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근대화론 (혐한, 수구꼴통, 뉴라이트, 식민빠)


식민지를 근대화 시켰다고 주장하는 민족이 있다.







누가 누굴 근대화시켰다는건지 원..

타력본원. 
스스로 자립할수 없는 주제에 어째서 '식근론'을 외치는가?!

식근론은 근대화 댓가로 식민지 사죄와 배상을 죽어도 하지 않겠다는 일본 우익의 대표적인 근거다.
우익들 눈에는 한국이 만만해 보이니까 할 이유도 없고 죽어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본이 미군정에 풀려나 해방되었을때 남북은 625 전쟁통이라 일제 과거청산 시기를 놓쳤다.
일부 한국의 논객들이 식근론자들에게 패하는 이유는 한국의 관점에서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친일파가 만든 초창기 정부였던 만큼 말빨 자체가 먹히지 않고 우습게 들리는 건 당연하다.
세계 어딜가나 약자의 발언은 힘이 없다. 외교력이 강하다는 것은 군사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한국이 강하면 사죄하지 말라고해도 달려와 조공하고 사죄하게 된다. 그것이 세상돌아가는 이치다.

이세상엔 두가지 나라들이 있다.
육식성 나라(미,중,영,프,북,독,)와 초식성 나라(한국,일본,사우디,태국,대만,소말리아,리비아,외 다수)

초식성 동물이 육식성 동물을 이길수는 없다.
초식성끼리의 싸움은 도토리 키재기로 주인장들 입장에선 사육장 토끼들이 투닥거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식근론에 마주치면 초식계 한국이 아닌 육식계가 되는 남북 공동 관점에서 보라는 것이다.
왜인은 두려워한다. 그래서 언제나 미국이 대신 북한을 쳐 한반도에 다시한번 전쟁이 나길 바라고 있다.
친북계 인사가 대통령이 될때마다 일본이나 매국노들은 태생적으로 두려움을 느껴 발광하게 된다.

이것이 왜인들의 본심. 타력본원.
일본을 근대화 선진화 시키는 것은 언제나 한반도였다고 고백.

쓰레기에게 사죄를 바라지 마라.
다만 자각하라.

 극우 일본 정치가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것과 하나도 틀린점이 없다는 사실을 경계해야한다.
 분단된 현실을 이용해 일제를 찬양하며 남북을 비방하는데 이용하므로 독도영유권 및 강제징용 문제에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다.


식민지를 근대화 시킨다??

그러면 일본을 식민지로 만들어

근대화되는 기분이 어떤지 느껴주게 하면 되는 것이다.




쪽바리는 자국의 안위를 위해 남북통일을 극도로 반대하는 세력.

그 똥딱지를 긁어먹는 친일파들에게 남북통일은 재앙이요. 엑소더스다.

그들이 미쳐날뛴다는 것은 그만큼 통일도 가까워졌다는 반증.




예문)2011. 일본대지진시 나타난 한국인 흉내 쪽바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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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바리들이 남북통일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일본 우익사이트에서 퍼왔다.

近々、朝鮮半島は統一される、その時日本の隣に巨大な軍事大国が出現する。
곧 한반도 통일되는 그 때 일본의 옆에 거대한 군사 대국이 출현한다.

南北が統一されると、正規兵180万、予備兵力900万(自衛隊は正規兵22万、予備4万)が一斉に牙をむいて襲ってくる。 남북이 통일되면 정규 병 180 만, 예비 병력 900 만 (자위대는 정규 병 22 만 예비 4 만)이 일제히 이빨을 드러내 덮쳐 온다.

南北とも極端な反日教育で洗脳されている、更に、米韓同盟があるので米国は日本を一切護らない。
 남북 모두 극단적인 반일 교육으로 세뇌되어, 더욱, 한미 동맹이 때문에 미국은 일본을 절대로 지키지 않는다.

南北朝鮮が統一されると、莫大な費用と混乱が発生する。
 남북한이 통일되면 막대한 비용과 혼란이 발생한다.
 
この大混乱を収めるには、お得意の反日カードを切ってくる。
이 위력을 거두려면, 단골의 반일 카드를 잘라 온다.

南北に分断されたのは、日本の責任だ、日本は50~100兆円の賠償金を支払え。
 남북으로 분단된 것은 일본의 책임이다, 일본은 50 ~ 100 조원의 배상금을 지불.

と巨大な軍事力を背景に脅迫してくる。
거대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협박 해 온다.

統一朝鮮軍は、北朝鮮製の核ミサイルのほかに、東京まで届く誤差3メートルを誇る、韓国製の巡航ミサイルがあり、これで脅しあげられる。
통일 조선군은 북한제 핵 미사일 이외에 도쿄까지 닿는 오차 3 미터를 자랑하는 국산 순항 미사일이 있고 이것에 위협들 수있다.

日本は国内に在日と反日左翼を抱えているために、国体はきわめて脆弱で、統一朝鮮の植民地支配を受けるしかない。
일본은 국내 재일과 반일 좌익을 안고 있기 때문에, 국체는 매우 취약 통일 조선의 식민지 지배를받을 수밖에 없다.

日本以外の国々は、20世紀中に、隣国による支配の惨めさと、社会主義の愚かさを学習したが、日本は21世紀になって
일본 이외의 나라들은 20 세기 동안, 이웃에 의한 지배의 비참함과 사회주의의 어리석음을 학습하고, 일본은 21 세기가되어

身をもって学習させられる。
몸으로 학습하게된다.

統一朝鮮は、民族の悲願である日本を支配下におくことで、南北の混乱を収めることができ、日本人の預金資産1500兆円と、
 통일 한국은 민족의 비원이다 일본 지배하에 두는 것으로, 남북의 혼란을 거둘 수, 일본인의 예금 자산 1500 조엔,

日本の科学技術が丸ごと手に入るのだ。
 일본의 과학 기술이 통째로 입수했다.

更に、サムライや忍者、茶道や華道や剣道、皇室などの日本の文化も、彼らの望む様に全て朝鮮起源の文化にすることが出来る。
또한, 사무라이와 닌자, 다도와 꽃꽂이와 검도, 황실 등 일본의 문화, 그들이 바라는 것처럼 모든 조선 기원의 문화가 될 수있다.

まさに半島の隣にジパング(黄金の国)が無防備にパンティーを脱ぎ捨てて、朝鮮民族の性奴隷になるのを待っているのだ
바로 반도의 옆에를 보내주 개인 에이전트 링크 Black (황금의 나라)가 무방비로 팬티를 벗어 버리고, 우리 민족의 성 노​​예가되는 것을 기다리고있는 것이다



일본 극우들도 알듯이 남북이 평화적으로 통일하면

일제시대 배상금 만으로도 통일비용은 얼마든지 마련할수 있다.

통일세가 어마어마하니까 통일은 하지말자고?? 개 풀뜻어먹는 소리일뿐.w

분단비용과 군대끌려가는 정신적 피해보상부터 해보고 말해볼래?



[韓國/정치] - 친일 뉴라이트연합,국가인권위원회 점령.

뉴라이트 연합은 한국의 보수 세력이 정당성을 잃을 수밖에 없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보고
있다.보수는 오히려 진보 세력보다 더 확고한 역사의식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한국의 보수는
친일파들로 이루어져,모든 반대 세력을 빨갱이로 몰고 가는 매국노 컬트 집단이다.



한마디로 한국사를 국밥에 말아먹자는 이야기.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단일민족 허구성, 다문화를 정착시키고 일본을 본받자는 것이다.

이정부 들어서 독도 영유권을 노골화시키는 일본. 그리고 침묵하는 친일매국노 보수들.

why?



일본을 본받아 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가자??


이완용도 똑같은 말을 했다.


매국노 이완용 상소문

"... 대일본제국이 우리를 대하는 진심을 살펴보건대 갑오년(1894년)이나 갑신년(1884년)이나 그들의 마음이 달라지지 않았고 방침이 일정하여 시종 변함이 없었습니다.

‘우리 한국의 사직과 백성을 보호해준다.’, ‘동아세아 전반의 평화를 보장한다.’고 하는 바 그들의 믿음성이 든든하고 어진 마음이 넘쳐나고 있은 것은 바로 일본 천황 폐하가 우리 황제 폐하와 태자 전하에게 예를 갖추는 두터운 은덕과 은애(恩愛)가 형철한 데서 알 수 있습니다...
...(중략)...
대일본국 천황 폐하가 그처럼 성의를 다하니 우리나라 사직은 반드시 하늘땅과 같이 무궁한 영광이 있게 될 것이며 우리 백성들은 반드시 함께 교화되어 날로 발전시키는 총애가 있을 것입니다.

두 날개가 몸을 떨쳐 일어나게 하고 두 바퀴가 수레를 떠받치고 있으니 나라의 권세가 혹 떨치지 못하고 동아세아의 시국 형편이 담보하지 못하게 될 걱정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 융희 3년, 이완용 내각이 순종황제에게 올린 상소 중에서 (순종실록 1909년 12월 4일 기사) -

이완용 자손들 잘 먹고 잘 살고 있지요.  친일판사 권성 같은 무뇌충들때문에 친일매국노 부부가 냄새나는 가랑이에서 싸지른 개종자들이 조상 땅 찾겠다고 벌떼같이 소송냈고 상당수 승소한 걸로 압니다. 이완용이 직계는 아니지만 이완용 질손인 이병도(친일사학자)의 손자인 이장무는 얼마전까지 서울대 총장, 이건무는 문화재청장 하고 있었잖습니까 ? 역시 같은 우봉 이가인 이영훈이는 대표적인 뉴라이트 교수로 역시 서울대에서 일제시대 착취는 없었고 조선이 발전했느니 정신대는 일본정부와 상관없는 자발적 창녀니 멍멍 짖어대며 국민 세금 축내고 있습니다. ( 서울대같은 국립대 운영비와 교수 월급 상당수는 국민세금에서 나가겠죠. ) 역시 더러운 피는 못 속이나 봅니다.

 

무엇보다

섬나라와 엮이면 재수가 없다는 것이다.

가야도, 백제도, 조선도, 대한제국도..

잘나가던 나라들이 여지없이 처참하게 망하게 된다.

 



일제의 만행에 충격받은 백성들은 다시는 외세에 억압받지
 

않는 나라를 이루겠다는 독립운동을 일으켰고
 

수많은 애국열사들이 일제의 총칼에 목숨을 잃었다.


일제는 한마디로 강도다.


남북이 하나이던 그 시절


가르침이 될만한 선생님의 글이 있어 소개한다.

 

                           

단재 신채호 = 조선혁명선언- 의열단 선언문

 

1.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國號)를 없이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조건을 박탈하였다. 경제의 생명인 산림, 천택(川澤), 철도, 광산, 어장 … 내지 소()공업 원료까지 다 빼앗아 일절의 생산기능을 칼로 베이며 도끼로 끊고, 토지세, 가옥세, 인구세, 가축세, 백일(百一), 지방세, 주초(酒草), 비료세, 종자세, 영업세, 청결세, 소득세 … 기타 각종 잡세가 날로 증가하여 혈액을 있는 대로 다 빨아가고, 웬만한 상업가들은 일본의 제조품을 조선인에게 매개하는 중간인이 되어 차차 자본 집중의 원칙하에서 멸망할 뿐이오, 대다수 인민 곧 일반농민들은 피땀을 흘리어 토지를 갈아, 그 종년(終年) 소득으로 일신과 처자의 호구거리도 남기지 못하고, 우리를 잡아 먹으려는 일본 강도에게 진공하여 그 살을 찌워주는 영세의 우마(牛馬)가 될 뿐이오, 내종(乃終)에는 그 우마의 생활도 못하게 일본 이민의 수입(輸入)이 연년(年年) 고도의 속율(速率)로 증가하여 '딸깍발이' 등쌀에 우리 민족은 발 디딜 땅이 없어 산으로 물로 서간도로 북간도로 시베리아의 황야로 몰리어 가 아귀(餓鬼)부터 류귀(流鬼)가 될 뿐이며, 강도 일본이 헌병정치, 경찰정치를 여행(勵行)하여, 우리 민족이 촌보(寸步)의 행동도 임의로 못하고, 언론, 출판, 결사(結社), 집회의 일체 자유가 없어 고통과 회한이 있으면 벙어리의 가슴이나 만질 뿐이오, 행복과 자유의 세계에는 눈뜬 소경이 되고, 자녀를 나면 '일어를 국어라, 일문을 국문이라'하는 노예양성소-학교로 보내고 조선 사람으로 혹 조선사를 읽게 된다 하면 '단군을 무()하여 소잔오존(素盞嗚尊)의 형제'라 하며 '삼한시대 한강 이남을 일본 영지'라고 일본놈들이 적은대로 읽게 되며, 신문이나 잡지를 본다하면 강도(强盜)정치를 찬미하는 반()일본화한 노예적 문자뿐이며, 똑똑한 자제가난다 하면 환경의 압박에서 염세 절망의 타락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음모사건'의 명칭하에 감옥에 구유(拘留)되어 주리, 칼 씌우기 차꼬 채우기, 단금질, 채찍질, 전기(電氣), 바늘로 손톱 밑과 발톱 밑을 쑤시는, 수족을 달아매는, 콧구멍에 물붓는, 생식기에 심지를 박는 모든 악형, 곧 야만 전제국의 형률(刑律)사전에도 없는 갖은 악형을 다 당하고 죽거나, 요행히 살아서 옥문을 나온대야 종신 불구의 폐질자(廢疾者)가 될 뿐이라.
그렇지 않을지라도 발명 창작의 본능은 생활의 곤란에서 단절(斷絶)하며, 진취활발의 기상은 경우의 압박에서 소멸되어 '찍도 짹도' 못하게 각 방면의 속박, 편태(鞭笞), 구박, 압제를 받아 환해(環海) 삼천리가 일개 대감옥이 되어 우리 민족은 아주 작은 인류위 자각을 잃을 뿐 아니라, 곧 자동적 본능까지 잃어 노예부터 기계가 되어 강도 수중의 사용품이 되고 말 뿐이며, 강도 일본이 우리의 생명을 초개로 보아 을미 이후 십삼도의 의병나던 각 지방에서 일본군대의 행한 폭행도 이루 다 적을 수 없거니와, 즉 최근 삼일 운동 이후 수원, 선천 … 등의 국내 각지부터 북간도, 서간도, 노령, 연해주 각처까지 도처에 주민을 도륙(屠戮)한다, 촌락을 소화(燒火)한다, 재산을 약탈한다, 부녀를 오욕(汚辱)한다, 목을 끊는다, 산 채로 묻는다, 불에 사른다, 혹 인신을 두 동가리 세 동가리로 내어 죽인다, 아동을 악형한다, 부녀의 생식기를 파괴한다 하여 할 수 있는데까지 참혹한 수단을 써서 공포와 전율로 우리 민족을 압박하여 인간을 '산 송장'으로 만들려 한는도다
.
이상의 사실에 거하여 우리는 일본 강도정치 곧 이족
(異族) 통치가 우리 조선민족 생존의 적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우리는 혁명수단으로 우리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을 살벌(殺伐)함이 곧 우리의 정당한 수단임을 선언하노라.

 

2. 내정독립이나 참정권이나 자치를 운동하는 자가 누구이냐?
너희들이 '동양평화', '한국독립보전' 등을 담보한 맹약이 묵도 마르지 아니하여 삼천리 강토를 집어먹던 역사를 잊었느냐? '조선인민 생명 재산 자유 보호', '조선인민 행복증진'등을 신명(申明)한 선언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여 이천만의 생명이 지옥에 빠지던 실제를 못보느냐? 삼일운동 이후에 강도 일본이 또 우리의 독립운동을 완화시키려고 송병준, 민원식 등 매국노 한둘을 시키어 이따위 광론을 부름이니, 이에 부화하는 자는 맹인이 아니면 어찌 간적(奸賊)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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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혹 강도 일본이 과연 막대한 도량이 있어 개연(慨然)히 차등의 요구를 허락한다 하자, 소위 내정독립을 찾고 각종 이권을 찾지 못하면 조선민족은 일반의 아귀(餓鬼)가 될 뿐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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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정권은 획득한다 하자, 자국의 무산계급의 혈액까지 착취하는 자본주의 강도국의 식민지 인민이 되어 몇몇 노예대의사(奴隸代議士)의 선출로 어찌 아사의 화를 구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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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를 얻는다 하자, 그 가종의 자치임을 물문(勿問)하고 일본이 그 강도적 침략주의의 간판인 '제국'이란 명칭이 존재한 이상에는 그 부속하에 있는 조선인민이 어찌 구구한 자치의 허명(虛名)으로써 민족의 생존을 유지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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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혹 강도 일본이 돌연히 불보살이 되어 일조(一朝)에 총독부를 철폐하고 각종 이권을 다 우리에게 환부(還付)하며, 내정외교를 다 우리의 자유에 맡기고 일본의 군대와 경찰을 일시에 철환(撤還)하며, 일본의 이주민을 일시에 소환하고 다만 허명의 종주권만 가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만일 과거의 기억이 전멸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일본을 종주국으로 봉대(奉戴)한다 함이 '치욕'이란 명사를 아는 인류로는 못하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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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강도 정치하에서 문화운동을 부르는 자는 누구이냐? 문화는 산업과 문물의 발달한 총적(總積)을 가리키는 명사니, 경제약탈의 제도하에서 생존권이 박탈된 민족은 '그 종족의 보전'도 의문이거든 하물며 문화발전의 가능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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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망한 인도족, 유태족도 문화가 있다 하지만 일()은 금전의 힘으로 그 선조의 종교적 유업을 계속함이며, ()은 그 토지의 넓음과 인구의 많음으로 상고(上古)의 자유 발달한 그 여택(餘澤)을 지키고 보존함이니, 어디 모기와 등에같이, 승냥이와 이리같이 인혈을 빨다가 골수까지 깨무는 강도 일본의 입에 물린 조선같은 데서 문화를 발전 혹 보존한 전례가 있더냐? 검열, 압수 모든 압박 중에 몇몇 신문잡지를 가지고 '문화운동'의 목탁으로 자오(自嗚)하며, 강도의 비위에 거스르지 아니할 만한 언론이나 주창하여 이것을 문화발전의 과정으로 본다 하면 그 문화발전이 도리어 조선의 불행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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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이유에 거하여 우리는 우리의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과 타협하려는 자(내정독립, 자치, 참정권논자)나 강도 정치하에서 기생하려는 주의를 가진 자(문화운동자)나 다 우리의 적임을 선언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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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도 일본의 구축(驅逐)을 주장하는 가운데 또 아래와 같은 논자들이 있으니 제일은 외교론이다. 이조 오백년 문약(文弱)정치가 '외교'로써 호국의 장책(長策)을 삼아 더욱 그 말기에 더욱 심하여 갑신 이래 유신당, 수구당의 성쇠가 거의 외원(外援)의 유무에서 판결되었다. 위정자의 정책은 오직 갑국(甲國)을 끌어들여 을국(乙國)을 제함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그 의존의 습성이 일반 정치 사회에 전염되었다. 즉 갑오, 갑신 양 전역에 일본이 누십만의 생명과 누억만의 재산을 희생하여 청, 노 양국을 물리고 조선에 대하여 강도적 침략주의를 관철하려 하는데 우리 조선의 '조국을 사랑한다, 민족을 건지려 한다'하는 이들은 일검(一劍) 일탄(一彈)을 우매하고 탐욕스러우며 난폭한 한 관리나 국적(國賊)에게 던지지 못하고 공함(公函)이나 열국(列國) 공관에 던지며 장서(長書)나 일본 정부에 보내어 국세의 고약(孤弱)을 애소하여 국가존망, 민족사활의 대문제를 외국인, 심지어 적국인이 처분·결정하기만 기다리었도다. 그래서 '을사조약' '경술합병' '조선'이란 이름이 생긴 뒤 몇천 년만의 처음 당하던 치욕에 조선민족의 분노적 표시가 겨우 하얼빈(哈爾賓 의 총, 종현(鐘峴)의 칼, 산림유생의 의병이 되고 말았도다.
! 과거 수십 년 역사야말로 용자(勇者)로 보면 침뱉고 욕할 역사가 될 뿐이며, 인자로 보면 상심할 역사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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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도 망국이후 해외로 나아가는 모모지사들의 사상이 무엇보다도 먼저 '외교'가 그 제1장 제1조가 되며, 국내 인민의 독립운동을 선동하는 방법도 미래의 일미(日美)전쟁, 일로(日露)전쟁 등 기회(機會)가 거의 천편일률의 문장이었었고, 최근 3·1운동에 일반인사의 '평화회의, 국제연맹'에 대한 과신(過信)의 선전이 도리어 이천만 민중의 분용(奮勇)전진의 의기를 타소(打消)하는 매개가 될 뿐이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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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는 준비론이니, 을미조약의 당시에 열국공관에 빗발듣듯하던 종이쪽으로 넘어가는 국권을 붙잡지 못하며, 정미년의 해아밀사도 독립회복의 복음을 안고 오지 못하매 이에 차차 외교에 대하여 의문이 되고 전쟁아니면 안되겠다는 판단이 생기었다
.
그러나 군인도 없고 무기도 없이 무엇으로써 전쟁하겠느냐? 산림유생들은 춘추대의에 성패를 불계(不計)하고 의병을 모집하여, 아관대의(峨冠大衣)로 지휘의 대장이 되며, 산양포수의 화승대(火繩隊)를 몰아가지고 조·일전쟁의 전선에 나섰지만 신문쪽이나 본 이들은 - 곧 시세를 짐작한다는 이들은 그리할 용기가 아니난다
.
이에'금일 금시로 곧 일본과 전쟁한다는 것은 망발이다. 총도 장만하고 돈도 장만하고 대포도 장만하고 장관이나 사졸감까지라도 다 장만한 뒤에야 일본과 전쟁한다'함이니 이것이 이른바 준비론 곧 독립전쟁을 준비하자 함이다
.
외세의 침입이 더할수록 우리의 부족한 것이 자꾸 감각(感覺)되어, 그 준비론의 범위가 전쟁이외까지 확장되어 교육도 진흥해야겠다, 상공업도 발전해야겠다, 기타 무엇 무엇 일체가 모두 준비론의 부분이 되었었다
.
경술국치 이후 각 지사들이 혹 서북간도의 삼림을 더듬으며, 혹 시베리아의 찬바람에 배부르며, 혹 남북경으로 돌아다니며, 혹 미주나 하와이로 돌아가며, 혹 경향(京鄕)에 출몰하여 십여년 내외각지에서 목이 터질만치 준비! 준비!를 불렀지만 그 소득이 몇 개 불완전한 학교와 실력없는 회()뿐이었었다
.
그러나 그들의 성력(誠力)의 부족이 아니라 실은 그 주장의 착오이다. 강도 일본이 정치 경제 양방면으로 구박을 주어 경제가 날로 곤란하고 생산기관이 전부 박탈되어 의식(衣食)의 방책도 단절되는 때에 무엇으로? 어떻게? 실업을 발전하며, 교육을 확장하며, 더구나 어디서? 얼마나 군인을 양성하며, 양성한들 일본 전투력의 백분지 일의 비교라도 되게 할 수 있느냐? 실로 한바탕 잠꼬대가 될 뿐이로다
.
이상의 이유에 의하여 우리는'외교', '준비' 등의 미몽을 버리고 민중 직접 혁명의 수단을 취함을 선언하노라
.

 

4.조선민족의 생존을 유지하자면 강도 일본을 구축(驅逐)할지며, 강도 일본을 구축하자면 오직 혁명으로써 할 뿐이니, 혁명이 아니고는 강도 일본을 구축할 방법이 없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가 혁명에 종사하려면 어느 방면부터 착수하겠느뇨
?
구 시대의 혁명으로 말하면 인민은 국가의 노예가 되고 그 위에 인민을 지배하는 상전 곧 특수세력이 있어 그 소위 혁명이란 것은 특수세력의 명칭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 다시 말하면 곧 을의 특수세력으로 갑의 특수세력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인민은 혁명에 대하여 다만 갑을 양 세력, 곧 신구 양 상전 중 누가 어질고 누가 난폭한지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지를 보아 그 향배를 정할 뿐이오, 직접의 관계가 없었다. 그리하여 '주기군이조기민(誅其君而弔其民)'이 혁명의 유일종지(宗旨)가 되고, '단식대장이영왕사(簞食壺漿以迎王師)'가 혁명사의 유일미담이 되었었다. 그러나, 금일 혁명으로 말하면 민중이 곧 민중 자기를 위하여 하는 혁명인고로 '민중혁명'이라 '직접혁명'이라 칭함이며, 민중 직접의 혁명인 고로 그 비등 팽창의 열기가 숫자상 강약 비교의 관념을 타파하며, 그 결과의 성패가 매양 전쟁학상의 정궤(定軌)에 벗어나 무전무병(無錢無兵)한 민중으로 백만의 군대와 억만의 부력을 가진 제왕도 타도하며 외구(外寇)도 구축하나니, 그러므로 우리 혁명의 제일보는 민중각오(覺悟)의 요구니라
.
민중이 어떻게 각오하느뇨
?
민중은 신인이나 성인이나 어떤 영웅 호걸이 있어 '민중을 각오'하도록 지도하는 데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오, '민중아, 각오하자' '민중이여, 각오하여라' 그런 열규(熱叫)의 소리에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오

오직 민중이 민중을 위하여 일체 불평, 부자연, 불합리한 민중향상의 장애부터 먼저 타파함이 곧 '민중을 각오케'하는 유일 방법이니, 다시 말하자면 곧 선각한 민중이 민중의 전체를 위하여 혁명적 선구(先驅)가 됨이 민중각오의 제1()니라
.
일반 민중이 기(), (), (), (), 처호(妻呼) 아제(兒啼), 세납(稅納)의 독봉(督棒), 사채(私債)의 독촉, 행동의 부자유, 모든 압박에 졸리어 살려니 살 수 없고 죽으려 하여도 죽을 바를 모르는 판이다. 이에 만일 그 압박의 주인(主因)되는 강도정치의 실시자인 강도들을 격폐(擊斃)하고 강도의 일체 시설을 파괴하고 복음이 사해에 전하며 모든 이가 동정의 눈물을 뿌리어 이에 사람마다 그 '아사(餓死)' 이외에 오히려 혁명이란 일로(一路)가 남아 있음을 깨달아, 용자는 그 의분에 못 이기어, 약자는 그 고통에 못 견디어 모두 이 길로 모여들어 계속적으로 진행하며 널리 전파하여 거국일치의 대혁명이 되면 간활잔폭(奸猾殘暴)한 강도 일본이 필경 구축되는 날이라. 그러므로 우리의 민중을 불러 일깨워 강도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민족의 신생명을 개척하자면 양병(養兵) 십만이 일척(一擲)의 작탄(炸彈)만 못하며 억천장(億千張) 신문잡지가 일회 폭행만 못할지니라
.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발생치 아니하면 끝이려니와, 이미 발생한 이상에는 마치 벼랑 끝에서 굴리는 돌과 같아서 목적지에 도달하지 아니하면 정지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이전 경과로 말하면 갑신정변은 특수세력이 특수세력과 싸우던 궁중 일시의 활극이 될 뿐이며, 경술 전후의 의병들은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대의로 격기(激起)한 독서계급의 사상이며, 안중근, 이재명 등 열사의 폭력적 행동이 열렬(熱烈)하였지만 그 후면에 민중적 역량의 기초가 없었으며, 3·1운동의 만세소리에 민중적 일치의 의기가 잠시 드러났지만 또한 폭력의 중심을 가지지 못하였도다. '민중, 폭력' 양자 중 하나만 빠지면 비록 굉열장쾌(轟列壯快)한 거동이라도 또한 천둥같이 끝나는 도다
.
조선 안에 강도 일본의 제조한 혁명 원인이 산같이 쌓이었다. 언제든지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개시되어 '독립을 못하면 살지 않으리라', '일본을 구축(驅逐)하지 못하면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구호를 가지고 계속 전진하면 목적을 관철하고야 말지니, 이는 경찰의 칼이나 군대의 총이나 간활(奸猾)한 정치가의 수단으로도 막지 못하리라
.
혁명의 기록은 자연히 참절장절(慘絶壯絶)한 기록이 되리라. 그러나 물러서면 그 후면에는 흑암(黑暗)한 함정이오, 나아가면 그 전면에는 광명한 활로니, 우리 조선민족은 그 참절장절한 기록을 그리면서 나아갈 뿐이니라
.
이제 폭력- 암살, 파괴, 폭동- 의 목적물을 대략 열거하건대
,

 

1.조선총독 및 각 관() 관리
2.
일본천황 및 각 관 관리
3.
정탐 노(偵探奴), 매국적(賣國賊
)
4.
적의 일체 시설물

 

이외에 각 지방의 신사(紳士)나 부호가 비록 현저히 혁명적 운동을 방해한 죄가 없을지라도 만일 언어 혹 행동으로 우리의 운동을 완화하고 중상(中傷)하는 자는 우리의 폭력으로서 갚을지니라. 일본인 이주민은 일본강도 정치의 기계가 되어 조선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선봉이 되어 있은즉 또한 우리의 폭력으로 구축할지니라.

 

5.혁명의 길은 파괴부터 개척할지니라. 그러나 파괴만 하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하려고 파괴하는 것이니, 만일 건설할 줄을 모르면 파괴할 줄도 모를지며 파괴할 줄을 모르면 건설할 줄도 모를지니라. 건설과 파괴가 다만 형식상에서 보아 구별될 뿐이요. 정신상에는 파괴가 곧 건설이니, 이를테면 우리가 일본 폭력을 파괴하려는 것은 제1은 이족통치를 파괴하자 함이다. ? '조선'이란 그 위에 '일본'이란 이족 그것이 전제(專制)하여 있으니, 이족전제 밑에 있는 조선은 고유적 조선이 아니니 고유한 조선을 발현하기 위하여 이족통치를 파괴함이니라.
2는 특권계급을 파괴하자 함이다. ? '조선민중'이란 그 위에 총독이니 무엇이니 하는 강도 단의 특권계급이 압박하여 있으니, 특권계급의 압박 밑에 있는 조선민중은 자유로운 조선민중이 아니니, 자유로운 조선민중을 발견 하기 위하여 특권계급을 타파함이니라
.
3은 경제약탈제도를 파괴하자 함이다. ? 약탈제도 밑에 있는 경제는 민중 자신이 생활하기 위하여 조직한 경제가 아니오, 곧 민중을 잡아먹으려는 강도의 살을 찌우기 위하여 조직한 경제니, 민중생활이 발전하기 위하여 경제약탈제도를 파괴함이니라
.
4는 사회적 불균형을 파괴하자 함이다. ? 약 위에 강자가 있고 천자(賤者)위에 귀자(貴子)가 있어 모든 불균형을 가진 사회는 서로 약탈, 서로 박삭(剝削), 서로 질투 구시(仇視)하는 사회가 되어 처음에는 소수 행복을 위하여 다수의 민중을 잔해(殘害)하다가 말경에는 또 소수끼리 서로 잔해하여 민중 전체의 행복이 필경 숫자상의 영이 되고 말뿐이니, 민중전체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하여 사회적 불평균을 파괴함이니라
.
5는 노예적 문화사상을 파괴하자 함이다. ? 유래하던 문화사상의 종교, 윤리, 문학, 미술, 풍속, 습관, 그 어느 무엇이 강자가 제조하여 강자를 옹호하던 것이 아니더냐. 강자의 오락에 공급하던 도구들이 아니더냐. 일반 민중을 노예화하던 마취제가 아니더냐. 소수계급은 강자가 되고 다수 민중은 도리어 약자가 되어 불의의 압제에 반항치 못함은 전적으로 노예적 문화사상의 속박을 받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만일 민중적 문화를 제창하여 그 속박의 철쇄(鐵鎖)를 끊지 아니하면 일반 민중은 권리사상이 박약하며 자유향상의 흥미가 결핍하여 노예의 운명 속에서 윤회할 뿐이라. 그러므로 민주문화를 제창하기 위하여 노예적 문화사상을 파괴함이니라. 다시 말하자면 '고유적 조선의' '자유적 조선민중의' '민중적 경제의' '민중적 사회의' '민중적 문화의'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이족 통치의' '약탈제도의' '사회적 불평균의 노예적 문화사상의' 현상을 타파함이니라
.
그런즉 파괴적 정신이 곧 건설적 주장이라. 나아가면 파괴의''이 되고 들어오면 건설의'
()'가 될지니, 파괴할 기백은 없고 건설할 치상(癡想)만 있다하면 오백년을 경과하여도 혁명의 꿈도 꾸어보지 못할지니라. 이제 파괴와 건설이 하나이오 둘이 아닌 줄 알진대, 민중적 파괴 앞에는 반드시 민중적 건설이 있는 줄 알진대, 현재 조선민중은 오직 민중적 폭력으로 신조선 건설의 장애인 강도 일본세력을 파괴할 것뿐인 줄을 알진대, 조선민중이 한편이 되고 일본 강도가 한편이 되어, 네가 망하지 아니하면 내가 망하게 된'외나무다리 위'에 선 줄을 알진대, 우리 이천만 민중은 일치로 폭력 파괴의 길로 나아갈지니라.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휴수(携手)하여 불절(不絶)하는 폭력- 암살, 파괴, 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박삭(剝削)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친일인명사전>, 자칭 보수세력 연원 추척에 큰 힘

<친일인명사전>은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실증주의에 대한 실증적 반격의 의미도 지닙니다. 뉴라이트 교과서에서 한국을 빛낸 인물로 찬양하는 다양한 친일군상들에 대해서는 일반인들이 그 행적을 소상히 알지 못한 까닭에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사전은 그들의 행적을 객관적이고 정밀하게 서술함으로써 뉴라이트의 이념형 인간형이 언제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변신한 카멜레온같은 속성을 지닌 인물임을 확인해주었습니다


뉴라이트의 대안교과서

교과서는 이처럼 일제강점기 근대화 부분에 대해서는 40여 페이지를 통해 장황하게 서술하면서도

독립운동의 근간이 되는 20년대 만주나 서간도 지역의 항일무장투쟁은 단지 7줄의 한 단락만으로 서술하는 편파성을 보였다. 

"일제의 강력한 집행력으로 보건위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인구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1920-1930년대에 일본과 만주로 대거 '이민'이 발생했다"고 서술했다.

쌀은 일본에 수탈된 것이 아니라 일본으로 수출되었으며 그에 따라 일본인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소득은 증가하였다. 쌀을 대신하여 만주에서 조와 콩이 대용식으로 수입되었다. 이리하여 1890~1920년대에 태어난 한국인의 키가 1~2센티 커진 것도 생활수준의 개선을 의미한다." (대안교과서 내용 중 일부)



식민지를 근대화시켰다고?        

-‘인구증가론’,‘경제성장율’,‘문맹율의 저하’의 허구         
    

일본사람들이 가끔 가다가 실성한 놈들처럼 주절대는 이야기 중에 대표적이고도 가장 추악한 이야기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나쁜 짓도 했지만 조선을 근대화시키는데 공헌했다’는 헛소리다. 이런 헛소리들에 대해서 사실확인까지 하면서 응대하는 한국인은 사실 드물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확연한 사실이므로 굳이 사실확인까지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인데 사실 여기에 약간의 문제점이 있는지 모른다.         
     

한승조 실로 어처구니없는 망언을 늘어놓았는데, 가만 보면 인터넷에서 젊은 세대들 중에도 제2, 제3의 한승조가 될 독버섯 들이 새록새록 자라는 걸 가끔 보는데, 여기에는 사실확인을 별로 하지 않고 욕만 하다 보니 평소에 빼딱하고 헛똑똑한 애들 중에 일본놈들 내지는 일본 추종자들의 궤변에 걸려드는 애들이 나오는 것 같다.         

        
예전에 ‘일본인들과 일제가 과연 조선의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는갗 하는 논쟁을 한 일이 있는데 당시 순수하게 일본 학자들의 주장과 총독부 자료로 일본인들을 논박한 일이 있다. 내가 일본학자들의 통계를 가지고 경제논리로 일본인들의 허구를 논박하니 일본인들은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엉까지를 못하고 딴 소리만 늘어놓더라.         

        
그중 몇 개만 예를 들어보겠다.         
        

일본인들이 근대화의 증거이며 일제의 선정의 징표로 내세우는 가장 큰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인구증가론’, ‘경제성장율’, 그리고 ‘문맹율의 저하’이다. 세 개 전부 조목조목 까발려보자. 일본학자 미조구찌라는 놈에 의하면 1909년부터 1938년까지의 평균경제성장률은 조선이 2.99% 일본이 2.20% 대만이 2.17%였다.       

        

이걸 들어서 일본인들은 봐라 일본본토가 성장률이 2.2%고 같은 식민지인 대만은 일본본토보다 성장률이 낮은데, 유독 조선만이 높지 않느냐고 하면서 일본이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뭐 일본인이 낸 숫자니까 의심스럽지만 대세에 지장이 없으니 그냥 그렇다고 쳐주고 얘기를 진행하자.         
        

식민지경제를 분석할 때 흔히 나오는 이론이 ‘수렴화 가설’인데 뭔 소린고 하면 식민지와 침략국은 하나의 국가 하나의 경제가 되었으므로 차별이 없고 정상적인 국가운영을 했다면 양국의 경제격차가 해소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강점 이전 조선과 왜국의 소득격차는 대략 3배가 차이가 있었다 한다. 만일 수렴화 가설대로라면 조선의 성장률은 일본의 서너 배는 되어야 한다.         
        

더욱 문제인 것은 소비지출을 보면 확연해진다. 역시 일본학자 테라사끼란 놈에 의하면 1912년부터 1938년까지 소비지출은 조선이 0.97이고 쪽바리본토가 1.50이며 대만이 1.12이다.      

        

자, 생산은 조선이 제일 높은데 소비는 일본의 반을 겨우 넘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게 바로 수탈경제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존나게 부려먹어서 생산하게 만들고 소비는 전혀 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귀찮아서 생략하지만 세목을 들여다보면 더 추악하다. 예를 들면 곡물 등의 소비는 전혀 늘어나기는커녕 1920년대 후반부터는 줄어든다. 그 대신 담배 술 등의 소비가 현저히 증가하는 것이다. 밥은 조금 먹고 술담배에 쩔어 지냈다는 이야기다.        

        

상기의 성장률이나 소비에는 조선 땅에 또아리 튼 일본인들도 포함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분배구조로 보아 일본들이 엄청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실제 조선인의 경제사정은 숫자 이상으로 열악했음이 분명하다.        

        

왜 소비가 그토록 열악했는가는 임금추이를 보면 알 수가 있다.        

        

미조구찌란 놈에 의하면 일제시대 제조업의 임금은 지속적으로 올랐는데 농업노동자의 소득은 1915년경을 피크로 지속적으로 내려갔다. 상상이 가는가? 임금이 지속적으로 내려간다는 이야기?        

        

제조업에 있어서도 숙련노동자의 임금만이 올랐을 뿐, 조선인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숙련노동자의 임금은 1920년 이후 지속적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임금이 1910년대의 임금을 하회했다는 웃기지도 않은 일이 사실인 것이다.        

        

다음으로 일본인들이 두 번째로 까는 허접스런 허구 인구의 증가에 대해서다.        

        

일본들이 씨부리기를 합방 당시 조선의 인구가 1,300만이었는데 종전 당시의 인구는 2,700만이므로 두 배가 되었으니 ‘착취를 당하고 어떻게 인구가 배증하느냐’고 한다.        

        

일본인들이 처음으로 신뢰가능한 인구통계를 낸 것이 1925년이다. 그 이전 숫자는 한마디로 꼴리는 대로 불러댄 것이다. 그 증거로 왜놈들이 발표하기를 1910년에 1,300만이라 했는데 1915년경에는 1,700만이라 한다. 불과 5년 사이에 인구가 400만이나 늘어나는가?        

        

아마도 1910년에 이미 1,700만은 있었는데 제대로 통계가 잡히지 않아서 실상은 1,700만이던 인구가 40년 후에 2,700만이 된 것이 맞을 것이다.        

인구증가론은 간단하게 허구임이 증명된다. 조선말 실록에 이천만 동포라는 말이 있다. 해방후도 이천만이다.         

근데 전세기는 전 세계 인구가 100년간 3배로 불어난 시기인데 40년 동안 고작 50% 늘어난 게 대단하다는 이야기인가? 당시에는 이미 조선이란 나라는 없었으며 조선인도 일본인이었다. 이놈들이 무슨 씨를 말리기로 작심을 하기 전에는 어느 정도 인구가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놈들의 주장이 얼마나 헛소린지를 보려면 부정확한 인구통계보다 인구가 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인 영아사망률을 보면 안다. 조선의 영아사망률은 20년대에 25.9% 30년대에 23.6% 40년대에 23.1%로 정말 조금이지만 줄고는 있다. 기대여명도 37.39세 39.94세 40.85세로 극미하나마 늘고는 있다.        

        

그런데 해방 후, 머지않은 50년대의 기대여명은 50.34로 일제말기로부터 무려 10세가 늘어난다. 이게 모든 걸 말해주지 않는가? 일본인들이 얼마나 웃기는 자식들인지 말이다.        

        

마지막으로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교육시키고’ 어쩌구 하는 것에 대해서 한번 보자.        

        

일제시대에 취학률이 높아진 것은 사실인데 그게 전부 소학교 지금의 초등학교 이야기고 중고등교육에 관한한 일본인들은 한 게 전혀 없다.        

        

요시까와란 년에 의하면 조선의 취학률이 1910년에 남자 20% 여자 0%였던 게, 1930년대 말에 남자 60% 여자 20%가 되었다 한다. 그런데 이년은 일본이 쳐들어오기 전에도 서당이나 사립교육기관에서 초딩 수준의 교육은 이루어졌고, 그런 것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은 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공장이나 논밭에서 부려먹기에는 초딩 수준의 교육은 받는 게 안받는 거보다 유익하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일제시대에는 초등학교 취학률은 남녀평균 40%지만 중고등학교로 가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것이다.        

        

해방 직후 중고등학교 취학자수는 달랑 8만 1천명이다. 그게 그 후 매년 두 배에 달하는 스피드로 늘어나 한국전쟁 후인 1955년에는 74만 명에 달한다. 대학진학자는 해방 당시 달랑 8천명이던 게 55년에는 10배로 불어난다.        

        

이런 숫자를 보고도 일본인들은 미친 수작을 계속하고 그에 동조하는 놈들까지 나온다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일본인들이 주장하듯이 식민지 조선이 평균 2.99%에 달하는 성장을 한 것은 매우 성공적인 식민지 경영이다. 그렇다고 조선인이 성공적인 경제성장의 과실을 향유한 것이라 말할 수 있는가?        

        

아시아경제의 권위자인 퍼킨스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일제하의 조선의 경제성장은 단한가지 예외적 사실을 제외하면 대단한 성공이다. 그 예외란 그 성장의 은혜를 입은 조선인이 거의 없다는 것 그리고 대다수의 조선인은 생활수준의 저하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조선의 성장의 수혜자는 저렴한 조선의 쌀을 소비한 일본의 소비자이며 그 조선의 철도 산업 노동력을 이용한 일본의 군부이다.”        

        

지금도 일본인들 중에는 한국의 아이엠에프 위기를 일본 정부가 도와줘서 벗어났다고 굳게 믿는 헛소리쟁이들이 많다. 이놈들은 뭐든지 이런 식인 것이다. 이런 일본인들의 말 같지 않은 주장에 동조하는 한국인들은 도대체 뇌는 있는지 궁금하다. 대체로 놈들이 가슴이 없다고 하나 가슴 이전에 뇌도 없는듯하다.        

        

가슴도 뇌도 없는 사람들. 민도가 높아져 맞아죽지 않고 숨을 쉬고 살 수 있어 본인들은 좋은지는 모르나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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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근론의 뼈대 자료들은 총독부가 만든 프로파간다 우월성을 강조하는 선전물이 대부분이고 객관적인 자료가 아니기 때문에 대응하는 것 자체가 우수운 일입니다.

식근론자와의 대화는 어차피 이런식으로 진행됩니다. -> http://enjoyjap.egloos.com/1832123

무시해주면 조선인은 노예민족드립을 치며 열폭을 하기 때문에 살살 약올리며 일본의 전쟁범죄로 골려주는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놈의 나라는 친일파들이 더 활개치는 나라이기 때문에 대응하는 사람이 한둘 나타났고, 기다렸다는듯 일본우익이나 국내 친일파들에게 집중포화를 받게 됩니다.  자신들의 삐라를 광고하기 위해서는 반론해줄 상대가 필요하니까요

 친일파들이 국사책에까지 손을 뻣치자.. 한분이 나서긴 했습니다.

충남대 허수열 교수의 ‘개발 없는 개발’(은행나무 펴냄)은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건 책이다.
 
책의 논지는 제목과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다. 제목은 종속국가에는 ‘저개발이라도 있었지만’ 식민지 조선은 ‘개발 자체가 없었다.’는 의미로 읽힌다. 또 ‘일제하 조선경제개발의 현상과 본질’이라는 부제는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통계수치라는 ‘현상’만 봤을 뿐 그 뒤에 숨겨진 민족간 차별이라는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흥미로운 점은 허 교수가 식민지근대화론자의 ‘대부’로 꼽히는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의 제자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반론의 무기도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쓰는 근대경제학적 통계수치다.

식민지근대화론은 거칠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조선후기 경제는 파탄 직전이었다. 둘째 일제시대 때 놀랍게 성장했다. 셋째 이런 기반이 해방 이후 한국 근대화의 밑거름이 됐다.’는 것.

허 교수는 짧은 질문으로 두번째 주장을 반박한다.1911년 조선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777달러,1937년에는 1482달러를 기록하다 전쟁 때문에 1944년에는 1330달러로 줄었다. 그런데 해방되던 1945년에는 1911년만도 못한 616달러로 감쪽같이 내려 앉았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가.

바로 일제시대 조선의 성장은 조선인의 발전이 아니라 일본인의 발전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단순히 볼 때 일본인의 조선농지소유율은 18%정도지만 그 토지의 생산력까지 감안하면 이 수치는 50%대까지 치솟는다. 알짜 땅을 다 차지한 것이다. 교육·취업·승진 등에 있어서 조선인은 철저한 차별을 받았다. 물론 일제시대 말기에 이런 차별 가운데 일부가 완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허 교수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으로 일본인이 동원되면서 생긴, 비정상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일제시대 때 성장했다는 조선이 해방 직후 1911년 수준의 가난한 농업국가로 되돌려진 데는 이런 배경이 숨어 있었다.

동시에 일제의 유산이 한국의 근대화에 그다지 기여한 것도 아니다. 근거는 맥아더사령부가 한국·타이완·중국 등에 남아 있는 일본인 재산을 조사해 1948년 펴낸 통계다. 여기에 따르면 해방 뒤 한국에 남은 재산은 북한의 25% 수준이었다. 질적인 차이는 더 심했는데 주요 시설이 북한에 있었고 남한은 조선총독부가 서울에 있는 덕을 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마저도 한국전쟁에서 반 이상 파괴됐다.60년대 경제개발기 한국에 남아 있던 일제의 물적 자산은 원래의 10분의1 수준도 채 안 된다. 여기에 이승만정권이 미국원조로 연명했다는 사실까지 보태면 일제 유산의 영향이라는 것은 극히 미미했다.


그러나 이는 ‘물질적’ 유산에 한정된다. 그 외 법률이나 행정 등과 같은 제도적·정신적 영향에 대해서는 뭐라 대답할 것인가. 허 교수는 “경제사학자로서 계량화된 수치만 다룰 수 있다.”고 답한 뒤 “일제가 ‘남북분단과 민족갈등’을 남겼다는 점까지 함께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내지와 반도에서 적용되던 법이 다른것은 모르는가 봅니다. 내지에서는 멀쩡히 서점에서 팔리던 책도 반도에서는 가지고 있으면 불량선인이 되고, 자유롭게 수출한다던 쌀의 소비량은 내지에서 반도보다 1.5배이상 소비했다는것을(1인당 소비량) 아시는지 모르겠네요


군산항의 쌀 출하 광경. 일제는 합방 즉시 군산항을 한국쌀 수탈기지로 삼았습니다.

조선총독부 쌀수탈 기념 프로파간다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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