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증자료]사무라이 정신과 100년전 사무라이 사진.







내 블로그 글들중에서 이글루 운영자에게 차단되가는 쓰레드를 보면

일제시대 만행 시리즈는 예전부터 계속 꾸준히 블라인드 차단 되어왔고

일본문화를 비꼰 쓰레드 중에서

이번에 일본 사무라이 고증집 쓰레드가

무슨자살협회 어쩌고 댓글과 함께 강제차단 한다는 매세지가 날라왔다.

아무튼 왜놈들과 그 아류 일빠들의 블로그 공격 때문에 카피사루는 피곤하다.

사실 이 사무라이 쓰레드는 인조이 시절 화석같은 쓰레드로 보존가치가 높고

워낙 널리 퍼진 내용으로 인터넷상에서 지울수 있는 내용도 아니다.

빨리 왜나라당이 물러가야 블로그질도 편하게 할텐데 세멘박 치세에는 별일을 다 겪는구만.

에휴.. 늙은 쪽바리들의 발악이라 생각해 두련다.

이젠 일일히 상대하기도 지겨워.

더욱 지독한 내용으로 업글해서 사무라이 사진집 쓰레드는 다시 올려놓을란다.



이하 이글루스 운영진의 공격으로 차단된 쓰레드 내용 백업


사무라이는 근대 왜국까지 존재했던 막장 집단을 의미한다. 한자로는 시(侍 - 모실 시)라고 쓰는 이 집단은 공통적으로 큰 칼을 두 자루 차고 다니며 상투를 틀고, 이상한 어깨뽕이 달렸으며 동그라미와 네모 무늬가 있는 옷을 입었다는 점이 있으며, 사무라이들의 막장 행각은 왜국 역사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괜히 동양에 대한 신비주의랍시고 코쟁이 양키들이 전부 미화해놓아서 사무라이는 무사도를 지키는 어쩌고 하는 하는 더욱 이상한 집단으로 변했다.


사무라이의 어원 시(侍) : 侍자는 섬길 시, 모실 시라는 뜻의 한자로,,귀인을 섬기는 하인을 뜻한다.
왜인들도 어원을 몰라서 제후를 뜻하는 侯(사후라부 さぶらふ)가 와전된 것이라 짐작만 할뿐 아무도 모른다.
일부 일본의 어원학자중에서는 사후라부(さぶらふ)가 한국어 섬기다(侍)에서 파생된 단어로 보는 사람도 있다.
한때 일본회사가 사무라이쇼다운이라는 게임을 싸울아비스피릿츠로 한국에 힛트시켜 싸울아비(무사)라는 조어도 유행했다
간혹 열도의 일본인 유대민족설을 신봉하는 미치광이들은 사무라이는 수메르의 왕이라고 주장하니 알아만 두자.
원래는 사무라이의 조상격인 겐씨들 신라삼랑원의광(新羅三郞源義光)에서 출발했다고 보는편이 좋을것이다.

언뜻 한국에서는 싸울아비, 사무라이 = 무사(武士 :부시)의 뜻으로 쓰이는데 왜인들과는 감각이 완전 다른것이다.
 侍자는 중국이나 한국에선 내시..시종.. 같은 거세당한 관직들에 들어있는 한자로 관직이 있는 머슴을 뜻한다.
주인도 없고 출세못하거나 실직한 백수 사무라이를 낭인, 랑인(浪人 :로우니잉)이라 한다.
무사(武士)와 사무라이(머슴)는 어차피 한자상으로는 이어질수 없는 개념으로 근대에 전쟁광들이 이어붙인 망상론에 불과하다
실제로 왜인들에게 사무라이 정신이나 무사도가 정립되어 있는 서지학적 근거를 달라고 하면 대부분 만화나 영화뿐이다.
사무라이가 도를 닥고 차를 마시는 것은 근대왜인들의 망상일뿐 실제로는 살인청부 양아치 야쿠자에 불과한 집단이다.
1
일본쇼군의 무식함을 한탄하는 조선의 선비


 
참고 뉴스 " 무사도는 근대에 만든 날조로 밝혀져"
http://enjoyjap.egloos.com/1768228 


사무라이 정신이란 무엇이다?

1.의리
막장 야쿠자간의 단순한 의리 정도로 출발한 사무라이 정신은 신도(神道), 불교(佛敎), 유교(儒敎)의 영향을 받으면서 점차 세련된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하지만 그 외양에 관계 없이 사무라이 정신의 본질은 항상 변함이 없었으며 그 본질이란 곧 은원(恩怨)은 반드시 갚는다는 복합적인 의미의 의리(義理)와 자신의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결연한 태도에 있습니다.
주군(主君)을 위하여 전투를 수행하고 그 대가로 은급(恩給)을 받아 생활하는 사무라이에게 있어서 은급(恩給)을 하사하는 주군(主君)에 대한 의리(義理)는 곧 자신의 존립 근거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자신과 자신의 주군에 대한 모욕에 대해서 반드시 복수하는 것 또한 또다른 형태의 의리로서 중요시 됩니다.
이러한 의리 의식은 현대 일본인의 특성을 규정 짓는 많은 특징중에서도 특히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고 생활하는 자세는 사무라이 정신의 또다른 핵심입니다. 헤로도투스가 지적하였듯이 전투에 임한 전사(戰士)는 항상 상대방을 죽이고 싶지만 자기는 죽기 싫다는 생각 때문에 고통받게 됩니다.

2.할복
일본의 사무라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여야만 무사로서의 자기 가치를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에 자기 몸조차 사르는 광폭(狂暴)함을 미덕으로 삼고 불교의 윤회(輪廻) 사상과 선(禪)의 힘을 빌려 자신의 죽음에 초연해지고자 노력하였습니다.
할복(切腹―せっぷく、はらきり은 죽음을 기꺼히 받아들이는 사무라이의 정신을 극명히 드러내 보여주는 행위로서 언제나 칭송 받았습니다.


일본인들 스스로가 사무라이 정신의 표상이라고 여기는 사건. 

1. 47 낭인(浪人) 사건
워낙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1740년대부터 주신구라(忠信藏) 라는 이름의 가장 인기있는 가부키(歌舞伎) 주제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계속 영화화되고 있습니다.
1701년 하리마 아코오의 번주 아사노 나가노리는 조정 대신 기라 요시나카에게 모욕을 당하고 칼을 빼어들었다가 쇼군의 명령으로 할복자살을 합니다. 이로 인해 영지를 잃고 은거생활을 하던 나가노리의 가신 47인은 2년 뒤 기라 요시나카의 집을 습격하여 남녀 노소를 모두 참살한 뒤 쇼군의 명으로 집단 할복 자살을 합니다. 

2.  나가사키(長崎) 사건
 나가사키 무사들간의 사소한 시비에서 비롯됩니다. 무사들간에 서로 흙탕물을 튀긴것이 시비가 되어 상호간에 폭력 사태가 발생하고 결국 12인의 사무라이가 상대의 저택을 습격하여 주인과 저택안의 모든 남여 노소 모두를 참살한 후 가까운 다리 위에서 모두 할복자살을 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포로로 잡힌 조선유학자의 간양록(看羊錄)에 나타난 왜인과의 문답

"왜인은 주장이 싸움에 폐하여 자결하면, 그의 부하들도 모두 자진하여 자결한다. 내가 왜장과 왜졸에게 삶을 원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사람이나 생물에게 있어서 모두 한 가지일 텐데, 일본인만이 죽음을 즐거움으로 하면서 삶을 싫어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라고 묻자 모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일본의 쇼군은 민중의 이권을 독점하여, 머리털 한 가닥도 민중에게 속한 것이 없다. 그래서 장관의 집에 몸을 의탁하지 않으면 입고 먹을 것이 없다. 일단 장관의 집에 몸을 의탁하게 되면 내 몸도 내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담력이 모자라는 것으로 간주되면 어디에 가더라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허리에 차고 있는 칼이 좋지않으면 인간 취급을 받지못한다. 칼자국이 얼굴에 있으면 용기있는 남자라고 간주되어 후한 녹을 받는다. 칼자국이 귀 뒤에 있으면 도망만 다니는 남자라고 간주되어 배척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입고 먹지못해 죽는 것보다 적과 대항하여 사력을 다하는 편이 낫다. 힘을 다해 싸우는 것은 실은 자기자신을 위한 것으로 주군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일본사무라이 최강의 검법인 시현류(示現流) 동영상

사무라이 제도는 막장 노예 제도.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았다


사무라이 대장

 
사무라이 이인조

유독 섬나라에선 인간 백정 스킬이 사무라이들만의 특권.

BUSHIDO(武士道)


할복(하리키리)
왜인에게만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진 특이한 정신질환인 화병(和病)은
할복(하리키리)를 유발하는데 분노를 못참거나 이지메를 당할시 자동으로 시전된다.

 
사무라이 갑옷

 
검법을 시전하는 사무라이


정장을 입은 사무라이


왜(倭)는 옛부터 중국에서 해변이나 섬에 사는 어부종족을 아우르는 부르는 단어로 왜어로 읽으면 wa다.
고대기록일수록 倭는 열도가 아니라 중국 남방의 인도네시아 원주민들을 부르는 단어이기도 하고
북한 서해의 발해만 근처 수많은 소도들에 모여사는 원시 어부 종족들을 가르키는 단어다.
애초부터 자국의 국호를 스스로 만들지도 못했고 그렇다할 정부도 없었기 때문에 수천년간 倭로 불렸다.
일본이라는 국호는 백제 패망이후 백촌강 전투의 백제 부흥전쟁이 실패한 이후 세롭게 탄생한 국호다. 그전까지는 倭國이었다.
왜(倭)의 형성자를 보면 人+禾+女로 쌀을 머리에 이고 있어 허리가 구부러진 여인의 형상으로 매우 키가 작아 보인다는 의미다.
즉 중국어로 직역하자면 존만한 세퀴들이란 욕이 倭다.  왜소하다 할때의 왜(矮) 또한 비슷한 의미인데
백제인에게 글자를 배운뒤 글자가 수치스럽기 때문에 대화(大和)라고 쓰고 야마토로 읽는다.
야마토는 본래 뫼山 문門자를 써서 나타내는데 왜국에 들어가던 후쿠오카와 야마구찌 일대의 협소한 해협를 본딴 옛지명이다.
삼국사기에선 門의 고어가 梁이고 이것을 '토(達)'로 읽는것은 가야 지명의 특징이라 신라의 최치원이 말했으니
야마토도 알고보면 수입어휘다. 왜인은 본시 4세기 광개토대왕에 망한 대가야(우카야:上加羅)의 노예민족이기 때문.
그래서 왜인은 자신들의 지배자이던 대가야왕의 판갑을 본뜬 요로이를 신주단지 모시듯 입고 전쟁에 나간다.
왜인들의 변발 (촌마개)는 오랑캐의 풍습으로 사무라이의 상징이다.
몽골족처럼 머리에 이,해충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머리를 만든다.
백제인의 교화를 받던 아스카시대까지만 해도 없던 풍습

왜구..영주가 거느리는 조직화된 정규군으로 밝혀지고 있다.
자급자족을 할수없는 왜국은 항상 중국과 조선을 약탈하였다.

신선조 사이토하지메
(新選組 斎藤一)





노려보는 사무라이

사무라이 형제

사무라이 군단의 소풍

미소년 사무라이


왜인 사무라이는 여자를 강간할 권리를 갖습니다
倭女는 사무라이에게 반항할 권리가 없습니다
강간 되어도 좋은 신음을 흘리는게 일본의 전통입니다
너의 아내가 강간되어도 사무라이에게 반항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무라이는 너를 죽일 권리를 갖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강간 되어도 사무라이에게 고개를 숙입니다
강간은 요바이 민족 일본의 전통입니다
倭女는 강간 되어도 좋은 신음을 흘립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강간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倭奴의 자랑스러운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사무라이에겐 인본주의라는 미덕이 없다.
손발을 자르고 조선 부녀자를 겁탈하던 일본군


조선시대의 서열.



양반에게 부채로 얻어쳐맞는 사무라이





근대화한 사무라이

군인이 된 사무라이


사무라이 정신을 계승한 ヤクザ(야쿠자)
야쿠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뜻의 깡패들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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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글

    • ㄱㅂㄱ 2009/10/14 11:18 #삭제답글

      옛날엔 우리 선조들도 일본인처럼 작은건 마찬가지일텐데.... -_-;;
    • ㅇㅇ 2009/11/22 02:44 #삭제

      우리 선조들은 컸음. 매우 컸음. 양란이후 영상상태가 안좋아서 근대 들어 작아지긴 했지만 한중일 삼국 중에 제일 컸음ㅇㅇ. 중국기록 보면 중국간 우리나라 사신들 보고 헐 새키들 키도 큰게 높은 모자쓰고 다니네 헐 이라고 쓰여있습니다ㅇㅇㅋ
    • ㅇㅇ2 2010/01/27 09:18 #삭제답글

      사진 보니까 기럭지 ㅅㅂ 끝장났음
    • 2010/11/03 17:11 #삭제답글

      ㄱㅂㄱ// 물론 지금의 우리들 보다는 작은게 사실. 서양인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말 남성의 평균키는 163cm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 왜인은 130,140cm 대 였다. 그러니 동시대의 중국이나 우리나라 선조들 보다 머리통이 하나 이상 더 작았으니 왜인이라는거지... 소인증 걸린 사람들 있지? 그 사람들 평균키가 120~140cm 정도 인데 왜인들이 그 정도였다고 보면 됨.
    • 비판없는 수용. 2011/01/04 12:20 #삭제답글

      사무라이를 무슨 성인이라도 된 양 미화시키고 있는 지금 상황에 그걸 좋다고 무식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 정말 이해가 안간다.
    • -_- 2011/02/15 16:44 #삭제답글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지뭐. 이놈은 악질 일까네.
      누가 니네집안 그렇게 욕하면 좋냐. 사기는 치지 말자 좀.
      이내용 그대로 믿는 병신들있을까 겁난다. 조선은 뭐 잘났더냐.
    • 하지만은 2011/02/28 21:34 #삭제답글

      조선이 잘나진 않았어도 지금의 일본은 자신들 역사를 심하게 미화하려고 하는건 못느끼나...
      붓이 아니라 칼로서 모든 일이 근본이 되었다는 것 부터가 야만이라는 것이다..
    • 사무라이? 2011/05/08 22:30 #삭제답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현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倭寇潰敗 2011/05/09 07:03 #삭제답글

      왜인들의 사무라이 처럼 밑도 끝도 없는 주장도 드물지요...

      언제나 사무라이 하면 떠오르는 고정관념은 만화 드래곤볼 베지터가 입은 전투복 같이 생긴 복장을 하고 긴칼을 차고 있는 무사집단을 떠올리며,

      니뽄의 강력한 무사전통을 이어간 것처럼 포장되어 있으나, 그 실상은 허무하기 그지 없다는 겁니다.

      그게 뭐냐면,

      페르시아 하면 키루스, 진제국 하면 진시황, 마케도니아 하면 알렉산드르, 카르타고 하면 한니발, 로마하면 율리우스 카이사르, 몽골제국 하면 칭기즈칸, 티무르제국 하면 티무르 , 인도 모굴제국하면 바부르, 한제국 하면 한무제, 오스만제국하면 메메트2세 ...

      강력한 무사집단으로 세계에 이름을 날렸던 제국들은 제국이름을 대면 딱 떠오르는 군사적으로 엄청난 위업을 달성했던 영웅이 한명씩 있게 마련인데,

      니뽄하면 떠오르는 영웅이 누가 있냐는 겁니다... 끽해야 도고 헤이하치로 라든가... 죄다 근대의 인물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칼찬 베지터의 모습을 했던 니뽄전국시대 인물들이 조선에 쳐들어 와서 결국 해군은 이순신 장군께 보급로 완전차단 당하고, 육군은 초반 동래와 용인에서 대승했지만, 대포로 무장한 조명 연합군에게 막혔지 않습니까?

      결국 니뽄의 무사들이 칼차고 외국으로 처들어가서 군사적인 성공을 거두어 본 일이 없다는 겁니다.

      니뽄의 군사적 업적은죄다 총과 대포로 싸운 근대전투

      그것도 니뽄해군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 입니다. 니뽄육군은 조선과 청에게만 강력한 우위를 보였을 뿐,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육군에게는 늘 열세였고

      (영화 콰일강의 다리나, 러일전쟁 때문에, 니뽄육군을 높이사는 사람이 있는데, 러일전쟁은 해군을 통한 승리였습니다. 니뽄육군의 경우 만주와 동남아의 험한 지형을 이용한 방어전을 했기 때문에, 연합군을 괴롭혔던것 뿐이지, 실제로는 1938년 8월20일 만주 할흐강 전투에서 만주에 갖고 있던 유리한 지형적 조건을 믿고 소련육군에게 도발하였다가 지형적으로 대단히 유리하였음에도 소련군에게 2만3천명의 사상피해를 입히고, 니뽄육군은 6만1천명의 피해를 입고, 9월15일 종전에 합의한 바 있습니다.

      이때 니뽄측에서는 소련쪽으로 진출하여 지상전을 건드리는것 보다는 미국쪽으로 진출하여 해상전을 벌이는게 승산있겠다는 계산하에 이후 니뽄군부는 태평양전쟁을 계획하게 됩니다.

      패전당시에도 니뽄군부는 만주지역의 험난한 지형을 믿고, 만주를 마치 만리장성이나 마지노선 처럼 생각해 손쉽게 소련군을 방어할 수 있다고 믿고, 태평양에서 올라오는 미군을 막기위해 오키나와 제주도로 이어지는 옥쇄작전을 계획하지만 또다른 국경인 만주지방은 따로 옥쇄작전 조차 계획하지 않았는데, 소련육군은 니뽄-만주육군을 겨우 1.5배의 병력을 이용해 12,000명의 사망자만 내고 만주를 접수하게 됩니다.

      그리고 소련의 마지막 니뽄진격계획이었던 1945년 8월 23일의 홋카이도 점령계획은 원폭에 따른 니뽄의 무조건 항복으로 실패하게 되지요. 니뽄이 러시아에게 홋카이도를 안빼앗긴건 원폭을 당한 덕분입니다. 10일만 더 옥쇄작전으로 버티었다면, 홋카이도는 지금 홋카이스크가 되었을 겁니다. 이런데도 북방4개섬을 돌려달라는 배짱을 보고 있으면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ㅋㅋㅋ),

      니뽄공군은 제공권을 미군에게 빼앗기고, 늘상 공습당하는 상황이었죠.

      결론은 니뽄 무사집단에 대한 이미지는 칼이 아닌 총을 들고 누런 군복을 입은채 함선에 타고 있는 이미지로 그려져야 합니다.

      이게 니뽄무사가 유명해질 수 있었던 군사적 근거가 되니까요


    핑백

    덧글

    • 못난이따후 2011/06/19 08:58 # 삭제 답글

      참 힘드시겠내요.. 그래도 굳굳히 하시는 모습 보니 보기 좋습니다.
    • 213 2011/06/20 12:06 # 삭제 답글

      고재팬 일본 명찰 다는방법좀요 알려줘요 제발
    • 지나가던사람 2011/06/23 19:27 # 삭제 답글

      키안습 150은 될려나몰라...
      미소년 사무라에에서 뿜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미소년ㅋㅋㅋㅋㅋ 2011/07/27 20:26 # 삭제 답글

      아 미소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소년 사무라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UberSoldat 2011/08/10 03:06 # 답글

      위쪽에 그림중에 이해가 잘 안가는게 있는데 왜 여자를 전부 벗긴후 포박해 거꾸로 매달아 피만 모두 뽑아 죽이나요? 남자를 거역했나요?
    • UberSoldat 2011/08/12 04:26 # 답글

    • ㅋㅋㅋㅋㅋ 2011/12/16 02:59 # 삭제 답글

      시현류는 무슨 동네 개싸움할때 흥분해서 바닥에 있는거 아무거나 집어들고 내리치는 양아치같네요ㅋㅋ
    • 미치겠다;; 2011/12/24 18:36 # 삭제 답글

      시현류 옛날 시골서 본 들깨타작하는거 생각나 ㅋㅋㅋㅋ
      바닥에 들깨가지묶음 놔두면 영락없이 들깨타작
    • 솔직히 2012/02/09 18:56 # 삭제 답글

      솔직히 이런거 따져봤자 바뀌는거 없고
      예전 조선 우리 조상들이 역경을 해쳐서 여기까지 오게 만들어 줬으면
      열심히 나라를 키워서 이길생각을 해야지 이리 주절주절 해봤자 바뀌는거 없음 과거는 과거고
    • ????? 2014/11/07 18:55 # 삭제

      바이츠 체커가 말했죠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자는 현재에도 맹목이 된다" 라고. 과거에대해 우리가 무관심하다면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사무라이 좋다고 하면서 우리나라 문화를 무시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일본이 위안부, 독도문제와 여러가지 역사왜곡 교과서를 만들고 우리나라를 자극하는데 이것을 그대로 무시해도 될까요?. 우리나라가 아무리 성장한다고해도 역사를 무시하고 살면 빈 껍대기에 불과합니다.
    • 파워코리아 2012/02/18 23:31 # 삭제 답글

      좋은 자료를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몰라서 MS워드파일로 귀중한 글을 저장하겠습니다.
      물론 본 페이지의 원본링크도 함께 저장하겠습니다.

      그리고 저 위에 왜국을 옹호하고 글쓴 님을 일까라고 욕해대는 미친 섀끼는 그냥 무시하세요.
      저 일빠섀끼 정신병자입니다.
    • 사무라이 재팬! 2012/05/12 14:17 # 삭제 답글

    • 2012/07/18 17:59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1000yen 2013/08/30 21:13 # 삭제 답글

      ㅎㅎ 카피사루? copy_saru 닉쓰던 인조이재팬사람 맞음?
    • a 2013/11/05 04:04 # 삭제 답글

      닌자도 그렇고 싸울아비 따라하고 우리쪽에서 수신사보내서 이것저것 많이배우고 철제기구 녹여서 제련하는방법몰라서 사람보내서 가르쳐놨더니 이제와서하는소리가
      우리 기술이다 이딴소리나 하고있고 우리한테 배운것을 왜 자기들이 시초라고 하는지
    • 2014/01/31 10:57 # 삭제 답글

      근데 이거 피규어 같은걸로 찍은거 같은데.
      배경이랑 인물이 붕떠있는거 같잖아
      게다가 그 할복하는건 피라고 되있는게 그 프라모델 만들때 연기표현할때 쓰는 그런거잖아
    • yj1026 2014/01/31 10:58 # 삭제 답글

      근데 이거 피규어 같은걸로 찍은거 같은데.
      배경이랑 인물이 붕떠있는거 같잖아
      게다가 그 할복하는건 피라고 되있는게 그 프라모델 만들때 연기표현할때 쓰는 그런거잖아
    • 누명을 벗는 방법 2014/04/05 19:21 # 삭제 답글

      1. 일본 사무라이들의 수양서인 '하가꾸레기끼가끼(葉隱聞書)' 중에서


      어느 가난한 홀아비 무사(武士)가 떡장수네 이웃집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떡집에 가서 놀던 무사의 어린 아들이 떡을 훔쳐 먹었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다.

      떡장수는 무사에게 떡값을 내라고 다그쳤다. 무사는 떡장수에게,


      "내 아들은 굶어죽을지언정 떡을 훔쳐먹을 짓은 절대로 할 아이가 아니오."


      하고 말했다. 그래도 떡장수는,


      "무슨 소리를 하는거요. 당신 아들이 떡을 훔쳐먹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시오."


      라고 하며 빨리 돈을 지불하라고 계속 따지자 무사는 순간적으로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들자 다짜고짜로 아들을 쓰러뜨리고는 아들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어

      아들이 떡을 훔쳐 먹지 않았음을 백일하에 입증해 보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끔찍한 광경에 놀라 부들부들 떨고 있는 떡장수를


      핏발 선 증오의 눈초리로 잔뜩 노려보던 무사는


      살려달라고 빌고있는 그에게 달겨들어 단칼에 목을 날려버렸다.

      떡장수의 목이 땅바닥에 수박덩이모양 구르는 것을 지켜본 순간

      무사는 정좌하고 앉은 채 두 사람을 죽인 그 칼을 들어 자신의 아랫배에 한일자를 북 그어버렸다.





      2. 조선시대 성리학자 윤상(尹詳)의 '필원잡기(筆苑雜記)' 중에서


      길가던 나그네가 어느 집에 하룻밤 묵게 되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나그네는 숭늉을 마시고 무심코 밖을 내다 보았다.

      주인 집 사내 아이가 구슬을 갖고 놀다가 떨어뜨렸다.

      마침 이것을 지켜보던 거위가 득달같이 달려와서는 그 구슬을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 얼마 뒤에 그 집안이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가보(家寶)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귀중한 구슬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온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다 뒤져도 구슬이 나타나지 않자 주인은 식객으로 묵고 있는 나그네에게 도둑 혐의를 뒤집어 씌우고 말았다.

      나그네는 그렇지 않다는 변명을 해보았지만 통하지 않았다.

      결국 나그네는 결박을 당하여 사랑채 기둥에 묶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거위가 구슬을 삼켰다는 말은 끝내 하지 않았다.


      하룻밤 동안을 그렇게 고생을 하고 난 나그네는 다음날 관가로 끌려가지 직전에 주인에게 거위의 똥을 잘 살펴보라고 일렀다.

      잃었던 구슬은 거위의 똥 속에서 나왔다. 주인이 의아해서 물었다.


      "무엇 때문에 거위가 구슬을 삼키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얘기를 않고 밤새 고생을 했소?"


      나그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어젯밤에 그 사실을 밝혔더라면 당신은 급한 김에 그 자리에서 거위의 배를 갈랐을 게 아니오.
      내가 하룻밤 고생한 덕으로 거위는 목숨을 건졌고 당신은 구슬을 찾게되지 않았소?"



      한국과 일본의 생명에 대한 인식의 차이...
    • 2015/04/16 02:03 # 삭제 답글

      똥센징 열폭wwwww 그렇고 미개한 민족에게 지배당한건 분명 우리 갓죠센이 방심했기 때문이겠죠 ㅠㅠ
    • 쪽들쪽들 낫토맨~ 2015/05/24 19:13 # 삭제

      그게 전부 왜구들 사육하고 길러준 백제와 가야 덕분~ 우월한 왜족이 백제에게 사육당하고 인종개량 당한것은 분명 갓본이 방심했기 때문이겠죠 ㅠㅠ
    • 미개 왜뽕 2017/01/21 02:05 # 삭제

      아직도 정신 못차린 왜뽕이 있네?
    • ㅇㅅㅇ 2015/08/11 17:25 # 삭제 답글

      우리나라 당시 서양인하고 찍은 사진보면 키차이가 거의 없음.
      그리고 열도는 뒷통수를 친거고
      당시 조선이 무능했던것도 사실이고
    • ㅇㅅㅇ 2015/08/11 17:26 # 삭제 답글

      우리나라 당시 서양인하고 찍은 사진보면 키차이가 거의 없음.
      그리고 열도는 뒷통수를 친거고
      당시 조선이 무능했던것도 사실이고
    • ㅇㅅㅇ 2015/08/11 17:26 # 삭제 답글

      우리나라 당시 서양인하고 찍은 사진보면 키차이가 거의 없음.
      그리고 열도는 뒷통수를 친거고
      당시 조선이 무능했던것도 사실이고
    • 2015/08/11 17:2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8/11 17:2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날조 왜곡 사무라이 2017/07/04 21:01 # 삭제 답글

      일본 사무라이가 개쓰레기였던 이유

      https://www.youtube.com/watch?v=i9p4ENOh4xk


      [쩌리뷰]일본 사무라이의 충격적인 실체(막장집단) Truth of Samurai

      https://www.youtube.com/watch?v=9yy0tvE7z-I


      사무라이 = 노예 착취 계급 or 범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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