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위안부


러일전쟁때 매독으로 전사한 일본군이 너무 많아서 일본정부가 일본녀를 데려와 위안소를 만든것이 기원





위안부 매춘부설의 실체


보통 왜인들의 날조발언



미국 고문서국이 1998년 비밀 해제한 1944년 전시정보국 심리작전반의 포로 심문 보고서.
이 보고서는 한국의 일본군위안부들이 ‘창녀’로 징발됐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최근 뉴스위크에 실린 “미 육군 기록에 일본군위안부는 창녀로 명시돼 있다”는 일본 극우학자 가세 히데아키의 기고문이 미군 기록을 왜곡한 것이라는 점을 보여 준여준다.
Early in May of 1942 Japanese agents arrived in Korea for the purpose of enlisting Korean girls for "comfort service" in newly conquered Japanese territories in Southeast Asia.
The nature of this "service" was not specified but it was assumed to be work connected with visiting the wounded in hospitals, rolling bandages, and generally making the soldiers happy.

The nature of this "service" was not specified but it was assumed to be work connected with visiting the wounded in hospitals, rolling bandages, and generally making the soldiers happy



취업사기로 팔려간 민간인들

'미 연방정부 기록보존소' 파일명 'Kunming-REG-OP-3'
"중국 쿤밍의 예난 군화중학교에 위치한 중국 군 본부에 25명의 한국인(여성 23명, 남성2명), 대만 남성 1명, 그리고 81명의 일본인(여성 4명, 남성 77명)이 전쟁포로로 잡혀 있었다. 한국인 포로와 일본인 포로의 태도와 증언은 다르며 대조적이다.

한국인 포로들은 모두 일본 부대로부터 도망 나왔으며, 중국 부대에 자발적으로 투항했다. 한국인들의 민족주의 정신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그들은 자발적으로 정보를 제공했다.

황남석 부인을 제외한 나머지 22명의 한국인 여성들은 모두 성노예(위안부)였다. 그들은 강압(compulsion), 그리고 사기(misrepresentation)에 의해 성노예가 되었다. 1943년 7월 한국을 출발한 15명의 여성들은 싱가포르에 있는 일본 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한국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왔다. 약 300여 명의 여성들이 비슷한 사기로 성노예로 모집되어 왔다."



인류 최초의 강간부대

일단 종군위안부의 기원은 러일전쟁때 일본병이 현지여성 강간하다 매독에 걸려 디지는 숫자가 전투로 인한 전사자보다 많아지니 왜국수뇌부가 내놓은 특단의 조치이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는 매독에 걸려 디지는 왜구 원숭이들이다.

매독의 메신져들이라고 불러도 될만한 업적이 아닐수 없다. 

이쯤에서 구일본 제국군을 강간마에 매독주입자로 폄하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

증거가 없는 데쓰!?

미안하지만 증거가 너무 많아서 뭘 써야할지 모르겠다.
우선 왜인에게는 데미지가 큰것부터 보도록하자.


일본 육군비밀문서(1938년 3월4일)에는 "부관부터 북지나(중국)방면군 및 중지나(중국)파견군'(副官ヨリ北支方面 軍及中支派遣軍) 참모장에게 보낸 비밀통지서에 위안부 모집은 파견군이 통제하도록 하고, 모집에 있어서 인물(업자)선정을 주도해 적절히 시도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또 모집할 경우에는 관계지방의 헌병, 경찰과 연대하여 비밀로 진행 하도록 육군성이 지시했다. 이 통첩은 육군성 병무국 병무과에서 기안해서 육군성 중앙에 의해 결제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결국 위안부 모집은 일본 정부가 배후에 있었던것이 밝혀진



취업사기의 기원은 일본 w



일본인의 강간본능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좆밥 일본군의 강간 사건을 정리하다 보면 이 판결문을 보게 된다.

이 보고서에는 1945년 7월 28일 종전 전에 재판이 시작되었다가 동년 8월28일에 판결이 내려졌다.

문)증인은 무엇을 겁내고 있었는가
답)저는 그들의 무기를 겁내고 있었다. 그들이 소지하고 있는 무기들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어떤 무기인가
답)검이었다.
문)피고인(시노하라)이 검을 소유하고 있었는가
답)예, 다른 사람들(사카이)도 가지고 있었다.
문)그들이 당신을 그 검으로 위협했는가
답)예, 나는 위협을 당했다.
문)그것에 대해 상세히 말해 준다면
답)시노하라는 제가 복종해야 된다고 말하면서 그렇지 않을 때는 나와 내가족의 삶이….
문)그가 한 말이 정확히 어떤 것인가
답)"너는 복종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물론이고 너의 가족들도 죽일 것이다"고 했다. 그때는 정말 무서웠다. 비슷한 일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저는 벌벌 떨었다.

어머니 라파에라의 심문에서는 시노하라는 검을 차고 있었는지는 모르나, 일본군 장교 사카이는 검을 차고 있었다고 답변했다

A는 커너 집에 연행된 뒤 첫 날 밤에 일본군 장교 사카이의 성적 욕구의 상대자가 되었다. 울면서 이를 거절했지만, 자신의 의사가 없는 강압적 행동에 굴복했다.

문)그들이 증인을 커너의 집에 데려갔을 때, 이 일본인(사카이)과 성관계를 가졌는가
답)예, 그렇다. 왜냐하면 시노하라가 나를 어떤 방으로 데려가서 복종해야 된다며 그렇지 않으면 목을 베어버리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문)증인은 그 일본인이 바라던 바에 동의를 했는가.
답)나는 울었고 그 사람이 나를 안았다. 나는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문)일본인과 이런 일들이 2월 한 달 동안 몇 번이나 있었가
답)당시 사카이는 수메이(Sumay)에 살고 있었고 항상 일주일에 두 번 왔다.

A는 처음에 시노하라가 어머니에게 커너집에 가면 시종을 들거나 일반적인 세탁 일을 하는 것으로 약속하고, 매달 20엔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사실과 달랐다. 허위에 넘어가 일본군 장교(사카이)의 성노예가 되었다. 그녀는 이것뿐 만 아니라, 요리와 세탁, 청소 등 주로 가사일도 맡아서 했다. 그러나 일을 한 대가로 매달 20엔을 받기로 약속한 것도 6개월 동안 고작 50엔밖에 받지 못했다. 그것도 시노하라가 아닌 사카이 일본장교가 들러 가끔 돈을 주었다. A의 답변 내용을 더 보자.

문)증인은 커너 집에서 6개월가량 일을 했는가. 맞는가
답)예, 6개월 맞다. 그리고, 그만 두었다.
문)그 집에서 일을 한 대개로 증인은 120엔을 받았는가
답)겨우 세 번 정도 돈을 받았다.
문)돈을 얼마 받았는가
답)10엔일 때도 있고, 20엔일 때도 있었다.
문)그들이 당신에게 지불하지 않은 금액은 얼마이지.
답)70엔이었다.

▶피고인 측의 반대심문 답변

문)거기에 있는 동안에 돈을 준 사람이 누구인가
답)사령관의 부관이었던 사카이가 가끔 돈을 주었는데 약 3번 정도이다.



이 사건은 무려 군이 개입한 민간인 브로커가 아닌가.
그간 일본원숭이들의 주장인즉 조선이나 일본의 포주가 황군을 따라다니며 창녀로 돈벌이를 했다는데쓰! 라고 했으나
그 날조가 산산히 깨어지는 것이다.

이 사건은 일본군과 민간인이 결탁해서 강제매춘을 위한 계획적인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일본군 장교가 현장에서 칼을 차고 있었다는 대목과 17살 된 특정 연령의 어린 소녀를 필요로 했다는 점, 그리고 어린 소녀가 성적인 욕구를 거부했는데도 강요했다는 점, 성관계를 목적으로 어린 소녀에게 돈을 지불했다는 점, 세탁 일 등 가사 일을 한다는 목적이었는데 사실과 다른 성노예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해서 민간인 시노하라는 군사재판에서 강제매춘을 목적으로 불법 연행한 사실과 그외 반역죄를 포함한 4개의 항목의 죄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가 징역15년 형으로 감형되었다. 일본군 장교 사카이 역시 전쟁 중에 괌을 떠났지만 불법적인 강제매춘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다.


구 왜군 원숭이들의 강간본능에 관한 흥미있는 신문기사를 소개한다.



jap comfort girl이라는 제목의 1944년 11월 30일 미국 <라운드업> 신문

중국 국민정부군이 중국 윈난성에 있는 살윈강 전선에서 일본군 요새들을 완전히 초토화 시켜 10명의 일본인과 조선인 여성들을 체포하여 숭산에 있는 전선에 여성들을 배에 태워 이송했다"고 설명했다.

이 신문은 숭산과 살윈전선에서 당시 국민정부군과 합류하고 미군장교가 덩위에(騰越)에서 일본군의 야만행위에 대한 증거를 제시했다. 그들은 한 조선인 여성을 산 채로 화약고에 넣어 "죽이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또 미군 통역자로 일한 중국인 학생은 만주에서 탈출한 뒤, 숭산에서 전해들은 비극적인 다섯 명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도 털어 놓았다. 그 여성들은 "24세에서 27세 된 조선인 농부의 딸이었다" 며 "옷차림은 싱가포르에서 산 것으로 추정되는 서양식 의복을 입고 있었다" 고 전했다.

이 여성들은 1944년 이른 봄, 일본인 관리자가 평양에 있는 집에 찾아 와서 'WAC'(비전투 지역인 싱가폴로 가는 조직) 조직을 홍보하면서 "여기에 참여할 것을 선전했다"며 이들은 일본군대가 있는 지역에서 군인들을 위안하고 병원에서 일하는 직업을 "알선해 주겠다" 며 각종 포스트를 보이고 "여성들을 모집했다"고 한다. 여성들은 돈이 필요했으며 그 중에 농부의 딸 이었던 한 여성은 아버지가 무릎을 다쳐 부채를 갚기 위해 "1500엔(당시 미화 12달러)에 팔렸다"고 설명했다.

그와 비슷한 18명의 조선인 여성들은 1942년 7월, 해상을 통해 싱가포르에 수송되었다. "여성들은 일본군의 승리와 동남아시아의 승리를 들었으며 싱가포르에 직송될 때만 해도 막연히 두렵기만 했는데, '랑군'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가기 시작했을 때는 운명을 직감하고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속아서 왔다)"고 신문은 전했다.

여성들은 숭산에 있는 일본군 부대에 도착했을 때, 24명의 여성들은 35세 된 일본인 매춘부 조장아래 배치되어 일본군의 성적인 처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취사, 세탁, 동굴청소 등 모든 일을 맡아서 했으며 돈 한 푼과 집으로부터 편지도 받지 못했다.

이 신문은 또한 "여성들은 중국 국부군이 숭산을 공격했을 때, 방공호 안에 있었으며 24명 가운데 14명이 폭격에 맞아 사망하고, 5명이 생포되었다. 그 중에 4명이 조선인 여성이었고, 1명은 일본인 여성이었다. 그들은 중국 국민정부군에 포로 되면 모두 고문을 당할 것이라는 일본군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있었다. 포로가 되어도 고향의 가족이 혹시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아 자신의 이름을 거짓으로 말했으며 여성들은 그 곳으로 온 후, 모두가 지난 2년 동안의 삶을 '일본대군주천황'에 대한 순진한 믿음으로 인생은 완전히 불행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고 전하고 있다. 


한편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기업들이 '기업위안소'를 운영해왔다는 사실을 입증할 자료도 공개됏다. 이 자료들은 1940년에 작성된 일본 육군성 정비국 전비과 문서와 대동아성 기획원 각의 결정문서, 당시 내무성에서 발간한 문서 등이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자료 가운데는 1939~40년의 일본신문 자료, 일본시민단체가 소장하고 있던 자료도 포함되어 있다.

1940년 육군성이 홋카이도(北海島)탄광주식회사 자료과장 앞으로 보낸 문서를 보면, "탄광 내 노무자들의 생산성 제고를 위해 조선과 중국의 창부를 유치할 것"이라는 귀절이 보인다.

정진성 교수는 "기업위안부들은 낮에는 노동을 했고 밤에는 '위안부'로 활동했으며, 노동자 1천 명당 20여명의 위안부가 동원됐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대략 1만5000명~2만 명 정도가 '기업위안부'로 동원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기업의 성노예 운영 사실 자체는 이미 공개된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사회적, 학문적 관심이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치우친 나머지 일본기업의 성노예 문제는 사실상 사각지대로 남아 왔다.

또 1942년, 1943년에 작성된 대동아성 기획원 문서에는 "노동자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화북지방에서 노동자들을 도입하되 이들을 위해 위안부를 수반해야 한다"는 각료회의 결정문이 들어있다.

정 교수는 "특히 대동아성의 문서에는 '세탁부 등의 명목으로 위안부들을 합법적으로 데려올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면서 "일본정부는 위안부를 동원하기 위해 앞장서 사기를 친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1939년 당시 일본의 오타루(小樽)지방의 한 신문에 실린 "기업에서 북해도청에 위안소 설치를 허가해 달라는 청원을 내 조만간 허가가 날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도 공개됐다.



매춘업자도 애국자 w
야수크니에 모아놓고 만세를 부르는 왜인들

일본의 B, C급 전범 연구자들은 합사된 이 사람이 1943년 9월부터 자카르타에서 유럽계 여성들에게 강제 매춘을 시킨 일본인으로 전범 및 위안부 문제 전문가인 간토가쿠인(關東學院)대 하야시 히로후미(林博文·현대사) 교수는 “위안소 경영자가 전쟁에 공헌했다고 정부가 당당히 인정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증거

1945년 4월 당시 중국 쿤밍에서 포로들을 조사했던 미 육군 조사보고서에는 일본 공장의 여직공을 뽑는다는 모집 공고를 보고 속아서 모집에 응했다는 당시 증언의 내용이 공개됐으며[8], 1937년 12월 21일 중국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관 소속 경찰관이 보낸 문서에 황군장병 위안부녀 도래에 관한 의뢰의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이 공개됐다.[9]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 미군이 미얀마에서 발견한 20여 명의 한국인 출신 '위안부'의 증언과 호레이스 언더우드 박사가 미국 정부에 보고한 일본군의 한국인 위안부 강제동원 기록, 네덜란드 정부문서기록보관소에 보관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자료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10]

일본군이 조선인 부녀자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근거로 위안부를 강제로 징집했음을 뒷받침해주는 판결문 기록이 발견되었다.

일본 요시미 교수가 1980년 위안부 관련 서류를 우연히 발견한 서류에는 중국 북부를 점령한 구 일본군의 참모가 위안소의 설치를 명령하는 내용 이 담겨 있었다.[11]

1956년에 중국에서 행해진 일본인 전범 재판으로 스즈키 히라쿠 중장의 자필진술서에서 조선인과 중국인 여성을 유괴해 위안부로 만들었다는 진술이 적혀 있다.

교토시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한 ‘전쟁의 진실을 말하는 모임’에서 1942년 싱가포르에서 육군 헌병대 통역관으로 근무했던 나가세 다카시(永瀨隆·89) 씨는 “조선 위안부들은 모두 군용선에 실려 왔다”고 증언하였다. 그리고 당시 상부 명령으로 한반도에서 온 여성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러 와 있던 그에게 그 여성들은 “싱가포르의 일본군 식당에서 일하기로 돼 있었는데, 이곳에 도착하자 (일본군이) 위안부를 할 것을 강요했다”라고 하면서 억울함을 토로했다고 증언했다.[12]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위안소를 운영했던 일본인(아오치 와시오, 1967년 야스쿠니에 합사)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전범재판소의 재판에서 "아오치는 1943년 6월 2일 군정감부로부터 매춘업소를 개설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의를 제기했지만 재차 지시를 받은 후 이를 수용했다"라고 군이 위안소 설치를 지시했음을 인정했다.[13]

일본 국립국회 도서관 보관되어 있는 극동 국제 군사 재판의 문서 중에 인도네시아 모어섬에서의 일본 육군중위에 대한 심문조서에는 현지 여성을 강제로 '위안부'로 만든 사실이 진술되어 있다.

최근, 일본군 위안부가 사용했던 콘돔이 발견되었다. [14]




8. "위안부 동원 강제성 있어" 미 정부 기밀문서 발견(조선일보)
9. "일제, 위안부 강제동원 영사관까지 개입했다" 당시 일본 문, 군대ㆍ경찰 역할분담 입증
10. 美의회보고서, 아베총리 위안부발언 공개반박 연합뉴스 2007-04-09.
11. 요시미 교수 “日 정부는 위안부 진실을 외면”, 2007년 03월 12일 경향신문.
12. 日軍 통역관 “위안부 군용선으로 강제연행”, 2007년 07월 09일 경향신문.
13. "일본군 위안소 설치 지시 판결문 발견"<교도> 연합뉴스 2007-04-11.
14. 2차 대전 일본군 콘돔 발견 - 중앙일보 2009년 6월 10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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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흥.

일본의 세뇌교육 정책 구경하기.

자신들의 치부 종군위안부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나?

(1)「종군」위안부라는 말은 전쟁중은 사용되지 않고, 이 말을 세상에 넓힌 것은 일본의 아사히 신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후술 하는 것으로 하고, 여기에서는 우선 「위안부」란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2)전쟁중에는 병사에 의한 강간이나 약탈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고, 일본군은 그 방지를 위해서 외지의 주둔지에 위안소를 설치했다. 거기서 매춘에 종사한 부녀자를 「위안부」라고 불렀다.위안부와는 즉 매춘부이다.
(3)역사를 읽을 때에 가슴 속 깊이 새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현대의 윤리관으로 과거의 사물을 판단해선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당시는 공창이 인정되고 있었던 시대여, 현대라도 인정되고 있는 나라는 있다.즉 위안소, 위안부의 존재 자체에는 아무런 위법성은 없고, 오히려 강간 범죄를 막기 위한 대책이었다.
(4)일본 대학 秦郁彦(Ikuhiko Hata)교수의 연구논문 「위안부 문제의 종결」에 의하면, 위안부로서 일하고 있던 여성의 합계는 약 2만명으로 추측되고 있다. 내역은 국내의 유곽등에서 응모한 일본인이 약 4할, 현지에서의 응모자가 약 3할, 조선인이 약 2할, 중국인이 약 1할이다. 그 대부분이 직업적인 매춘부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5)1992년에 文玉珠씨라고 하는 위안부였던 여성이 2년반에 걸치는 취업동안에 저금한 2만 6145엔의 반환 청구 소송을 일으켜 패소했지만, 당시의 육군 대장의 봉급은 연간에 6600엔 정도이며, 위안부는 상당한 돈벌이인 것도 판명되어 있다.
전쟁중의 버마에서 「종군위안부」를 해 2만 6145엔을 저금하고 있었다.그 중에서 5000엔을 조선의 친가에 송금했지만, 패전 후의 혼란으로 저금통장을 분실.저금은 1995년에 기한 마감이 되었다.


(6)위안부 문제에 있어서의 논의의 최대의 테마는, 위안부의 모집을 「군이 강제적으로 갔는지」에 있다. 민간 업자가 경영하는 위안소가 있어, 업자가 위안부를 모집해, 병사를 상대에게 매춘을 하고 있다면 범죄성은 없다. 그러나, 일본군이 조직적으로 조선인이나 중국인을 납치하고 위안소에 보내고 있었던 것이면, 전쟁 범죄라고 비난 당해도 어쩔 수 없다.
(7)위안소 문제의 발단이 된 것은, 1991년 8월 12일의 아사히 신문 조간에 게재된 「조선인 종군위안부를 한국의 단체가 청취」라고 하는 「스쿠프 기사」이다. 위안부였던 金学順씨가 「17세 때에 속아 위안부로 되고 매춘을 강제당했다」라고 증언해, 「한국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가 청취 작업을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8)여기로부터 「종군위안부」라고 하는 단어가 퍼지는 것이지만, 전쟁중은 「종군 간호사」는 존재해도 「종군위안부」는 존재하지 않았다. 종군 간호사는 훌륭한 군조직의 일원으로, 전장에도 보내진 것이지만, 위안소, 위안부는 민간의 조직이며, 전장에 갈 것도 없다. 즉, 군대의 관여를 이미지 짓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종군」이라고 하는 단어를 붙였던 것이다.
(9)한층 더 아사히 신문은, 1992년 1월 11 일자 조간의 일면 톱으로 「위안소 일본군관여를 나타내는 자료」라고 하는 기사를 게재.중앙 대학의 吉見義明(Yoshiaki Yoshimi)교수가 방위청 방위 연구소의 도서관으로부터, 일본군이 전장 부대용의 위안소를 설치하는 명령을 내렸다고 알리고 있다.


吉見義明(Yoshiaki Yoshimi) 교수가 공개한 일본군의 자료

(10)그 12일 후의 23 일자 석간에서는 야마구치현 노무 보고회 Shimonoseki 지부의 동원 부장이었던 吉田清次(Seiji Yoshida)씨가 위안부 사냥을 고백한 저서 「 나의 전쟁 범죄」로부터, Yoshida씨와 그 부하가, 한반도에서 많은 마을을 덮쳐, 950명에 달하는 여성을 강제 연행했다는 이야기를 칼럼에 인용하고 있다.
(11)이것들 아사히 신문의 캠페인에 의해서, 한국측으로부터의 비난이 잇따라, 외교 문제로 발전해, 일본 정부에의 압력이 강해졌다. 그 결과, 1993년 8월 4일에 河野洋平(Youhei Kouno) 내각 관방 장관(당시 )이 「위안부의 모집에 관헌등이 직접 이것에 가담한 적도 있었다」라고 인정해 전면적으로 사죄하는 내용의 담화(속칭·Kouno담화)를 발표하게 되었다. 이 강제 연행을 인정한 Kouno 담화가, 위안부 문제를 한층 더 부추겼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사히 신문은 일본의 좌익 신문에서 match pump인 기사를 쓰는 것으로 종종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match pump, i.e. lighting a match and then putting it out with a water pump.
스스로 방화한 화재에 스스로 물을 뿌리고, 소화한 것을 칭찬해 받으려고 하는 것.


1993년, 종군위안부 문제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河野洋平(Yohei Kouno) 관방장관


덧글

  • ........ 2010/11/20 16:41 # 삭제 답글

    더럽고 짜증나요.......토나올것같아. 조선사람들을 아예인간으로 안본거아냐. ....최소한 인간으로 대했으면 이런일은 없었다라고 발뺌은 하지 말았어야지. 더러워서 진짜 ... 니들은 인간도 아냐 니들인 인간이냐? 진짜 역겨워 아 토나와 니들 내가 공부해서 일본간다 기다려라.
  • ????? 2011/07/16 07:01 # 삭제 답글

    아오 짜증나네 ㅋㅋ 나도 일본가서 존나 패야지 ㅋㅋ
  • BOW 2011/07/26 14:31 # 삭제 답글

    근데 그런 미국이 일본을 눈가려줬던거.
  • 위안부 2012/03/22 14:35 # 삭제 답글

    벌써 유튜브에서는 일본인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매춘부로 공격하는 공작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더군요..

    http://www.youtube.com/watch?v=WDmR44TgD94&feature=related

    일본인들의 번역기 돌린 댓글 수준들이 정말 가관이라는..
  • 미국 위안부 추모비 2012/05/15 14:46 # 삭제 답글

    미국 뉴저지에 세워진 위안부 추모비에 대해 일본 국회의원들이 철거를 요구하러 방문하였다.

    하지만 일본 의원들은 미국 시 당국으로부터 망신만 당하였다.

    http://www.kjclub.com/kr/exchange/theme/read.php?uid=82550&fid=82550&thread=1000000&idx=1&page=5&tname=exc_board_65&number=60912
  • 보글이 2012/06/21 03:27 # 삭제 답글

    글잘보고가요... 이런글이많아야할텐데..
    일본인들은언제정신을차릴런지...
  • ㅠ..... 2012/06/23 16:37 # 삭제 답글

    1956년 관동군 제117 사단장 스즈키 히라쿠(鈴木啓久)중장 자필 진술서 는 어디서 볼수있나요?? 혹시 사진있으면 글에 첨가해주새요 ㅜㅜ글은 매우 잘보고갑니다~ 저도 나중에 역사공부 해보고싶네요 위안부피해자들께서 되도록 많이 살아게실때 일본의 진실된사과와 위안부에대하여 인정하는 일이 있길바랍니다
  • BOW 2014/03/31 01:48 # 삭제 답글

    한국은 일제시기에 근대 자본주의를 가장 선진적인 형태로 발전시켰다.
    식민지 초기에 일제는 근대적 관료국가를 구축함으로써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고, 토지조사사업의 실시를 통해 근대적 소유관계를 확립하였다
  • BOW 2014/03/31 01:48 # 삭제 답글

    한국은 일제시기에 근대 자본주의를 가장 선진적인 형태로 발전시켰다.
    식민지 초기에 일제는 근대적 관료국가를 구축함으로써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고, 토지조사사업의 실시를 통해 근대적 소유관계를 확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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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초기에 일제는 근대적 관료국가를 구축함으로써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고, 토지조사사업의 실시를 통해 근대적 소유관계를 확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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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일제시기에 근대 자본주의를 가장 선진적인 형태로 발전시켰다.
    식민지 초기에 일제는 근대적 관료국가를 구축함으로써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고, 토지조사사업의 실시를 통해 근대적 소유관계를 확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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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일제시기에 근대 자본주의를 가장 선진적인 형태로 발전시켰다.
    식민지 초기에 일제는 근대적 관료국가를 구축함으로써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고, 토지조사사업의 실시를 통해 근대적 소유관계를 확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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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일제시기에 근대 자본주의를 가장 선진적인 형태로 발전시켰다.
    식민지 초기에 일제는 근대적 관료국가를 구축함으로써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고, 토지조사사업의 실시를 통해 근대적 소유관계를 확립하였다
  • BOW 2014/04/04 14:41 # 삭제

    짜증나네요! ! 제발 저를사칭좀하지마시죠?!
  • 븅신 ㅋㅋㅋ 2014/05/23 08:22 # 삭제

    니하는 꼬라지 봐라 ㅋㅋㅋㅋㅋ 글도배에다가 닉은 사칭이고
    초등학생이냐? ㅋㅋㅋㅋ
  • 미국의 위안부 인식 2014/04/26 22:50 # 삭제 답글

    오바마 "위안부문제 끔찍·지독·쇼킹한 인권침해"

    공동회견서 고강도 발언…"위안부 피해자 목소리 듣고 존중해야"

    "아베, 과거사 솔직 이해 필요성 인식할 것"…日에 문제해결 우회압박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06880198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 지도자들의 역사 인식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위안부 문제에 대해)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하고 분명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끔찍하고 매우 지독한 인권침해 문제라고 생각한다.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인권을 침해당한 것은 전쟁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쇼킹한 일이었다"고 강조했다.


    미국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 직후 제3국인 일본이 얽혀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끔찍하다, 지독하다, 쇼킹하다(terrible, egregious, shocking)"는 강도높은 표현을 써가며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중략..


    오바마 대통령은 특히 "아베 총리와 일본 국민들도 과거에 대해 보다 솔직하게, 그리고 공정하게 이해를 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며 아베의 역사 인식 변화와 위안부 문제에 해결책 마련을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오바마 "위안부는 지독한 인권 침해"…日 당혹


    http://news.nate.com/view/20140426n12716?mid=n0204
  • 네덜란드의 증언! 2014/09/27 16:05 # 삭제 답글

    <일본군 성(性)노예 피해자들>

    이 단편영화는 제5회 서울세계단편영화제 수상작으로 네덜란드 Jan de Ruijter 감독의 작품입니다.


    Victims of the Japanese s e x slavery 일본군 성(性)노예 피해자들 1부

    http://www.youtube.com/watch?v=2RxqmyjISyQ


    Victims of the Japanese s e x slavery 일본군 성(性)노예 피해자들 2부

    http://www.youtube.com/watch?v=EBbrgo0gqVU


    -서양의 일본군 성(性)노예 피해자들의 고백-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던 네덜란드 여성 300~400여명이 일본군에 의해 납치돼 강제 성노예가 됨.
  • 숨길 수 없는 진실 2014/11/02 18:45 # 삭제 답글

    美합동조사단 이미 "軍위안부, 조직적 프로그램" 결론

    美 합동조사단 이미 "軍위안부, 조직적 프로그램" 결론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 독일 나치 전범 및 일본전범기록 관계부처 합동조사단(IWG)은 2006년 '일본전범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식민지 여성과 소녀들의 납치(강제연행)를 고발하는 일부 문서들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미국 국립문서관리기록청)

    2000년 관련 기관에 대대적 자료조사 지시…일부 '납치'자료 발굴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 일본의 전쟁범죄 기록을 조사해온 미국 연방정부 합동조사단이 이미 2000년대 초 군대 위안부("comfort women")가 일본의 조직적 성 노예 프로그램이라고 결론짓고 각 정부기관에 관련자료 발굴지침을 하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0&sid2=267&oid=001&aid=0006824679&viewType=pc

  • 위안부 강제동원 2014/11/02 19:31 # 삭제 답글

    "日軍의 위안부 강제동원, 미공개 내용 곧 발표"

    [美하원 2007년 '위안부 결의안' 산파役 래리 닉시 인터뷰]

    - 日주장 반박
    "32년전 요시다 증언 허위라며 美결의안이 잘못됐다고?
    우린 애초에 요시다 증언을 결의안에 참작하지도 않았다"

    중략..

    닉시 연구원은 위안부 강제 동원과 관련한 미공개 내용을 곧 발표할 계획이다. 그는 "강제적 동원 과정에 대해 조사해온 내용을 글로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조지타운대에서 외교학 석사,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닉시 연구원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미연구소(ICAS) 선임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30/2014093000370.html

  • 일본군 성노예 문제 2015/05/31 17:47 # 삭제 답글

    위안부에 대한 외국인들의 반응 GIRLS' REACTION TO S E XUAL SLAVERY IN KOREAN HISTORY

    https://www.youtube.com/watch?v=kiVYiHdnd40&feature=youtu.be
  • 미움받는 일본~ 2015/10/11 21:33 # 삭제 답글

    네덜란드서도 20년 간 "日 과거사 사죄하라!"

    잘못된 과거사를 외면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네덜란드에서도 성토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요.

    네덜란드에서는 우리나라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같은 모임이 2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sid1=&oid=052&aid=0000648629
  • 세계 왕따 일본! 2015/12/11 18:54 # 삭제 답글

    국제사회의 일본 비판

    <미국 하원 본회의의 위안부 결의안>
    일본 정부에게 위안부 존재를 인정하고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는 위안부 관련 결의안(House Resolution 121) H. Res. 759 은 2001년 처음 미국 하원에 소개되었고 2006년에 미 하원 국제관계 위원회에서 통과되었다. 일본계 하원의원을 포함, 공화당과 민주당 통틀어 50명이 넘는 의원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 결의안은 일본정부의 강한 로비활동에도 끝내는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정식 통과하였다.

    <각국의 위안부 결의안>
    2007년 11월 8일, 네덜란드 하원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캐나다에서도 같은 해 11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책임을 촉구하는 위안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으며, 12월 13일에는 유럽의회가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2008년 3월 11일에는 필리핀 하원이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유엔 인권이사회 보고서>
    위안부의 존재에 대한 일본 일각의 부정, 비판은 유엔 문제로까지 확산되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2008년 10월 30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하여 일본이 위안부 동원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 보상하여 피해자의 존엄성을 회복시켜야 하며, 이를 학생과 대중에게 알리고 부인하지 말 것을 촉구하였다.

    <참고>
    일본군 성노예 규탄 결의안 통과국 명단 : 미국, 유럽의회, 캐나다, 네덜란드, 호주, 필리핀, 대만 등등..
    일본인 납북자 규탄 결의안 통과국 명단 : 0개국..

    과연 세계에 미움받는 일본.. www


    http://blog.naver.com/gocch/140192778947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전 세계에서 모두 115건이 채택된 것으로 조사됐다.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지난 7일, “우리나라는 61건의 결의안을, 미국과 호주 등 8개국 중앙, 지방의회는 모두 54건의 결의안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출처] [C채널뉴스] '위안부 해결 결의안' 전세계 115건, 일본에서도 40건 채택|작성자 C채널
  • 세계 왕따 쪽바리! 2017/09/13 19:50 # 삭제

    [C채널 뉴스] ‘위안부 해결 결의안’ 전세계 115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전 세계에서 모두 115건이 채택된 것으로 조사됐다.

    http://www.cchannel.com/news/news_article?news_seq=60502
  • 미국의 위안부 인식 2017/08/03 19:13 # 삭제 답글

    美하원 '위안부 결의안' 10주년 "日, 역사 직시해야"

    로이스 외교위원장 "독도는 한국 땅" 언급도

    미국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규탄' 결의안 채택 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27일(현지시간) 미 현지에서 열렸다.

    미 하원은 지난 2007년 7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함께 미래세대에 대한 관련 역사교육을 요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2863928
  • 슈뢰더의 일침! 2017/09/13 19:51 # 삭제 답글

    소녀상 바라보는 슈뢰더 전 독일 총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421&aid=0002938317


    [경향포토]슈뢰더 전총리 나눔의 집 방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32&aid=0002817603


    방한한 슈뢰더 전 獨총리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 찾는 이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77&aid=0004072857


    슈뢰더 전 총리 "일본, 전쟁폭력 사과 용기 안 내 안타깝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538164


    슈뢰더 독일 전 총리 "위안부 피해할머니 안네 프랑크 못잖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5&aid=0002753554


    [영상] 슈뢰더 “위안부 피해자들 고통, 홀로코스트와 다름없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379293


    슈뢰더 前총리 “위안부 할머니, 노벨평화상후보 충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21&aid=0002938453


    슈뢰더 "일본의 역사적 잘못 후세대가 통감하고 책임져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5&aid=0002753233


    '위안부 恨' 듣고 눈물 글썽인 슈뢰더 "일본, 책임의식 없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3312723


    슈뢰더 전 독일 총리 “일본, 위안부 피해 인정하고 사죄하라”

    http://www.gipress.com/sub_read.html?uid=27644&section=sc7&section2=%B1%A4%B8%ED
  • 슈뢰더의 일침! 2017/09/13 21:07 # 삭제

    文대통령, 슈뢰더 前총리 접견…"과거사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541159


    文 대통령, 슈뢰더 前 총리 접견…"과거사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5&aid=0000567720


    文대통령, 슈뢰더 前총리 접견…"과거사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종합)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541254
  • 악마 가해국 일본! 2017/10/20 19:45 # 삭제 답글

    日 탄광에까지 조선여성 동원…“산업위안부 4~5천 명 추정”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56&aid=0010513465
  • 양심적인 일본인! 2017/10/20 20:25 # 삭제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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