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1월 30일
칠지도
칠지도(七支刀)
泰和四年 五月十六日 丙午正陽 造百練銕七支刀 出辟百兵 宜供供侯王 .......作
태화사년 오월십육일 병오정양 조백련철칠지도 출벽백병 의공공후왕 ........작
先世以來 未有此刀 百濟王世(子) 奇生聖音 故爲倭王 旨造 傳示後世
선세이래 미유차도 백제왕세자 기생성음 고위왜왕 지조 전시후세
칠지도(七支刀) 해석의 포인트.
한문 A爲B의 용법 : A를 B에 임명하다. 되게 하다. 봉하다..라는 뜻.
이것은 광개토대왕 비석의 以爲臣民 (이로써 신민이 되었다.)과 유사한 구절입니다.
아무도 여기서의 爲를 위하여로 읽지 않죠.
爲앞에 수식어를 놓아 앞 문장 전체를 꾸밀수 있습니다.
故爲倭王
칠지도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따라서 왜왕이 되었다.(따라서 왜왕에 책봉한다)라는 뜻입니다.
故(고)는 because에 해당되는 한문법입니다. 광개토대왕 비석의 以와 쓰임이 비슷하죠.
그럼 아까 A 爲 B에서 A에 해당되는 내용을 찾아보면
百濟王世(子) 奇生聖音 가 A에 해당되게 됩니다.
즉 백제 왕자가 왜왕이 된다는 뜻입니다.
뒷문장을 보면 확실합니다.
旨造
뜻(旨)으로 만들다(造).
왜왕의 이름으로 봐서 지(旨)라고도 해석하는데 지(旨)라는 이름을 쓴 왜왕은 일본역사 어디에도 없습니다.
앞에서 爲를 위하여로 해석하면 부득이하게 지(旨)가 왜왕이 이름이 되어버리는데, 한문법에도 틀리고 그런 왕도 없습니다.
傳示後世
땅속에 묻으라는 것이 아니라 후세에 물려주며 대대로 보여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칠지도는 고분이 아니라 석산신궁에 보관되고 있는것입니다.
侯王
후왕. 즉 제후라는 뜻입니다. 양서(梁書)와 양직공도를 보면 백제의 담로제도를 보면 왕의 자제들이 담로를 다스린다고 나옵니다.
뒷면에 백제 왕자 운운하고 나오는것은 이런 이유입니다.
백제왕이 아들에게 백만군사를 물리치는 신비한 칼을 하사하고 왜국의 왕에 책봉하는 것입니다.
왜왕과의 교섭이라면 백제왕이 나설일이지 백제 왕자를 내세우지 않겠지요.

칠지도 Q & A
Q: 칠지도라고 불리는 이유는??
A: 칼의 몸체에 칠지도라고 쓰여있기 때문입니다.
Q : 칠지도의 뜻은?
A : 일곱 가지를 가진 칼이라는 뜻.
Q : 칠지도 제작년대는?
A : 和 부분이 마모되어서 정확한 년대 파악은 어렵습니다. 글자는 다르지만 통상 동진의 연호였던 太和로 봅니다.
Q : 그럼 백제가 일본을 통치했나?
A : 아닙니다. 열도는 왜왕 武가 국서를 보내기 전까지는 100개 국가정도로 쪼개져 있던 난립 국가이며 통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 열도에 난립하던 소국 몇개를 백제가 먹은듯 보입니다. 따라서 아스카 시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천황가와 연결되고 있겠지요.
Q : 열도에서 백제 왕가의 역활은?
A : 속일본기를 보면 백제는 짐의 외가라고 하는데. 무녕왕의 일본쪽 자손들은 천황의 외척세력이 됩니다.
따라서 백제 멸망시 사이메이는 백제부흥에 총력을 다하고 백마강 전투를 끝으로 왜국과 백제 둘이 동시 멸망하는 계기가 됨.
Q : 백제 왕가의 일본 성씨는?
A : 최초 和氏(야마토)라는 성씨를 쓰다가 후대에는 천황가와 결합후엔 "쿠다라노고니키시(백제왕)" 라는 성씨로 불립니다.
倭5王으로 자폭하고
칠지도를 중국이 만들었다고 자폭하고
자랑스러운 391년인데 열도에는 자료가 없으므로 답변 회피.
결국 393년 삼국사기를 인용해 자폭하고

泰和四年 五月十六日 丙午正陽 造百練銕七支刀 出辟百兵 宜供供侯王 .......作
태화사년 오월십육일 병오정양 조백련철칠지도 출벽백병 의공공후왕 ........작
先世以來 未有此刀 百濟王世(子) 奇生聖音 故爲倭王 旨造 傳示後世
선세이래 미유차도 백제왕세자 기생성음 고위왜왕 지조 전시후세
칠지도(七支刀) 해석의 포인트.
한문 A爲B의 용법 : A를 B에 임명하다. 되게 하다. 봉하다..라는 뜻.
이것은 광개토대왕 비석의 以爲臣民 (이로써 신민이 되었다.)과 유사한 구절입니다.
아무도 여기서의 爲를 위하여로 읽지 않죠.
爲앞에 수식어를 놓아 앞 문장 전체를 꾸밀수 있습니다.
故爲倭王
칠지도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따라서 왜왕이 되었다.(따라서 왜왕에 책봉한다)라는 뜻입니다.
故(고)는 because에 해당되는 한문법입니다. 광개토대왕 비석의 以와 쓰임이 비슷하죠.
그럼 아까 A 爲 B에서 A에 해당되는 내용을 찾아보면
百濟王世(子) 奇生聖音 가 A에 해당되게 됩니다.
즉 백제 왕자가 왜왕이 된다는 뜻입니다.
뒷문장을 보면 확실합니다.
旨造
뜻(旨)으로 만들다(造).
왜왕의 이름으로 봐서 지(旨)라고도 해석하는데 지(旨)라는 이름을 쓴 왜왕은 일본역사 어디에도 없습니다.
앞에서 爲를 위하여로 해석하면 부득이하게 지(旨)가 왜왕이 이름이 되어버리는데, 한문법에도 틀리고 그런 왕도 없습니다.
傳示後世
땅속에 묻으라는 것이 아니라 후세에 물려주며 대대로 보여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칠지도는 고분이 아니라 석산신궁에 보관되고 있는것입니다.
侯王
후왕. 즉 제후라는 뜻입니다. 양서(梁書)와 양직공도를 보면 백제의 담로제도를 보면 왕의 자제들이 담로를 다스린다고 나옵니다.
뒷면에 백제 왕자 운운하고 나오는것은 이런 이유입니다.
백제왕이 아들에게 백만군사를 물리치는 신비한 칼을 하사하고 왜국의 왕에 책봉하는 것입니다.
왜왕과의 교섭이라면 백제왕이 나설일이지 백제 왕자를 내세우지 않겠지요.

칠지도 Q & A
Q: 칠지도라고 불리는 이유는??
A: 칼의 몸체에 칠지도라고 쓰여있기 때문입니다.
Q : 칠지도의 뜻은?
A : 일곱 가지를 가진 칼이라는 뜻.
Q : 칠지도 제작년대는?
A : 和 부분이 마모되어서 정확한 년대 파악은 어렵습니다. 글자는 다르지만 통상 동진의 연호였던 太和로 봅니다.
Q : 그럼 백제가 일본을 통치했나?
A : 아닙니다. 열도는 왜왕 武가 국서를 보내기 전까지는 100개 국가정도로 쪼개져 있던 난립 국가이며 통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 열도에 난립하던 소국 몇개를 백제가 먹은듯 보입니다. 따라서 아스카 시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천황가와 연결되고 있겠지요.
Q : 열도에서 백제 왕가의 역활은?
A : 속일본기를 보면 백제는 짐의 외가라고 하는데. 무녕왕의 일본쪽 자손들은 천황의 외척세력이 됩니다.
따라서 백제 멸망시 사이메이는 백제부흥에 총력을 다하고 백마강 전투를 끝으로 왜국과 백제 둘이 동시 멸망하는 계기가 됨.
Q : 백제 왕가의 일본 성씨는?
A : 최초 和氏(야마토)라는 성씨를 쓰다가 후대에는 천황가와 결합후엔 "쿠다라노고니키시(백제왕)" 라는 성씨로 불립니다.
일본인과의 토론 흐름
4세기 사건과 5세기 사건 구분도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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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hkdikkyh 03-11 11:27 takejima <응 그것은 (쿠다라)백제를 드브기위한곡이며, 광개토대왕비로 야마토:구가 그들을 신민으로 했다고 하는 칭뇨비인가? 그 시대 다른 기록에도 일본이 신라 (쿠다라)백제를 신민으로 했다고 하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삼국사기」에는, 동시대, 인질을 보내고 있는 기록도 있습니다 w.중국의 사서에는 야마토왕이, 쿠타라, 신라를 지배하로 하고 있다고(면) 진언 하고 있는 문면도 있어요 w.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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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辛卯年의 일인가? 다시 묻는다. 일본의 기록에는 있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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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5세기야 무식한.. 4세기와 5세기 사건도 구분못하는 takejima |
倭5王으로 자폭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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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사서의 예를 들면, 「송서」의 야마토국전에는, 「찬사, 제진립, 견사공헌. 자칭사지절, 도독 야마토 백제 신라 임라진한모한6국제군사, 안도대장군, 야마토국왕. 」라고 나와 있습니다만 w.이것은, 「태조원가2년」이라고 쓰여져 있기 때문에, 421년 이후이지만, 이것도, 연대적으로는 가깝지요 w?우연입니까w?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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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倭5王을 인용하면 일본서기는 쓰레기가 되지만 괜찮은지?w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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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쎄, 야마토가 아니라 왜국 이었다니 깐요!!!! 당신의 국사도 몰라?????????? 일본의 역사 왜곡은 지긋 지긋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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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칭!!! 폭소~!!!!!!!!!! 자칭까지 했는데 왜 일본측에 기록이 없습니까? |
칠지도를 중국이 만들었다고 자폭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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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y_saru000 03-11 12:06 칠지검은 열도를 속국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후왕입니다. ←「칠지검」은, 과학적인 조사는, 일본측에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w.「칠지검」의 명문은, 겉(표)와 뒤에서는, 자체가 다른 것이 알고 있으므로, 겉(표)의 명문과 뒤의 명문은, 나누어 논해야 합니다 w.겉(표)의 명문에는, 중국의 동진의 연호가 새겨지고 있으므로, 겉(표)에 쓰여져 있는 「후왕」은, 동진에서 본 「후왕」이 됩니다 w.←「칠지검」의 해석은, 일본측이 전문이므로, 여기서 논의해도 무의미합니다 w.「칠지검」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일본이며, 과학적인 조사를 실시한 것은 일본만입니다 w.조사도 했던 적이 없는 선조인이 망상해도 무의미합니다 w |
자랑스러운 391년인데 열도에는 자료가 없으므로 답변 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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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왜국의 물건은 없는지.? 왜 아까부터 관계도 없는 한국의 역사 자료만 가지고 반론합니까? 열도에서 제작한 물건이나 기록을 보여주면 끝입니다. 391년에 談德太王(고구려 375~413) , 奈勿王, (신라?~402) , 辰斯王, (백제 ? ~ 392) 과 싸운 왜왕의 이름이라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실제 당시의 상황으로 들어가서 왜왕 누가 싸웠느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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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로, 야마토왕이 싸울 필요가 없지 w.히데요시의 조선 정벌에서도, 천황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w.히데요시조차, 큐슈의 나고야에서 연회를 해 주실 수 있어입니다 w. |
결국 393년 삼국사기를 인용해 자폭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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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koreandb.net/Sam/bon/samkuk/04_030_1000269.htm ←393년이군요 w.광개토왕의 즉위는 391년입니까w?「칠지검」의 명문에 관해서는, 과학적인 조사를 실시한 것은 일본의 전문가이므로, 선 아침인이 잘못된 해석은, 전혀 의미를 가지지 않습니다 w.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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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王先遣勇騎二百 遮其歸路 又遣步卒一千 追於獨山 夾擊大敗之 殺獲甚衆 < 그래서 일본이 이겼습니까? 일본이 패배했다는 내용이지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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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네시로를 5일간 포위된 써 있는 w.현재에 비유하면, 서울을 5일간, 자위대에 포위된 의미예요 w.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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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kejima < 다시 말하지만 그 전쟁에서 일본이 이겼는가? 포위했지만 패배해서 몰살당하는 내용이지만 |

# by | 2008/01/30 20:42 | korea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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