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 일본인의 기원


倭의 역사를 처음 기록한 중국의 삼국지나 후한서 등을 보면 섬나라 왜인들은 얼굴문신 풍습이 있다고 한결같이 쓰여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왜인전>
남자(男子)대소(大小) 없이 모두 경면(黥面 : 얼굴에 묵으로 문신하던 고대의 형벌) 문신(文身)을 하고 그 사절(使節)이 중국에 이르는데 모두 자칭 대왕(大王)이다. 하후(夏候) 소강(小康)의 자(子)가 회계(會啓)에 봉해졌는데, 단발문신(斷髮文身)하고 이로써 교룡(蛟龍)의 해를 피한다. 오늘날 왜(倭)의 수인(水人 : 어부)이 즐겨 물에 들어가 고기를 잡는다. 문신 또한 이로써 대어수금(大漁水禽 : 큰 물고기와 물에 사는 짐승)을 다스린다. 후에 점차 장식화 되었다. 제국의 문신이 각각 달라 혹은 좌에 혹은 우에 혹은 크거나 혹은 작으니 존비(尊卑)에 차이가 있다.
남자의 머리 모양은 대개 노계(露紒)에 목면(木棉)으로 초두(招頭)한다고 하였는데 관모를 쓰지 않고 상투를 노출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목면으로 초두한다는 것은 당시 면화가 없었으므로 나무의 풀솜이나 칡 등으로 머리를 묶었다는 뜻으로 보고 있다.
또한 옷은 횡폭의(橫幅衣)이며 결속(結束) 상련(相連)할 뿐 봉제하여 꿰매지는 않는다는 기록도 나온다. 이는 일본 토착민의 의복이었을 것으로 고온 다습(高溫多濕)한 일본 기후에 알맞도록 된 의복이다.
병사(兵使)는 모순(矛楯)목궁(木弓)을 사용하는데, 목궁(木弓-나무 활)은 단하장상(短下長上)이고, 죽전(竹箭-대나무 화살)의 촉은 철(鐵)이나 뼈[骨]를 사용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죠몽시대 열도의 경면문신 얼굴토기 출토현황

고분시대 하니와에 보이는 왜인의 경면 문신
왜인의 직계조상 마오리족은 아직도 경면문신을 하고 있다.


 
야요이(왼쪽) 고분시대(오른쪽) 하니와에 나타나는 경면문신 및 문신


이는 동이족에서는 없는 풍습으로 실제로 일본의 고분시대나 야요이 토용에서 확인되는데 지금 이런 풍습을 보려면 동남아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가까운 대만 원주민들도 이런 풍습이 내려오고 있으며 보르네오 섬이나 호주의 원주민들도 얼굴에 점을 찍는 문신을 한다.
게다가 산화철로 이를 검게 만드는 흑치 풍습까지 에도시대의 개항기까지 유지했기 때문에 일본의 학자들도 왜의 선주민은 동남아 越人계열로 인정하는 편이다.

보르네오의 카잔족은 재배법을 어긴 여자를 잡아 계속 피를 흘려 죽도록 했다. "그녀의 고동치는 피에서 쌀이 나왔으며, 그녀가 죽은 뒤 엉덩이에서는 바나나가 나왔고, 머리에서는 사탕수수가, 팔에서는 클라디가, 그리고 몸의 다른 부분에서는 오이와 고구마 같은 식물이 나왔다. 생식기에서는 담배가 나왔다. 지금도 여인들이 그의 연인에게 피울 담배를 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일본서기의 첫부분과 굉장히 유사한데 신화적으로도 일본과 동남아 문화는 연관성이 매우 높다.

직접적으로 일본인의 종자에 언급한건 남조계통의 사서인 진서와 량서인데 처음으로 왜인의 기원을 언급한다.
왜인들이 스스로 말하길 오나라의 후예라서 문신의 풍습을 유지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男子無大小、悉黥面文身。自謂太伯之後(晋書)
倭者、自云太伯之後。俗皆文身(梁書)

 일본식 한자음은 한국과는 달리 받침발음이 없고 날카롭게 들리는데 오나라 한자음으로 읽기 때문이다.
유전자의 이야기에 되돌릴까? 삼국지 동이전에는 왜인들은 술을 못마신다는 특이한 기록을 남겨놓았다.
술에 쎄고 약함의 유전도 일본인의 루츠를 알수있는 참고가 되는 것이다.  술에 강하고 약함을 결정짓는 것은 ALDH2이라고 하는 효소의 활동으로 술에 약한 사람은 이 효소의 이변형을 가지고 있다. 하라다(原田) 가쓰(勝)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긴키(近畿), 중부, 주고쿠지방(中國地方)에서 이변형 (술에 약한 사람)이 많아 그곳에서 벗어날수록 적어진다 (술에 강하다) 것이다. 이변형의 ALDH2은 코카서스(백인)이나 니그로이드(Negroid)(흑인)에는 없다. 일본 전체에서는 44%의 사람이 이변형을 가져 그것에 다음으로 많은 것이 중국 남부의 41%이다. 이변형의 유전자는 아마 중국 남부에서 태어나 오(吳)의 멸망등으로 일본 열도에 건너온 사람들이 가져온 것이다. 승문(繩文)인은 통상형이며 술에 강했던 것 같다.  덧붙이자면 한국에서의 이변형의 비율은 28%과 적다.




왜국의 고분시대(4~6세기)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토기.
이런 동남아풍 고상가옥들이 삼국시대 열도를 뒤덥고 있었다.
요즘은 일본의 신사에서나 간혹 볼수있는 지붕이다.

백제가 열도에 기와를 들어온 때는 아스카시대로 그 이전의 열도는 동남아식 가옥들로 늘어서 있었다.

 양직공도의 백제인과 왜인을 비교하면 왜인의 정체를 한눈에 알수있다.


고분시대 왜국 무사 토용
백제와 교류하기전 열도는 벌거벗은 상태에서 바느질이 없는 관두의라는 특이한 옷을 걸쳐 입었다.





일본어의 기원 日本語の起源



일본어는 문법이 같고 몇몇 고유어가 한국어와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비교언어학의 기초가 되는 숫자나 신체 어휘를 보면 완전 다른계통이다. 표에서 같은 계통이라 말해지는 영어와 독일어의 차이를 보고 한국어와 일본어의 신체어휘를 비교하면 납득할만 하다.

실제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몸의 부위에 관한 어휘와 숫자로 볼때 한국어와 일본어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이것은 비교언어학 자체가 성립이 안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어의 신체어휘는 어느나라와 가장 비슷한가 연구가 시작되었다.
고대의 일본어 어형들은 지금까지 상황으로 동남아 언어들과 잘 일치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그중 몇개만 뽑아보면


나 :  아 (일본어)  /  아쿠(오스트로네시아)
무엇  : 나니 (일본어)  /  나누( 필리핀)
눈 ,본다 : 미,미루(일본어)  / 마타 (오스트로네시아)
손  : 테(일본어)  /  탕안(오스트로네시아)
구멍 : 아나(일본어) / 아나 (타밀어)
자르다 : 키루(일본어)  / 킬 (타밀어)
곁 : 파타(일본어)  /  팥 (타밀어)
~한다 : 쓰루(일본어) / 투르(타밀어)
이야기 : 고토바(일본어)  / 캍 (타밀어)
어렵다 : 카타시(일본어) / 캍 (타밀어)
외친다 : 오라부(일본어)  /  오로(타밀어)
끝 : 파시 (일본어) / 팍 (타밀어)
꽉차다 : 타루 (일본어)  / 탈 (타밀어)
나무 : 키 (일본어 ) / 켁 (타밀어)
찐다 : 무쑤(일본어) /  뭍(타밀어)
잎 : 파(일본어)  / 판 (타밀어)
1 : 히토쯔 (일본어) / 이토( 오스트로네시아) 
2 : 후타쯔(일본어) / 파탕 (오스트로네시아)
씨앗 : 타네(일본어) / 타님 (오스트로네시아)
바다 : 와타(일본어)  / 와사 (오세아니아)
하늘 : 아마 (일본어) / 아방 (오스트로네시아)
파랑 : 아오이(일본어) / 아방 (오스트로네시아)
이빨 : 파아 (일본어) / 바랑(오스트로네시아)

*오스트로네시아는 인도네시아와 하와이를 포함하는 거대한 언어 집합을 뜻한다.
 

동남아 언어와 일본어의 신체 명칭 비교표



버마어

발 atheng
눈 megan
입 khuga
이 hatai
털 khenai
머리 khara
혀 sila


인도네시아어

눈 mata
손 tangan>손바닥
발 kaki > 뛴다
이 gigi >송곳니


대부분 일본어의 기초어휘는 한국어보다는 동남아어와 연관된다.


일본의 어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일본어의 5모음 체계, 신체 및 고유어휘등, 일본어의 일부 문법들은 타밀어(미얀마어)와 매우 관련이 높다고 한다. 그것이 언어가 가지는 DNA라고 할수있다. 어설픈 어휘 비교로 극복되는 문제가 아니다.


일본어 연구자들이 에도시대까지 정설이던 조선어 기원설등을 버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한국어와 90%이상 동일한 문법을 설명할 수 없으므로 고대 한국남부를 근거도 없는 고일본어권으로 날조해 마한 진한 변한 큐슈권까지 같은 언어권 (임나일본부)이라서 열도에서 크리올화(혼합) 했다는 주장이 열도에서는 슬그머니 인정받고 있다. ※사실은 최초 신라가야계의 열도의 오월족 및 죠몽계 토벌임.



덧글

  • 1 2009/09/26 14:29 # 삭제 답글

    한국어에서도, 특히 농경과 관련된 말이나 옛 가야땅의 경남방언에서 타밀어와 비슷한 말은 많이 발견되어집니다. 그리고 물론 일본어의 음운구조는 분명 폴리네시아같은 태평양지역의 언어의 음운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한자말 이외의 고유어 낱말에 있어서도 한국어와 그 발음과 뜻이 비슷한 낱말이 많이 있습니다.

    일본인은 구석기인인 죠몽인만아니라 한반도에서 건너간 야요이인, 토착 아이누인등의 혼혈로 이뤄진 종족입니다. 단순히 하나의 집단의 후손이라고 하기에는 말이 안됩니다.
  • lds940317 2010/08/30 23:29 # 삭제 답글

    잘보고가여 ㅋㅋㅋ
  • haca13 2012/04/30 00:27 # 삭제 답글

    아이누인들은 중국 대륙에 존재하던 고대국가 은(상나라) 민족이 주에 멸망한 뒤 열도로 이주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이 은나라 사람들은 대나무로 배를 만들어 장거리 항해를 했고, 또 호랑이를 토템으로 삼았습니다. 은나라의 청동기를 보면 호랑이를 형상화한 작품이 대부분이고, 이 청동기 문화는 주나라에서는 급격히 퇴조합니다. 일설에서는 아이누인들이 은나라인들이고, 또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부족이라고도 합니다. 용봉문화원류라는 책에 자세히 나와있더군요. 아이누는 은 혹은 안이라는 발음에서 나온 것이고, 또 이들이 알라스카를 지나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잉카를 건설했다고 합니다. 잉카는 은가(殷家) 즉 은나라 가문, 가족 이런 뜻이고요. 지금도 잉카의 고대문서에는 한자와 유사한 상형문자로 기록돼 있습니다. 또 침술, 한약재를 활용한 토착 의학 등이 잘 발달해 있습니다.
  • soarnavi 2013/04/11 14:42 # 삭제 답글

    저 혹시 이 자료의 출처 좀 알 수 있을까요???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 싶ㅍ어서 그러는데요~
  • 일본어의 기원 2014/03/01 18:18 # 삭제 답글

    여기서 보니까 백제어가 일본어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네요

    백제어 중 수를 세는 어휘인 밀(3), 옻(5), 나는(7), 덕(10)은 현재의 일본어에서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
    대응되는 일본어 어휘인 밋(3), 잇즈(5), 나나(7), 도우(10)와 거의 일치하는 것이다.
    전·중기 시대 백제의 선진문화가 일본에 수출된 사실은 자타가 공인한다. 언어는 문화를 담아 나르는 그릇이다.
    따라서 자동적으로 백제어도 일본에 동반 수출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에서 백제를 부르는 국명 [쿠다라]의 기원

    구드래나루: 고지도에 한자로 ‘龜巖津’(구돌나루)이라 적혀 있다. 소부리에서 은산 및 정산(定山) 방향으로 건너가는 나루를 ‘구드래나루’라 부른다. 백제 시대에는 이곳이 나루라기보다 항구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본 사신의 배들이 군산포(白江口)를 거쳐 강을 따라 올라와 입항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국빈을 맞는 항구였다면 ‘구드래나루’는 그에 알맞은 뜻이 담겨 있어야 한다. 일본인들은 예로부터 백제를 ‘구다라’로 불렀다. ‘구드래’와 ‘구다라’는 비슷하다. 따라서 동일어로 믿을 수 있다. ‘구드래’는 ‘굳+으래’로 분석할 수 있다. 백제어는 유기음이 없기 때문에 ‘大’를 ‘근’(>큰)이라 하였다. 따라서 ‘굳+으래’는 다시 ‘그우+ㄷ+으래’로 분석할 수 있다. 결국 ‘그우>구’(大)로 변한 것이고 ‘ㄷ’은 사잇소리이다. ‘으래’는 전기 백제어로 왕을 일컫던 ‘어라+하’의 ‘어라’에 해당한다.

    ‘어라’는 지금까지도 즐겨 불리는 민요의 마지막 대목인 ‘어라 만수’(왕이시여 만수 무강하소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구드래’의 본말은 ‘근어라’이며 ‘대왕(大王)’이란 뜻이다. 따라서 ‘굳어라’가 일본어로는 ‘구더라’ ‘구다라’로 변하였고, 우리말로는 ‘구드래’로 변한 것이다. 이 말은 ‘근어라(大王津)’란 뜻이다.

    백제의 선진 문화가 후진 일본 문화의 밑거름이었던 사실을 감안할 때 일본인들이 백제국을 ‘구다라나라(대왕국)’로 높여 불러온 겸손을 이해할 수 있다.



    백제인은 두 자 성씨, 두 자 이름


    ‘고마(熊)’가 변하여 ‘곰’이 된 것처럼 끝 모음을 잃고 단음절로 줄었다.

    백제는 왕성이 ‘부여(扶餘)’씨이고 백제 멸망 후 백제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장수

    은솔(西部恩率) 귀실복신(鬼室福信), 별부장(別部將) 사탁상여(沙度相如), 흑치상지(黑齒常之)의 경우

    귀실, 사탁, 흑치는 성씨이며 복신, 상여, 상지는 이름이다.

    역사서에 이들의 성명이 ‘복신, 상여, 상지’로만 빈번히 기록된 것을 보면 생략된 앞부분은 성씨였음이 분명하다.

    이들의 성씨가 두 자인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로 미루어 생각할 때 계백은 성명이 아니라 오로지 이름일 뿐이며 그도 두 자로 된 별도의 성씨를 갖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대 한국인은 한 자로 된 성씨와 두 자로 된 이름을 쓰고 있다.

    반면 현대 일본인은 계백 등 고대 백제인과 마찬가지로 두 자로 된 성씨와 두 자로 된 이름을 쓰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계백 장군은 백제 수도인 현재의 충남 부여지역에 거주하면서 후기 백제의 표준어에 해당하는 ‘고마·소부리’ 말을 쓴 것으로 보인다.

    황산벌 전투를 백제 표준어로 표현하면 ‘누르리모이부리(黃等也山夫里)’ 전투다.

    ‘누르리모이부리 전투’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황산벌(黃山之野)은 어디였을까. 황산(黃山)은 고려 태조 때 연산(連山)으로 개명되었다(940년).
    백제 시대에는 황등야산(黃等也山)으로 불렸는데 신라 경덕왕이 황산으로 개명한 것이다(757).
    따라서 서기 757년까지는 ‘황등야산’으로 불렸다. 앞서 언급했듯 백제인들은 ‘黃等也山’을 ‘누르리모이’라 불렀다.
    따라서 황산벌전투가 끝난 후 한동안은 ‘누르 리모이부리 싸움’이라 불렸을 것이다.
    거의 100년 뒤인 서기 757년에 중국식 두 글자 지명인 ‘黃山’으로 개정된 뒤부터 백제식 이름은 점점 약해져 결국 사라지게 되었다.


    신동아 [역사 산책] 잃어버린 고대 한국어 ‘백제어’를 찾아서

    계백 장군 충청도 사투리 썼다

    백제어와 일본어 매우 유사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3/08/25/200308250500014/200308250500014_3.html
  • 인조이한국 2016/11/06 05:15 # 삭제 답글

    일본식 한자음은 한국과는 달리 받침발음이 없고 날카롭게 들리는데 오나라 한자음으로 읽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이죠? 여기서 말하는 오나라는 일본어로 읽으면 중국의 오나라가 아닌건가요?
    게다가 본문내용에서도 동남아시아 계통을 쭉 이야기하시다가 갑자기 중국 오나라에서 왔고, 또 밑에서 유전을 이야기하면서 동남아시아계통의 핏줄임을 주장하니 여기서 말하는 오나라는 중국이 아닌 동남아 어딘가를 말할 것 같은데 누가 알려주세요ㅜ
  • 똥남아 후손 왜인! 2017/02/21 16:14 # 삭제 답글

    일본인 vs 인도네시아 쿠부족

    https://www.ilbe.com/9477496572

    일본의 죠몬인은 동남아시아 니그리토가 조상이다.
    그중 외모가 비슷한 인도네시아 쿠부족 및 여러종족이 있다.

    http://www.forumbiodiversity.com/showthread.php/2308-Negritos-
  • ㅋㅋㅋㅋ 2017/09/05 22:58 # 삭제 답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타밀어 중에 한국어도 비슷한 단어 많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2017/09/11 22:23 # 삭제

    ㄴㄴ 비교언어학의 기초가 되는 숫자나 신체 어휘들을 보면 서로 완전 다른 계통임 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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