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국 기모노를 변화시킨 백제 . 着物

6세기 부근의 왜국 오리지날 기모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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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통치 後 일본 의복 (백제옷)
 



백제-일본 왕실 혈연 실체 발굴
日왕실 족보 “비타쓰왕은 백제 왕족” 백제 성왕 자손이 아스카 문화 꽃피웠다
 
 

성왕의 아들과 딸

‘팔랑화도’는 수백년 전, 일본 오사카 지역이 ‘구다라스(百濟洲)’라는 지명으로 불렸음을 보여준다.

‘신찬성씨록’이 백제왕족이라고 명기한 비타쓰왕(572~585 재위)은 백제 성왕의 제2왕자다. 성왕의 제1왕자는 백제 제27대 위덕왕이다. 비타쓰왕은 긴메이왕(백제 성왕)이 서거하자 왕위를 계승했다. 그와 동시에 최고대신으로 20세의 백제인 귀족 소가노우마코(蘇我馬子)를 등용했다. 교토부립대학 사학과 가도와키 데이지 교수는 소가노우마코 대신이 백제 제21대 개로왕(455~475 재위)의 신하였던 ‘백제조신 목만치(木滿致)의 5대손’이라고 밝혔다.

비타쓰왕은 576년 3월, 18세의 가시키야 공주를 왕후로 맞았다. 가시키야 공주는 다름 아닌 왕의 이복동생, 그러니까 성왕의 제2공주였다. 근친결혼을 한 셈이다. 가시키야 공주는 비타쓰왕과의 사이에 2남5녀를 뒀으며, 서기 592년에 일본 최초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제33대 일본왕인 스이코 여왕(推古·592~628 재위)으로 36년간, 아버지가 포교한 백제 불교문화를 눈부시게 꽃피웠다. 이 시기는 일본 역사에서 ‘아스카 문화 시대’(592~645)로 높이 평가받는다.

14세기 초에 씌어진 일본 불교 왕조사인 ‘부상략기(扶桑略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推古天皇元年正月, 蘇我大臣馬子宿. 依合戰願, 於飛鳥地建法興寺,

立刹柱日 島大臣竝百餘人 皆着百濟服, 觀者悉悅, 以佛舍利, 籠置刹柱礎中.”

588년, 백제 왕실에서 건너온 건축가 태량미태(太良未太), 문가고자(文賈古子) 등에 의해 일본 최초의 칠당 가람이 아스카에 착공됐다. 위 대목은, 스이코 여왕이 등극한 직후인 593년 1월에 소가노우마코 대신과 만조백관이 ‘백제옷’을 입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기뻐하는 가운데 백제에서 보내온 부처님 사리함을 찰주의 기초 속에 안치했다는 내용이다. ‘만조백관이 ‘백제복’을 입었다’는 것은 스이코 여왕의 아스카 왕실이 백제계 왕가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당시에 관한 ‘일본서기’ 기록에서는 ‘백제복을 입었다’는 ‘부상략기’의 대목을 발견할 수 없다.

닌토쿠 왕실로 건너온 백제신(百濟神)

그러면 이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백제인 왕가가 형성된 시기로 추정되는 4~5세기, ‘난바(오사카)’의 ‘구다라스(百濟洲)’ 시대를 살펴보자. 백제가 일본을 최초로 지배한 것은 오진(應神)왕 때부터라는 게 통설이다. 이 사실을 고증하는 자료 중 하나인 오진천황 전신 초상화를 보면, 도포를 입은 천황이 머리에 남바위를 쓰고 있다. 남바위는 가죽을 댄 기다란 모자로, 우리 조상들이 겨울철 방한모로 착용해왔다.

당대의 오진왕과 그의 제4왕자 닌토쿠(仁德)왕이 백제인이었음을 일본 사학자들의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일본서기’는 백제의 학자 왕인이 오진왕의 초청을 받고 왜 왕실로 건너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인은 오진왕의 제4왕자 오사사기 왕자에게 글을 가르쳤다. 오진왕이 서거한 뒤 3년째 되던 해에는 왕인이 오사사기 왕자를 닌토쿠왕 지위에 올려놓았다. 이 같은 사실은 805년에 씌어진 고대 문헌에 기록돼 있다. “왕인이 어대에 와카(和歌) ‘나니와쓰노우타(難波津歌)’를 지어 닌토쿠 천황을 왕위에 천거하였다.”(紀貫之 ‘古今集’) 오사카의 고대 나루터 이름인 ‘나니와쓰’는 왕인이 지은 와카에서 유래했다. 이 지명은 현 오사카 중심의 번화가인 ‘나니와(難波)’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또 주목할 것은 “닌토쿠 천황이 모국 백제로부터 백제신(百濟神)의 신주를 왕실로 모셔왔다”(‘風土記’ 8~10C 편찬)는 점이다. “백제신의 신주를 모셔왔다”는 것은 조상신을 숭경하는 종묘사직 신앙행위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며, 이는 곧 닌토쿠왕이 백제인임을 입증한다. 닌토쿠왕과 그의 부왕 오진왕이 백제인이라고 주장한 사학자는 한둘이 아니다.

와세다대 사학과 미즈노 유 교수는 일찍이 “오진 천황과 그의 아들 닌토쿠 천황은 구다라국(백제국) 왕가로부터 건너와 일본 정복왕조를 이루었다”(1978)고 단정한 바 있다. 도쿄대 사학과 이노우에 미쓰사다 교수도 이보다 앞서 “백제 사신으로부터 칠지도(七支刀)를 전해 받은 왜왕 오진 천황은 구다라(백제) 왕족이며, 천황씨(天皇氏) 자체가 조선으로부터 건너온 일본 이주자였다”(1960)고 밝혔다.

일본 고대사학자 이시와타리 신이치로의 저서 ‘구다라에서 건너온 오진 천황’(2001) 또한 일본 사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오사카부 하비키노시에 있는 “오진릉(應神陵)에 매장된 시신은 5세기 후반에 건너온 구다라의 곤지왕자(昆支王子)이다. 그는 5세기말에 일본에서 구다라계 왕조(百濟系王朝)를 수립했다”고 주장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곤지왕자는 백제 제21대 개로왕(455~475 재위)의 제2왕자다. 이처럼 한일 고대사를 성실하게 연구하고 그 결과를 양심적으로 밝힌 일본 사학자들은 반한(反韓) 세력으로부터 정신적 박해를 받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by 카피사루0 | 2008/02/13 00:00 | japan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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