    하지만 이키나는 고통속에서도 끝까지 "신라왕은 이 엉덩이를 먹어라"라고 외치며 저항했고, 결국 아들과 같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본측 기록에서는 충신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본서기 입장에서 전혀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이런 내용이 기재된 이유는, 아마도 위와 같이
    그 충절(...)을 기려서 간접적으로 천황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신라에게 능욕당하는 왜국.. ㅇㅇ


    사실 일본서기 내에서도 웃긴 게 있다. 일본서기 내 기록에서 신라구의 피해를 받는 기록을 보면 일본은 제대로 된 정식 군대가 있던 적이 없어 맨날 당한다느니, 그래도 일본은 신이 지켜주는 신국이니 앞으로는 안오겠지 하며 자기위안만 하고 있는 내용이 무더기로 나온다는 것. 그런데 이런 상황이면 최소한 정신적 위안용으로라도 진구황후 얘기가 조금이라도 나올 만 한데, 안나온다. 심지어 신라구로 인해 신라에 대한 반감이 높아져 일본에 살던 신라인들을 일본인들이 공격하는 일도 기록되어 있으면서 신화시대 기록 이후에는 안나온다.

  • 신라의 일본 능욕~ 2014/12/13 20:14 # 삭제

    통일 후에도 계속 신라에게 능욕당하는 왜국..


    731년 일본이 후지와라 나카마로의 지휘 아래 300척의 군함을 이끌고 신라로 처들어갔으나 신라가 간단하게 격퇴하였다.

    일본의 신라 침공 계획의 원인이 된 "왕성국 사건"도 734년인 이때 벌어졌는데,
    이는 일본에 대한 신라의 우월감 때문으로 보인다.

    더구나 당시 신라는 문무왕-신문왕-효소왕-성덕왕-효성왕-경덕왕으로 이어지며 국력이 신장되어 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어 발해보다도 국력이 앞서 있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마디로 신라는 일본? 그깟게 뭐라꼬? ㅋㅋ 라는 입장이었던 것.

    이런 양측의 갈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734년에 일어난 소위 왕성국 사건이다.
    성덕왕이 일본의 소소한 침공을 격퇴한 직후 일본에 사신을 보냈는데 그 동안 써오던 신라라는 나라 이름 대신
    왕성국이라는 이름을 국서에 쓰자 일본측이 '이게 뭥미?' 라면서 사신을 문전박대했다는 것이다.
    왕성국이라는 이름이 한국사서에는 등장하지 않으나 신라는 서경에 근거하여
    신라는 왕성국이고 일본은 번국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경에서는 왕성(수도 궁성)-왕기(수도)-6복(지방 = 9주 5소경)-번국의 순서로 주종관계를 말한다.>

    당연히 일본 입장에선 왕성국이라는 이름으로 온 사신과 국서를 받았다간 이를 인정하는 꼴일테니 사신을 되돌려 보낼 수 밖에..

    일본은 이후 2년이 지난 736년에 사신을 보내 관계개선을 시도(혹은 왕성국에 대해서 따지려고)했던 것으로 보이나 신라는 왕성국 사건에 대해서 사과나 유감표명을 전혀 하지 않고 결국 일본 사신은 소득없이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짧은 효성왕을 지나 경덕왕대에 이르러 양국의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어갔다.
    742년, 일본이 신라에 사신을 보냈으나 입국을 불허했고 753년에 일본이 다시 사신을 보냈으나 오만하고 무례하다라는
    이유로 일본 사신은 경덕왕의 얼굴도 못보고 돌아가야 했다.
    이런 일련의 상황에 일본이 신라에 앙심을 품었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후 신라가 세번 사신을 보냈으나(738년,742년,743년) 갈등이 완화되기는 커녕 더 악화되어갔다.
    신라 사신이 선물을 토산물로 표기한 것에 일본이 반발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753년, 일본이 사신을 보내자 경덕왕이 오만하고 불손하다라는 이유로 사신을 돌려보내자
    일본은 폭발하기에 이르렀고 이후 본격적으로 신라 침공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일본이 목표로 한 762년, 일본은 신라를 침공하지 않았다.
    배 500척을 만들고 신라어를 익히게 하는 등의 의욕적인 행보와는 달리 처음부터 전혀 그런 일은 없었다는 듯이
    모든 일이 싹 사라져 버렸던 것. (아마도 신라가 생각보다 무서웠던 모양..)


    통일 전에서 통일 후 까지 계속 신라에게 능욕당하는 왜국.. ㅠ.ㅠ
  • 신라의 일본 능욕! 2015/12/03 22:43 # 삭제

    성덕왕(聖德王) 30년,
    일본국 병선 300척이 바다를 건너 우리의 동쪽 변경을 습격하였는데, 왕이 장수를 시켜 군사를 내어 이를 크게 깨뜨렸다. (日本國兵船三百?, 越海襲我東邊, 王命將出兵, 大破之.)
    - 제대로 상륙도 하지 못하고 박살난 일본, 결국 용서를 빌기 위해 서기 742년에 사신을 파견하지만‥

    경덕왕(景德王) 원년,
    겨울 10월에 일본국(日本國) 사신이 이르렀으나 받아 들이지 않았다. (元年冬十月, 日本國使至, 不納. )
    -완전히 무시당한 일본, 그러나 자존심은 있어서 허세를 부리면서 다시 사과하려고 하지만..

    경덕왕(景德王) 12년,
    가을 8월에 일본국 사신이 이르렀는데, 오만하고 예의가 없었으므로 왕이 그들을 접견하지 않자 마침내 돌아갔다. (十二年秋八月, 日本國使至, 慢而無禮, 王不見之, 乃廻.)

    - 재차 무시당한 불쌍한 일본. 결국 서기 804년, 통일신라의 속국이 되기로 결심, 조공을 바친다.
    애장왕(哀莊王)
    5년 여름 5월에 일본국이 사신을 보내와 황금 300량을 바쳤다. (五年夏五月, 日本國遣使, 進黃金三百兩.)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통계 위젯 (화이트)

13154
1212
13776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